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로이트 글로벌 경제 리뷰] 치솟는 식비에 지갑 닫는 소비자들, 인플레이션 둔화 이끈다
물가 급등 와중에 식료품 가격이 치솟으며 ‘먹고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식비 급등에 타격받지 않을 소비자는 없다. 자동차와 여행 등 고가 지출은 물론 양말 같은 저가 품목도 돈이 없으면 사지 않으면 되지만, 먹는 것을 중단할 수는 없다. 특히 엥겔지수가 높은 저소득층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물가가 오르는 초기에는 소비자들이 있는 돈을 긁어모아 어떻게든 기존의 생활 패턴을 유지하려 애쓴다. 실제로 상당수 소비자가 지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기간 저축을 헐었다. 하지만 저축도 거의 동났는데 물가는 내려가지 않자 어쩔 수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의 현재와 미래의 절약 행태는 가격 전략, 마케팅, 홍보, 제품 믹스 등 소매 업체들과 포장소비재(CPG) 브랜드들의 전략에 중대한 요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식료품 ‘스티커 쇼크(sticker shock·예상보다 비싼 제품 가격표에 소비자들이 충격을 받는 현상)’가 지속되자 이외 지출도 급감하며, 지난 1년간 전 세계 소비자들의 비필수재 지출 의향이 계속 악화하고 있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전체 소매 판매가 감소하며 이러한 소비자 정서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냉장고 털고, 식재료 낭비 줄이는 소비자들
2022년 9월부터 5개월간 딜로이트가 조사한 소비자 식료품 구매 행태 12가지 중 6가지가 절약 행위였다. 3가지는 식료품 낭비를 줄이려는 노력이었고, 3가지는 동일 품목 중 값싼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가장 많이 나타난 행태는 낭비를 줄이려는 노력이었다. 전 세계 소비자 2만3000명을 대상으로 한 딜로이트 ‘글로벌 컨슈머트래커’ 서베이에 따르면, 응답자 43%는 집에 있는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음식물 낭비를 줄이고 있다고 답했다(그림 1). 이러한 정서는 다른 소비 행태를 파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재와 소매 업체들이 눈여겨봐야 한다. 음식물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소비자는 냉동 및 상온 보관 식품을 더 많이 구입할 것이고, 신선식품을 구입하더라도 필요한 양만 구매하려 할 것이다.
낭비를 줄이려는 두 번째 노력은 필요한 것만 구매하는 행태로 나타났다(약 32%). 이러한 소비자들은 신제품이나 행사제품에 현혹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 노력은 원하는 것보다 적게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약 20%). 세 번째 응답은 소비자들이 음식을 절약하는 차원을 넘어 식량 불안정을 느끼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 소비자들은 식료품 절약을 위해 구매 행태뿐 아니라 품목도 바꿨다. 값싼 제품을 선택해 식비는 줄이되 양은 유지하는 것이다. 당연히 육류와 해산물 등 가격이 높은 항목에 대한 지출이 줄었다. 응답자 31%가 더 값싼 육류로 대체해 단백질을 보충하고 있다고 답했고, 29%는 비싼 항목 대신 콩, 쌀 등 저가 식재료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식료품 업계는 제품 믹스에 변화를 줘야 할 수도 있고, 값싼 식재료 재고 확보 경쟁으로 공급망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비자 행태 변화가 소매 업체들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컨슈머트래커’ 응답자 약 29%는 유명 브랜드 제품보다 값싼 스토어 브랜드를 선택하고 있다고 답했다. 소비자들이 싼값에 이끌려 스토어 브랜드를 구입했는데 품질과 맛에 만족한다면, 계속 그 브랜드를 고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역으로 이는 CPG 브랜드에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경제 개선 조짐에도 소비자 절약 행태 계속
세계 경제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우세하지만, 최근 수개월간 경제 개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주요국에서 완화되기 시작했고, 실업률은 여전히 매우 낮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식비 절약 행태는 2022년 9월부터 5개월간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림 1의 6가지 소비자 절약 행태에 대한 장기적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딜로이트가 집계하는 ‘음식절약지수(FFI·Food Frugality Index)’는 올해 1월까지 5개월간 보합 양상을 보이고 있다(그림 2). FFI는 식료품을 절약하는 소비자 수가 줄어들면 하락한다.
FFI 변동성은 인플레이션율 등 경제 여건에 따라 국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인플레이션율이 여전히 사상 최고인 호주가 주요국 중 FFI가 가장 높다. 식품 인플레이션이 유독 높은 영국도 FFI가 높은 편이다. 지난해 12월 영국 식품 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16.8%로 1977년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FFI는 소득에 따라서도 달라지며, 당연히 저소득층의 지수가 높다. 저소득층의 식비 지출이 훨씬 가파르게 줄기 때문에, 한 국가의 FFI 변동성은 저소득층의 행태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소득 격차에 따라 식품 시장도 양분되지만, 중산층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FFI를 끌어올린 것은 대부분 중산층이었다. 고소득층조차 독특한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다. 여타 식비 절약 행태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당수 고소득층 소비자들이 유명 브랜드 대신 스토어 브랜드를 선택한다고 답했다.
허리띠 졸라매는 소비자덕 인플레 둔화 전망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해 8월 연준의 긴축 정책으로 가계 고통이 예상된다며, 물가를 잡기 위한 비운의 대가라고 말했다. 딜로이트의 FFI는 소비자의 기본적인 필수 구매 행태 변화를 파악해, 이러한 가계 고통을 수치로 집계하기 위한 지수다.
현재의 식품 인플레이션은 공급 부족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공급 경색이 일부 완화됐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긴축 정책으로 통화공급량이 줄어 물가 압력이 조금씩 줄고 있다. 하지만 물가는 으레 내려가는 속도보다 올라가는 속도가 빠르다. 여기에서 소비자들의 풀뿌리 노력이 힘을 발한다. 소비자들이 물가 상승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면, 소매 업체와 소비재 기업들의 가격 결정력이 약화된다. 고통스러운 과정이 되겠지만, 소비자들의 절약이 선행되면 식품 소매 가격 상승세가 완화되는 데 도움이 된다.
식품 인플레이션에 대한 업계 대응 ‘긴요’
인플레이션과 소비자 절약 행태는 결국 평형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여전히 전 세계 곳곳에서 식품 인플레이션율이 매우 높고, 소비자들의 절약 행태는 5개월간 변함이 없다.
식료품 도소매 업체들은 비용 관리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낭비와 재고 손실을 줄이고, 재고관리단위(SKU)도 축소하고, 매출 이익을 엄격히 관리해야 하며, 거래 자금을 공격적으로 비축해야 한다. 소매 업체들은 매장에서 소비자 절약 행태를 파악하고 관련 데이터를 CPG 브랜드와 공유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의 가격 인상 반발 동향과 심리를 파악하면, 사업체 운영의 의사결정과 가격 협상에도 도움이 된다. 브랜드들은 가격 보전 노력을 소비자에게 최대한 어필하며, 그들과 한 편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팬데믹과 역대급 물가 급등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조직의 민첩성이 여느 때보다 중요해진다. 오늘날 소매 업체와 제조 업체들은 기존의 사업 전략과 모델을 재구성하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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