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 등굣길은 구태 행정 작품...'제2 예서'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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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가 등굣길 참사가 벌어진 청동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 내 일부 안전펜스를 차량용 펜스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영도구는 지난달 28일 학교 앞 안전펜스('경계용')가 보호 기능을 못해 황예서 양이 사망하자, 기존보다 조금 더 강화된 보행자방호용 펜스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어린 생명이 어이없는 사고로 숨진 뒤에야 행정은 여느 때처럼 불법주정차 방지 CCTV 설치를 확대하겠다거나, 안전펜스 강화 대책을 내놓는 등 사후약방문식 처방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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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나고도 같은 펜스 설치 시도
성의 있는 재발 방지대책 내놔야
부산 영도구가 등굣길 참사가 벌어진 청동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 내 일부 안전펜스를 차량용 펜스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남구 동천초에 이어 부산에서 두 번째다. 영도구는 지난달 28일 학교 앞 안전펜스(‘경계용’)가 보호 기능을 못해 황예서 양이 사망하자, 기존보다 조금 더 강화된 보행자방호용 펜스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본지는 사고 지점처럼 고지대 급경사의 위험 구간에서 또다시 강한 외부충격이 가해진다면 ‘약골 펜스’로는 아이를 못 지킨다(국제신문 지난 4일 자 1면 보도)고 지적, 급기야 구는 두 번의 수정을 거쳐 ‘차량용 펜스’ 설치로 확정했다. 다행히 지난 4일 국민의힘 이주환(연제구) 의원의 발의로 고지대 스쿨존에 차량용 펜스 의무 설치법안이 발의된 것도 힘을 실어줬다. 평소 친구나 이웃 동생 등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다는 예서 아버지의 말씀처럼, 예서 양은 떠나면서도 친구들을 위한 귀한 ‘안전’을 선물로 남겼다.
예서가 떠난 열흘 동안 취재 현장에서 만난 어른들은 여전히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학교가 생긴 지 40년이 넘었지만 청동초 등굣길은 안전펜스 없는 옹벽이 100m가량 자리잡고 있다. 학부모들은 수십년 간 민원을 넣었음에도, 구가 ‘주민 협의 우선’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답답해한다. 관련 기사를 지난 3월 말 보도했지만, 행정은 이마저도 사진찍기용 반짝 이벤트로 이용했을 뿐 이후 누구도 가시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았다.
취재를 할수록 10살 예서 양 사고는 무심한 행정이 빚어낸 ‘예고된 인재’였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이보호구역 주정차는 불법이지만 구는 여태껏 업체에 과태료도 부과하지 않았을 뿐더러, 인도에 불법 적치물이 있었음에도 ‘공식적’ 민원이 없다는 이유로 제재하지 않았다. 또 보도와 차도를 구별하는 경계용 수준의 펜스로 인명피해를 키웠음에도 사고 후에 똑같은 재질의 안전펜스를 관행적으로 설치하려고 하는 무성의한 행정에 분노를 넘어 허탈하기까지 했다. 안전을 책임지는 행정이 반발만 앞섰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 같은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이번 비극은 등굣길이라는 가장 안전해야 하는 장소가 행정의 관행·묵인 하에 가장 위험한 공간으로 변해버린 전형적인 ‘행정 실패’에 가깝다.
어린 생명이 어이없는 사고로 숨진 뒤에야 행정은 여느 때처럼 불법주정차 방지 CCTV 설치를 확대하겠다거나, 안전펜스 강화 대책을 내놓는 등 사후약방문식 처방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어린이보호구역 안전시설 조성에 1차적 책임이 있는 구청장은 빈소에서 사고원인이 무엇이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그 업체가 항상 그렇게 해왔는데 어쩌다보니 사고가 난 것 같다”고 답해 생때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 가슴에 못을 박았다. 그날 당장 내놓을 대책이 없었다면 그저 자식 잃은 부모를 부둥켜 안고 함께 꺼이꺼이 울어줄 수는 없었을까.
쏟아지는 대책 속에서 일각에선 이번 사건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그럼에도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정말 외양간을 잘 고쳐, 제2·3의 예서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발 더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행정이 움직이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을 만드는 것만이, 영도에서 자식을 키우려 한 자신의 선택을 자책하고 있는 예서 아버지에게 조금은 마음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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