"러시아 과소평가 마라", 나토 사무총장의 이유 있는 경고 [강윤희의 러시아 프리즘]
전쟁 수행 한계 직면, 우크라이나
탄약 고갈, 한국에 지원 요청
북중러 밀착 우려, 신중 대응해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을 정도의 세계사적 사건인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이 전쟁이 단순히 유라시아 대륙 어딘가에서 일어난 양국 간의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킨 표면적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 전쟁은 전 지구적이고 광범위하게 모든 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더해 이 전쟁은 세계대전급으로 모든 국가를 편 가르기에 돌입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자유민주주의를 국가 정체성으로 하며 한미동맹의 일원이기도 한 대한민국은 당연히 '팀 아메리카'에 속한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에서 대만문제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중국, 그리고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없는, 그래서 잠재적 적대국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나라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과의 관계를 서둘러서 회복하고 동시에 혈맹인 미국과 공조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시해야 한다. 어중간한 입장 표명은 미국의 오해와 의심을 살 수 있고 우리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현 윤석열 정부 외교라인의 입장이다.
지난 한 달간 바쁘게 펼쳐진 한국 외교는 위의 기본 입장에 기반을 둔 것이다. 미국 국방부 기밀문서 유출로 인해 미국의 한국 국가안보실 도청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위조'된 문건이라 폄하하면서 한미정보동맹을 통해 양국의 신뢰와 협력체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입장을 내놓았다. 우크라이나에 무기지원이 가능하다는 윤 대통령의 외신 기자회견은 러시아의 반발 등 국내외에 큰 파장을 가져왔지만 윤 대통령은 '할 말은 한다'며 당당한 외교 기조를 굽히지 않았다. 과거사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급하게 이루어진 3월의 한일정상회담은 국내에서 큰 비판을 받았지만 윤 대통령은 기시다 일본 총리의 답방을 맞이했다.
어찌 보면 이제야 한국이 주도적으로 제대로 된 외교를 펼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러시아, 중국, 북한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한 외교를 펼친다니 우리는 정말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 같다. 폴란드가 전차 등 한국산 무기를 대량 구매하는가 하면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한국산 탄약을 대거 요구하고 있으니 한국 방산산업의 높은 위상이 입증된 것처럼 보여 한국인으로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 우크라이나를 구원하는 것이 마치 우리 손에 달린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하는 러시아가 무엇이 무서우랴.
정말 그럴까? 이면을 좀 들여다보자. 미국은 왜 한국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요구하는 걸까?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1월 왜 한국을 방문했을까? 실제 사정은 우크라이나의 무기, 특히 탄약이 거의 고갈 날 지경이기 때문이다. 나토 및 미국 측이 2주 동안 생산할 수 있는 탄약을 우크라이나는 하루에 사용한다. 이런 전쟁을 1년 넘게 했다. 한국의 비축 탄약까지 가져가지 않으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상대로 더 이상 싸울 수 없다. 우크라이나의 패배를 인정할 수는 없고, 자신들이 가진 무기는 고갈되어 가다 보니 우크라이나에서 멀리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에까지 손을 벌리는 것이다.
"러시아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이 말은 나토 사무총장이 지난해 11월부터 계속해서 했던 말이다. 나토 측 몇십 개 국가가 힘을 합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도 러시아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유출된 미 국방부 기밀문서도 이러한 사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기존의 언론 보도와 달리 우크라이나에 매우 불리한 여러 정황이 이 기밀문서에 실려 있다. 유출 용의자로 체포된 21세 미군 병사는 문서 조작을 했다고 추정되는 제3자, 즉 러시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부디 상황을 오판하지는 말자.
혹자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야 할 여러 이유를 제시하지만, 나는 살상무기 지원에 신중해야 할 한 가지 이유를 말하고 싶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씨가 한반도로 옮겨 올 가능성을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한미일 동맹이 강화되는 만큼, 북중러 밀착은 강화된다. 두 세력이 부딪치는 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증대된다. 두 대륙판이 부딪치는 곳에서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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