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으로 치닫는 간호법발 직역갈등에 "국민들은 피로감"

안경진 기자 2023. 5. 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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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연대, 11일 2차 연가투쟁 예고
치과의사 대거 휴진···투쟁 규모 2배로
간호협회도 "거부권 행사 시 단체행동"
8일 오후 서울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5.11 대한민국 보건의료 잠시멈춤’ 대국민 설명회에서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이 4일 정부로 이송되면서 찬반 진영의 대치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오는 9일과 16일 국무회의에서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양측 모두 여론몰이에 힘쓰는 모습이다. 간호법 제정안의 본질에선 벗어난 공방전이 펼쳐지면서 국민의 피로감이 쌓여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 의료연대 "11일 파업 땐 치과의사들도 참여···투쟁 수위 높인다"

의사, 간호조무사 등 간호법 제정에 반대하는 의료직역 13개 단체가 참여하는 보건복지의료연대는 8일 오후 서울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대한민국 보건의료 잠시 멈춤 대국민 설명회’를 열고 "11일로 예정된 2차 연가투쟁에는 지난 1차 연가투쟁 때보다 참여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일 '1차 연가투쟁'이 간호조무사와 일부 개원의사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2차 연가투쟁'에는 치과의사들이 휴진 형태로 부분파업에 나서고 요양보호사와 방사선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응급구조사, 임상병리사 등 다른 직역군도 연가투쟁에 참여하면서 규모가 2배 가량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

박태근 대한치과의사협회장은 "회원들에게 공문을 보내 파업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며 "80~90%의 참여율을 기준으로 2만여 곳의 치과가 휴진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개원 의사들도 2차 연가투쟁에 맞춰 전국적으로 단축진료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환자들의 생명을 볼모로 삼는다는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11일까지는 부분 파업 형태를 고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의료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민들의 건강권이 위협받지 않는 선에서 우리 연대는 간호법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전국 동시 개최 2차 연가투쟁을 진행하기로 뜻을 모았다"면서도 "17일로 예정된 총파업의 경우 하루로 끝이 날지, 2~3일이 될지는 내부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여지를 남겼다. 오는 16일 국무회의에서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를 지켜본 다음, 투쟁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간호법 반대 직역단체들 "총파업, 대통령 거부권 행사 여부에 달려"

간호법 제정에 반대하는 의료직역 단체들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정부와 대통령실은 4일 이송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로 이송된 날부터 휴일을 제외한 15일 이내 간호법을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 관계자들이 3일 오후 국회 인근에서 열린 '간호법·면허박탈법 강행처리 더불어민주당 규탄대회'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병원 전공의들로 구성된 전공의협의회도 2일 기자회견을 통해 간호법과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의사면허취소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 여부를 지켜본 다음 파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간호법이 그간 암묵적으로 진료현장에서 행해졌던 대리수술과 대리처방을 합법화하는 계기로 작용할까 우려스럽다"며 "파업에 이르길 원치 않지만 마지막 희망인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는다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17일 연대 총파업이 현실화하면 환자들의 큰 불편이 불가피하다. 지난 2020년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추진할 당시 70%가 넘는 전공의가 단체행동에 나서며 의료현장의 혼란이 극심했다.

박명하 의협 비대위원장은 전공의(레지던트)의 파업 참여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대학병원의 단체행동은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위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심사숙고하고 있다"며 "이번 주 내에 전공의협의회와 교수협의회와 관련 논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尹 거부권에 쏠리는 눈···간호협회도 "단체행동 논의 시작"

이처럼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대한간호협회도 8일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 단체행동을 고려하겠다"며 맞불을 놨다. 간협은 이날부터 14일까지 일주일간 회원들을 대상으로 투쟁 방법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다음, 15일 결과를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간협은 그동안 의료계의 파업 행위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해 온 만큼 아직까지 총파업, 진료거부와 같은 집단 행동을 직접 언급하진 않고 있다. 현재 회원 대상으로 진행 중인 설문항목 역시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 간호사 1인이 1정당에 가입하는 캠페인 등에 대한 찬반 의견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간호협회는 유튜브를 통해 간호법 관련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자 시절 발언이 담긴 추가 영상을 공개하고, 간호법이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대한간호협회 유튜브 영상 캡처

다만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다면 태세 전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긴 힘들다.

간협은 "의사와 간호조무사 등 간호법 반대 단체들이 이미 부분파업을 벌였고 17일 총파업을 선언한 상태"라며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은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국민을 볼모로 한 파업만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간호사들의 숭고한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대한간호협회 회관에 방문해 발언할 당시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며 간호법이 대선 공약임을 적극 어필하고 있다. 해당 영상에서 윤 대통령은 “정부를 맡게 되면 (간호법을) 검토해서 의료 기득권 등에 영향 받지 않고 제가 할 것이다. 믿어달라”며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게 어떤 건지, 또 간호사들이 고생하는 건 저희가 가족들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봤다. 저는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민들 사이에선 양곡관리법에 이어 간호법 제정안이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하며 여야 간 공방이 이어지는 데 대한 피로감도 크다. 이는 정치권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의료연대가 용산에서 전개 중인 1인 시위를 지켜보던 한 시민은 “간호법 제정 여부가 실제 국민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 체감이 되지 않는데 언제까지 이런 혼란을 지켜봐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환자들은 안중에 없고 각자 밥그릇 싸움에만 치중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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