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효정 런던 베이글 뮤지엄 창업자 | “맛은 혀끝 넘어 상황과 결합…좋은 공간이 좋은 고객 경험 만든다”
“공들인 시간과 공간, 경험의 밀도(密度)가 매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공간의 구성원과 조명의 방향, 손님들이 내는 식기 소리 등 작은 디테일까지 고려해 런던 베이글만의 밀도를 만들어 냈다.”
전국 ‘빵지순례’객들의 성지(聖地)로 불리며 매일 긴 줄을 세우는 곳이 있다. 바로 안국역과 압구정로데오역에 있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다.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은 이 매장의 특별함은 단순히 베이글과 커피의 맛뿐만 아니라, 공간이 주는 특수한 분위기에 있다고 말한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을 만든 이효정 창업자 겸 CBO(Chief Brand Officer)는 최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3 유통산업포럼’에서 ‘시간을 쌓아 올리다’라는 주제로 리테일과 브랜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의 저자 홍성태 한양대 경영대 명예교수가 질문을 했다. 다음은 이 창업자와 홍 교수의 일문일답.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아침부터 많은 사람이 줄을 설 만큼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다. 매장의 이름을 이렇게 짓게 된 이유는.
“내가 좋아하고, 또 사랑하는 단어들을 합친 이름이다. ‘런던’은 내가 일하면서 경쾌하고 캄캄한 느낌보다도 젊은 에너지,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은 곳이다. ‘베이글’은 매장에서 판매하는 아이템이고, ‘뮤지엄’은 시간의 누적을 표현할 수 있는 좋아하는 단어라서 세 단어를 합쳤다.”
몬머스 커피(monmouth coffee)라는 카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았는지.
“10여 년 전에 런던을 길게 여행한 적이 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우연하게 그 카페에 들어갔다. 공간이 열 평 정도 되는 작은 카페였다. 직원들이 영국인, 인도인 등 여섯 명 바리스타의 인종이 모두 달랐고, 작은 카페였지만 손님도 많았다. 바리스타들이 손님 한 분 한 분에게 원두에 관해 설명해줬고, 손님들도 기다리는 시간 속에 여유 있게 녹아들어 서로 배려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커피를 내릴 때도 천천히 내리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굉장히 거친 방식으로 내리는데도 커피의 맛이 좋았다. 전까지만 해도 카페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나 바이브, 이런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공간에 밀도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간 F&B(Food and Beverage)와 관련한 일을 한 적이 없었는데도 ‘직업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충격을 받았다.”
‘공간의 밀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단순히 뭔가 가득 채워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 같은데.
“밀도는 단순히 기물을 많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레이어(layer)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직원의 배치도 내부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좋아한다. 공간 구성원들, 조명 방향, 내부와 외부의 공기, 손님들이 내는 식기 소리 등의 요소들은 모두 합쳐져 무수한 레이어를 만든다. 이런 것들이 공간의 밀도라고 생각하고, 이를 통해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중압감을 느낄 정도의 에너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카페는 인테리어도 중요하지만, 남다른 맛을 내는 것도 중요하다.
“맛에 계산적으로 접근한다기보다는 철저히 내 취향을 반영하는 편이다. 맛을 포함해 많은 것을 직접 경험하면, 그 과정에서 필터링을 거쳐 본능적으로 좋은 취향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베이커리 제품들도 ‘신기한 것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다. 클래식한 아이템을 해체·재조합한다거나 다이내믹함을 끌어내는 식으로 맛의 리듬감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맛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맛있는 베이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맛은 단순히 혀끝을 통해 느껴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맛을 느끼는 상황과 결합한다고 생각한다. 공간 인테리어에 힘을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베이글의 맛에서 그치지 않고, 앞서 말한 주변 공간의 레이어와 결부됐을 때 독특한 맛의 경험이 나타난다. 결국 베이글의 레시피를 개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간 전체를 함께 브랜딩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해외, 예컨대 일본 또는 영국에 매장을 낸다면 맛이나 인테리어를 어떻게 달리할 것인지.
“인종과 지역에 상관 없이 공들인 시간과 공간의 레이어, 경험의 밀도는 세계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취향을 찾아 헤매면서 그 나라나 지역의 특성에 맞추려는 것보다도 지금까지 노력해온 것들을 가져가면 외국 사람들도 그 노력을 알아줄 것이라고 본다. 그간의 경험이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고, 그것을 변형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매장의 분위기나 맛을 정교하게 기획한다고 해도 결국 소비자 경험은 매장과 고객의 접점인 매장 구성원을 통해 이뤄진다. 본인이 생각하는 매장의 방향성을 고객과 직접 접촉하는 매장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주지시키는지.
“매장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며, 이들이 매장이 가진 에너지의 핵이다. 구성원들이 고객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기 위해서는 결국 본인들 스스로가 만족스럽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매장에서 구성원들이 그 어떤 오브제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배치나 인테리어를 할 때도 직원들을 역광에 두지 않고, 자연광을 제일 잘 받는 위치에 두는 편이다. 그들이 가장 예뻐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기업인들이 감성의 감도를 높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감성의 감도는 결국 성실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길을 가는 강아지들을 관찰할 때도 눈을 기울여 심도 있게 관찰한다거나 또 마음에 들면 휴대전화로 줌을 확장해 촬영한다거나 하는 모습들도 결국 성실해야 가능한 것 같다. 타인과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도 모두 사랑의 마음이 담긴 성실함이다. 우리 각자 살아가는 것이 너무 중요한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주변을 관찰하고, 여유가 있다면 배려하고, 마음이 힘든 사람이 있다면 온전한 사랑의 마음으로 봐줬을 때 감성의 감도가 자연스레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베이글, 스콘, 케이크를 선보였다. 다음은 어떤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는지.
“또 클래식한 종류의 아이템이 될 테지만,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장르로 만들기 위해 해체와 조합을 반복 중이다. 작년 12월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고 하루에 적게는 30~40개, 많게는 50~60개 가까이 빵을 굽고 있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오픈하게 되면 열린 마음으로 찾아와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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