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금감원 `영감님`

2023. 5. 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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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금융감독원의 '갑질' 이야기다.

수년 전이긴 하지만 종합검사를 나온 금감원 검사역들은 수검기관인 금융사에 검사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이런 자잘한 것들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올해 정기검사에서도 금감원 검사역들은 여전히 고압적이고 융통성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다른 금융사 직원은 "저는 재판장에 선 피고인이 아니에요. 마치 죄인을 다그치듯 하는데 회사에 대한 금감원의 검사에 대해 저는 '협조'할 의무가 있는 직원일 뿐입니다"라고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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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금용부동산부 증권팀장

"검사실은 목받침이 있는 푹신한 의자로 교체해 주면 좋겠고, 슬리퍼랑 소형 냉장고도 있으면 좋겠네요. 제 노트북이 너무 작아서 그런데, 혹시 남는 21인치 모니터 있나요? 아, 여기 근처 맛집 리스트도 보내주실 거죠?"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금융감독원의 '갑질' 이야기다. 수년 전이긴 하지만 종합검사를 나온 금감원 검사역들은 수검기관인 금융사에 검사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이런 자잘한 것들을 요구했었다.

그 정도는 애교로 볼 수 있다. 금감원 팀장급 간부들이 자신이 담당하는 금융사의 직원 등 이해관계자 수십명으로부터 억대의 돈을 빌리고 일부를 갚지 않아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그 돈을 받아 골프 레슨을 받고 자동차를 사고 자녀 유학비로 써버렸다. 부동산 투자 손실을 메우는데도 사용했다고 한다.

'갑'의 위치에 있는 금감원 간부들이 '을'인 금융사 직원들에게 먼저 돈을 빌려 달라 요구하고, 을은 갑의 눈치를 살펴 편익을 보장받고자 돈을 내어줬다. 당시 금감원도 비위 수준이 중하다고 인정했지만, 징계는 몇 개월의 정직과 감봉 수준에서 급하게 마무리했다.

최근 몇 년 간 우리 사회에서 '갑질'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면서 금융 감독기관인 금감원에 대해서도 감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감사원도 금감원의 갑질을 단속할 방침을 세웠다. 그렇게 금감원의 갑질은 과거의 악습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올해 정기검사에서도 금감원 검사역들은 여전히 고압적이고 융통성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검사 역량이 부족한 검사역들 때문에 불필요한 업무까지 늘어나고 있었다. 뚜렷한 법적 근거가 없는 지시나 간섭에도 반기를 들기는 어렵다.

반면 금융사 직원들의 예전만 못한 '을질'에 심기가 불편한 금감원의 영감님들은 을의 '개념없음'에 한탄한다. 이들은 수검 태도가 불량할 경우 검사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사실상 보복성 검사가 있음을 금감원 스스로 인정하는 말이 된다.

한 회계법인 직원은 "말하는 것만 들으면 조폭 같을 때도 있어요. 기본이 됐니 안됐니 하며 인신공격성 발언도 한 적 있고요"라고 말했다. 다른 금융사 직원은 "저는 재판장에 선 피고인이 아니에요. 마치 죄인을 다그치듯 하는데 회사에 대한 금감원의 검사에 대해 저는 '협조'할 의무가 있는 직원일 뿐입니다"라고도 토로했다.

금감원의 역할은 금융사 직원의 공손하지 못한 태도를 고쳐주는 게 아니다. 한 달여 남짓의 기간 동안 검사역들은 금융사를 상대로 임직원과의 면담, 자료 제출 요구 등 강도 높은 검사를 수행한다. 이 때 금감원이 해야 하는 일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적법 절차에 따라 금융기관의 금융 관련 법규 위반이 있었나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신속하고도 엄정한 검사를 통해 도출한 내용을 적시에 보고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상적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금융사들에 개선 방향을 제시하면서 그들의 건의를 청취해 금융시장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금감원이 할 일이다. 올해 초 이복현 금감원장도 남아있는 과거 검사관행을 지양하겠다며 업무 개선을 유도하는 검사, 리스크를 사전에 제거하는 검사, 중요 리스크에 집중하는 검사를 약속한 바 있다.

예의(?)를 중시하신다니 공손히 말씀드리겠다. "그것만이 당신들의 책무이자 권한입니다. 사기업 직원에게 막말을 할 권한 따위는 부여받으신 적이 없습니다, 영감님."

이윤희 금용부동산부 증권팀장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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