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윤석열처럼 대통령 윤석열도 죄악 용서할 권한은 없다

한겨레 2023. 5. 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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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7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앞.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주최로 기시다 총리 방한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이범준

논픽션 작가

검찰의 진짜 권력은 기소하지 않는 것이다. 수사가 아무리 악랄해도, 기소만 하면 일은 사리에 맞게 흘러간다.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되면 수사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반대로 무죄가 나면 피고인의 억울함이 풀린다. 하지만 기소하지 않으면 세상은 검사의 것이 된다. 회계를 조작해 회사를 들어먹은 자에게 혐의가 없다고 해줄 수도 있고, 아무런 죄가 없는 정치인을 잡아다가 죄가 있지만 봐준다며 기소유예를 할 수도 있다. 이들은 기소유예를 취소하고 차라리 정식으로 기소해달라고 요구한다. 법정에서 깨끗하게 무죄를 받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사는 기소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검사의 불기소 권한이 형사소송법 제247조에 있다.

법원은 도덕을 심판하는 교회가 아니다. 20세기 대법원은 사죄를 명령하는 판결을 했다. 근거는 민법 제764조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 그런데 1991년 헌법재판소가 이 조항에 기대 사죄 광고를 명령하는 판결은 위헌이라고 했다. 그래서 대법원이 2018년 강제동원 사건 판결을 할 때도, 사과는 명령하지 않았다. 일부 변호사들이 사과를 요구하며 이 판결을 근거로 드는 것은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일본 제국주의를 반성하라는 것은, 사법적 요구가 아니라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요구이다.

나치즘이라는 악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으로 벌하지 못한다. 일본 제국주의라는 악도 극동 국제군사재판이 벌하지 못한다. 두 법정은 전범들을 기소해 처벌했을 뿐이다. 인간의 존엄을 파괴한 나치즘은 홀로코스트 피해자라도 용서할 수 없고, 아시아를 지옥으로 만든 일본 제국주의는 시간이 지나도 용서되지 않는다. 나치즘과 일제는 누구도 용서하지 못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용서된다면, 일본 젊은이부터 다시 전쟁터에 끌려나가야 하고, 여성들은 또다시 군인의 성노예가 될 수 있다. 나치즘을 용서하지 않기에 유럽에 평화가 있듯이, 일본 제국주의를 용서하지 않아야 아시아에 미래가 있다.

10년 전쯤 우병우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이 출입기자이던 내게 말했다. “초임 검사 시절 200만 원 수뢰 혐의로 어느 경찰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려고 했다. 그런데 경찰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상황이 불편해서 내가 뒤로 물러났는데 무릎 꿇은 채로 기어서 따라왔다. 지금 같으면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을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무겁다.” 누군가의 무릎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는 검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때가 생각난 것은 당시 중수2과장으로 있던 윤석열 대통령의 얼마 전 인터뷰를 보면서다. “100년 전에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검찰이 불기소권을 권력화 도구로 쓰고 있지만, 국민이 법률로 부여한 정당한 권한이다. 검사가 기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형사소송법 제51조에 정해져 있다. ①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②피해자에 대한 관계 ③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④범행 후의 정황이다. 그런데 제51조가 실은 판사가 양형에 참조하라고 만든 기술적 조항이다. 이 조항을 판사는 양형을 높이고 낮추는 데 쓰지만, 검사는 기소하지 않을 근거로 쓴다. 사법기관인 판사는 증거를 두고 무죄를 선고하지 못한다. 하지만 행정기관인 검찰은 증거를 두고도 기소하지 않을 수 있다.

수없이 많은 피의자가 검사에게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우병우 검사에게 한 것처럼 윤석열 검사에게도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불기소됐을지도 모른다. 21세기를 사는 이웃 일본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우리가 요구할 수 없다. 설령 꿇는다 해도 일본 제국주의 죄악을 대한민국이 용서할 방법이 없다. 지난날 윤석열 검사에게 불기소할 권한은 있었지만, 피의자를 도덕적으로 용서할 권한은 없었다. 애초 도덕적으로 심판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사에게 피의자를 용서할 권한이 없었듯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일본 제국주의 죄악을 용서할 권한도 없다. 일본 내각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같은 제국주의적 준동을 저지할 의무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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