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시민단체 ATM으로 전락한 정부 보조금···법 개정 통해 감독권 부여해야
23년 만에 첫 전수 조사···시민단체 투명성·도덕성 검증
자율성 핑계로 감독사각지대, ‘그들만의 성역’ 구축 비판
巨野,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으로 협동조합 퍼주기 시동
시민단체, 자체 회비로 독립성 키우되 보조금 검증 받아야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말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비영리민간단체에 대한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한 뒤 조사에 착수함으로써 시민단체의 부정 수급 등의 문제점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제정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지는 실태 조사다. 대통령실이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지난 한 해 동안 각종 협회와 복지시설·재단·연맹·시민단체 등 비영리민간단체에 지급한 보조금 규모가 총 5조 4500억 원이라고 밝힌 가운데 민간단체에 지급한 구체적 내역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비영리민간단체 보조금의 투명성 강화를 국정 과제로 제시한 만큼 조사 결과에 따라 민간단체의 말소 처리와 보조금 환급 조치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정치 기반 확대 위한 지원법 제정
정부와 지자체에 막대한 재정 지원을 가능하게 한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에 만들어졌다. 김대중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당시 시민단체 등 민간운동의 체계적 추진 등을 100대 국정 과제에 포함한 상황이어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가 직접 하지 못하는 공익 활동을 시민사회와 시민단체 육성을 통해 해결한다는 명분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영역 확장을 위한 도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한국에 머물며 한국의 시민단체를 직접 연구한 시미즈 도시유키 삿포로학원대 법학과 교수는 e메일 인터뷰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역 기반 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사회를 활성화해 지지층을 넓히려 했다”고 말했다. 시미즈 교수는 이어 “김 전 대통령 퇴임 이후에는 (한국의 좌파 진영이) 정치적 지지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시민단체를 활용했다”며 “정부·여당과 야당의 세력 싸움에 시민사회가 깊이 개입하면서 권력 투쟁은 더 치열해졌다”고 분석했다.
자율성 내세워 불법 일삼는 경우 많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부 등으로부터 보조금을 수령한 후 정치 활동을 한 민간단체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에서 피해 공무원의 실명을 밝혀 실형을 받은 김민웅 대표의 ‘서울 겨레하나’가 행정안전부 지원을 받으며 현 대통령 퇴진에 앞장섰다”며 “중고교생들의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를 개최한 ‘촛불중고생시민연대’는 여성가족부와 서울시의 지원금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보조금 부정 수령으로 반환 처분을 받은 단체가 2년 후 행안부와 서울시 등으로부터 중복으로 보조금을 받은 사실도 공개됐다. 시민단체 ‘겨레하나’는 2019년 북한 대동강 어린이 빵 공장에 콩기름을 보내겠다며 울산시로부터 남북교류협력기금 1억 원을 수령했다. 하지만 2018년에 이미 공급한 것이 밝혀졌다. 감사원의 이 같은 감사 결과를 인지하지 못한 행안부와 서울시는 2021년에 이 단체에 각각 2000만 원과 1600만 원을 지급했다. 이 단체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시와 행안부·울산시 등에서 일곱 차례에 걸쳐 총 2억 12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정부의 감시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아 시민단체의 배만 불린 결과다. 또 문재인 정부는 대북 전단지 살포 금지를 위해 통일부 등록 민간단체에 대한 표적 사무 검사를 시행한 바 있다. 정부 정책을 역행하는 단체에 대한 감사로 단체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었다.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시민단체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근거해 등록한 민간단체는 정부와 지자체 등의 막대한 재정 지원의 수혜를 받았다. 민간단체 등록의 표면적인 요건은 엄격하다. 지원법은 비영리민간단체의 요건으로 △사업의 직접 수혜자가 불특정 다수이고 △구성원 상호 간에 이익 분배를 하지 않고 △특정 정당, 선출직 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주목적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상시 구성원 수가 100인 이상이어야 한다.
이런데도 민간단체들은 그동안 정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서 그들만의 성역을 구축했다. 민간단체 등록 당시 100인 이상의 회원 명부를 제출한 후에는 실제 100인 이상이 활동하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또 영리 활동 금지에도 불구하고 암암리에 영리 활동을 해도 감시망을 피할 수 있다. 보조금을 받으면 정치 활동을 할 수 없지만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법에 정부가 이들을 감독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법 제정 당시 정부에 지원금 수령 민간단체에 대한 감독 권한을 부여하자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통제 가능성을 핑계로 내세운 단체의 반발에 의해 결국 무산됐다.
이로 인해 민간단체 지원금 전수조사는 역대 정부에서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가 민간단체지원법에 근거해 지난해 지급한 규모는 각각 65억 원과 100억 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개별 부처·지자체에 중복 등록한 단체들은 각 부처가 공공외교법과 남북관계발전법 등 개별 법에 근거해 벌이는 보조금 지원 사업을 통해 추가적인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개별 법 등이 민간단체와 민간 부문 등으로 보조금 지급 대상을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어서 사업 성격만 다르면 민간단체 등의 중복 수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각 부처·지자체별로 별도의 사업과 예산을 지원하는 탓에 이를 취합하는 시스템도 없다. 결국 진보·좌파 진영이 정치 기반 확대를 위해 만든 법안이 시민단체를 위해 국민 혈세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로 만든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일단 지자체나 행안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으면 영리 활동이나 정치 활동을 하면 안 된다”며 “그러나 이 법이 정부 보조금을 받는 민간단체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 자체를 부여하지 않는 데다 인력도 없어 감시 수단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현재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 보조금을 받은 단체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시민단체 등은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사회적경제법으로 추가 지원하려는 巨野
더불어민주당은 민간단체 지원 명분으로 시민단체를 지원하고 있는데도 친야 성향 협동조합을 추가로 지원하기 위해 ‘사회적 경제 기본법’ 제정에 나섰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달 사회적경제위원회 출범식까지 마쳤다. 이 법은 비영리 사회적 기업에 연간 70조 원 규모의 공공기관 재화·서비스 구매액의 5~10%를 사회적 경제 조직으로부터 우선 구매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겉으로는 비영리 사회적 기업 지원을 표방하지만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확장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사회적 경제 조직에 대해 국유 또는 공유 재산을 우선 매각하거나 유·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데 이어 이들의 교육 훈련까지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야당 성향의 일부 단체에 현금을 퍼주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 소형 태양광 사업을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만든 협동조합이 대거 수주하면서 논란이 불거진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시민사회발전기본법까지 발의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시민사회 발전을 위해 정부의 지원 등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며 ‘시민사회발전기본법’도 발의했다. 이미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뒤 자동 폐기되자 동일한 법안을 또다시 제출한 것이다. 이 법안은 시민사회 지원을 위해 ‘공익증진 시민사회발전기금’을 설치하도록 했다. 기금은 정부·지자체의 출연금과 융자금 등의 재원을 활용하도록 했다. 또 ‘공익증진 시민사회발전지원재단’ 설립을 통해 △시민사회 종사자에 대한 교육·훈련 △시민사회 조직 활성화를 위한 장소·시설·설비 등의 제공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지자체장으로부터 위탁받은 사업 등을 하게 했다. 시민단체에 교육과 사무실, 집기 비용을 제공하고 이들의 재정 확보를 위해 정부가 사업을 위탁하게 만들었다. 시민단체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美 BBB 성공 사례서 배워야
전문가들은 한국의 시민단체도 미국의 상업개선협회(Better business bureau·BBB)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BBB는 1912년에 설립된 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과 캐나다·멕시코 등 북미에서 활동 중인 대표적인 소비자 단체로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정부 보조금을 한 푼도 받지 않는다. 직원 수만도 2500명이 넘지만 수입원은 오직 회원비에 의존한다. 이들은 소비자들의 제품 불만과 항의 등에 무료로 대응하고 신뢰를 쌓아왔다.
한국의 시민단체도 BBB처럼 자체 회비를 통해 재원을 충당하고 투명성 확보를 위해 회계 내용 등을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정부가 전수조사 이후 등록 요건에 미달하는 민간단체를 말소하는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원법에 각 부처와 지자체에 등록 회원 확인과 회계 투명성, 보조금 집행의 내역을 감시·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것을 제안했다. 배원기 전 홍익대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가 민간단체의 현금인출기로 전락하게 된 원인은 단체에 무한대의 자율권을 부여한 지원법 때문”이라며 “이제라도 지원법에 정부의 관리·감독 권한을 넣어 지원금을 받은 단체가 공익 활동을 하는지 여부와 등록 요건 등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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