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만의 종목 스터디 <17>]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에 원한 건 그게 아닐 텐데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그룹 계열사 중 비교적 늦은 1982년에 설립됐다. 왕회장(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이 어느 날 엘리베이터를 접하고는 “우리도 이런 거 만들어봐라”라고 해서 생긴 현대중전기 운반기계사업부가 전신이다. 설립 당시엔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공동 설립했다. 당시의 현대중전기는 현 HD현대일렉트릭으로, 현대중공업과 합병했다가 2017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 다시 분리됐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임직원들이 “왕회장이 우리 존재를 알기나 했을까 싶다”고 할 정도로 범(凡)현대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만, 그래도 지금은 어엿한 현대그룹 지주회사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해 다른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현대전자(SK하이닉스)와 현대건설, 현대상선(현 HMM), 현대증권(현 KB증권) 등이 모두 떨어져 나가 더 이상 현대그룹 내에는 현대엘리베이터 외에 분기 영업이익이 100억원 단위로 나는 회사가 없지만 말이다.
현대엘리베이터 주주들은 비운(?)의 주주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안타깝게도 실적으로 주가가 움직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시절 현대상선이 부실화되면서 그룹 이슈 때문에 주가가 하락했고, 그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엔 북한발 뉴스로 인해 주가가 널뛰었다. 그 이후에는 2대 주주 쉰들러 홀딩스(이하 쉰들러)와 소송 때문에 주가가 급등락했다. 그리고 쉰들러와의 다툼은 ‘현재 진행형’이다. 쉰들러의 대법원 승소로 현정은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배상해야 했다. 2014년 쉰들러가 현 회장 등이 파생금융상품 계약으로 현대엘리베이터에 7000억원에 가까운 손해를 입혔다며 소송을 제기한 뒤 9년 만에 나온 최종 결론이다.
대출 긁어모은 현 회장 일가, 경영권 분쟁은 재발 조짐
지금 생각하면 부질없지만, 당시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을 지키기 위해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해 재무적투자자(FI)를 모았다. 현대중공업(12.85%)과 현대건설(6.06%), 현대삼호중공업(5.75%) 등이 힘을 합쳐 현대상선을 빼앗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 지분이 22%에 불과했고, 이 때문에 돈을 주고 우호 주주를 끌어모아야 했다.
넥스겐, 케이프 포천, 자베즈, NH농협증권(현 NH투자증권),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교보증권, 메리츠종금증권(현 메리츠증권) 등이 파생상품계약을 통해 우호 주주 역할을 맡게 된다.
현대상선을 지키겠다고 현대엘리베이터가 쓸데없는 데 돈을 쓰고 있으니,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였던 쉰들러는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쉰들러는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현대엘리베이터를 욕심내고 있기에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법원판결이 나온 지 불과 6일 만에 강제집행을 위한 집행문 신청에 나선 것만 봐도 쉰들러가 손실을 보전받는 것보다 현 회장 측 지배력을 흔드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쉰들러는 그전에도 여러 차례 현대그룹 측에 현대엘리베이터 매각 의사를 타진했다고 한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네트워크가 10.6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현 회장과 현 회장의 모친인 김문희 여사가 각각 7.80%, 5.50%를 들고 있다. 최대 주주 측 지분을 모두 합치면 25.91% 정도 된다. 반면 쉰들러는 15.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국민연금공단이 5.49%, 오르비스 인베스트먼트라는 다국적 펀드가 6.6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쉰들러가 오르비스와 손잡고 함께 경영권 참여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데,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오르비스가 지분 공시를 낼 때 업무상 연락처를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명기해 두고 있다는 점이다. 김앤장은 쉰들러의 법률 대리인이기도 하다. 오르비스는 지난 2021년 11월 처음 지분 5% 이상 신고를 했는데, 첫 취득 시점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보유 목적은 ‘단순 투자’로 기재해 두고 있다.
현 회장 측은 회사에 납부해야 할 자금을 (쉰들러의 기대와 달리) 현대무벡스 등 다른 계열사 지분을 유동화해 마련했다. 현 회장이 경영권을 지켜내면서 4월 7~13일 13.6% 올랐던 주가를 14일 하루 만에 모두 반납했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이 끝났다고 보기는 애매한 상황이다. 현 회장 측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의 79.6%가 담보로 묶였기 때문이다. 고령의 김 여사 지분마저 44%가 담보로 제공됐다. 추후 상속이나 증여 시 정리 절차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적에 대한 증권가 전망은 부정적
현대엘리베이터는 ‘비전 2030 매출 5조 글로벌 톱5’를 목표로 내걸고 있지만, 지난해 2월 이후 증권업계 보고서가 나오고 있지 않다. 당시 나온 보고서도 사실 긍정적이지 않다. 황어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시 보고서에서 중국 시장 매출 성장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투자 의견은 ‘중립’을 냈다. 나진상가를 매입하는 데 1004억원을 집행하는 등 비핵심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자동화 부문을 현대무벡스로 분사해 신사업 동력이 상실된 점을 부정적인 요인으로 꼽았다. 또 쉰들러와 소송으로 인한 지배구조 불확실성도 매수를 추천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21년 1290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430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아파트 분양이 늘면서 매출이 7.9% 늘어난 상황에서도 점유율 하락으로 인해 물류비, 원재료비 인상분을 전가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엘리베이터 승강기 신규 설치 대수는 1만2731대로, 점유율이 38.90%를 차지했다. 2위와 3위는 티케이와 오티스로 각각 26.5%, 12.5%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선두이긴 하나 한때 50%에 달했던 점유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 부담 요인이다. 한 펀드매니저는 “현대엘리베이터는 2021~2022년 실적 대비 현재 주가가 글로벌 승강기 업체와 비교해도 비싼 수준”이라며 “현재도 경영권 분쟁 기대감이 녹아 있는 상태라 쉰들러의 대응 수위에 따라 주가가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 투자자들은 쉰들러가 당장 행동에 나설 것을 기대하지는 말아야 한다. 쉰들러는 2003년 한국 진출 이래 20년간 오매불망 현대엘리베이터를 쳐다보고 있다. 끈기가 대단하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주가가 비교적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현시점에 급하게 대량 매집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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