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의 일본 탐구 <34> 오미 상인 후예 150년 전통의 ‘다네야’ 현장을 가다] 제철 식자재에 계절감 있는 포장…자연과 조화 이룬 제과 왕국
일본 중부에 시가현(옛 오미)이 있다. 유명 관광지 교토, 나라와 인접해 있으나 한국인에게 덜 알려진 곳이다. 일본 최대 호수 비와호를 끼고 있어 풍광이 아주 빼어나다. 전국 시대부터 수운 무역이 활발해 상업 도시로 번성했다. 오미(近江) 지방을 근거로 활동한 오미 상인은 전국 상권을 놓고 ‘오사카 상인’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시가현 오미하치만(近江八幡)은 화과자(일본 전통 과자)로 유명한 ‘다네야(たねや)’의 본거지다. 1872년 창업한 이 회사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물자가 부족한 시대에 ‘밤과자’로 큰 인기를 모았다. 1951년 서양식 과자와 빵 시장에 진출했다. 이어 1980년대에 도쿄, 오사카의 고급 백화점에 출점, 전국 브랜드로 성장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7년, 창업 후 처음으로 연간 매출이 200억엔(약 1980억원)을 돌파했다. 독자 전략으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지난해 전성기 수준으로 매출이 회복됐다. 창업 4세대인 야마모토 마사히토(山本 昌仁) 사장이 이끌고 있으며, 직원은 2000여 명이다.
관광 명소 라코리나, 지역 경제 살려
오미하치만은 교토나 오사카에서 승용차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인구 8만 명의 소도시인데도 사람들이 몰려오는 시설이 있다. 필자가 찾은 지난 3월, 평일에도 ‘라코리나(La collina)’ 입구 주차장은 각지의 번호판을 단 수백여 대 차량이 몰려 북새통이었다. 다네야가 2013년 말 완공한 라코리나는 이탈리아어로 ‘언덕’이란 의미다. 고품질 채소, 과일, 쌀을 직접 재배하고, 그것을 식자재로 활용해 과자, 빵을 만들어 방문객에게 판매한다.
라코리나는 동화에 나오는 거대한 산림 속 ‘빵 왕국’ 같았다. 초록색 아치 정문을 들어서면 환상적인 녹색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저곳을 걸어 다녀 보면, 고객들의 탄성이 들린다. 황금빛 쌀이 있는 벌판과 송사리가 있는 개울 등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전원 풍경이다. 풀이 무성한 커다란 삼각 지붕 건물에는 ‘클럽 하리에’ 매장이 있다. 바움쿠헨 케이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브랜드다. 장인들이 갓 구워낸 빵을 현장에서 맛본다. 그 옆에서 화과자 가게 다네야도 성업 중이다. 카페에선 방금 만든 카스텔라와 커피, 차 등을 판다. 현지 식자재를 듬뿍 사용한 오므라이스를 파는 레스토랑도 있다.
라코리나의 아이디어를 내고 만든 주인공은 창업 4세대 경영자인 야마모토 마사히토 사장 겸 CEO(최고경영자)다. 이 땅을 구입한 3대 사장인 부친 야마모토 도쿠지는 원래 디저트와 다양한 빵과 과자를 파는 대형 판매센터를 구상했다. 2011년 취임한 아들이 그런 계획을 완전히 틀었다. 마사히토 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도쿄, 오사카, 나고야에 없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다네야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승부를 걸었다”고 설명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과자와 빵은 제철에 나오는 식자재로 만든다. 상품 포장은 계절감을 내도록 그 시기에 맞춰 세심하게 신경 쓴다. 방문객들은 다른 곳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맛보고 감동한다. 소비자의 호평이 이어지며 라코리나는 10년 만에 시가현에서 가장 인기 높은 대중 집객 시설로 자리 잡았다. 라코리나를 찾는 방문객은 연간 300만 명을 넘는다. 외지 고객이 매일 몰려들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독자 전략으로 극복
3대 사장 도쿠지는 시골 단팥빵 가게를 전국 브랜드로 올려놨다. 값비싼 화과자가 주류였던 도쿄 미쓰코시백화점에 1984년 시가현을 벗어난 첫 번째 다네야 매장을 열었다. 우아하기보다는 투박한 시골 맛의 밤과자가 도시인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2011년 4대 사장에 취임한 마사히토는 부친과 또 다른 전략으로 회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그는 지역 집중 시설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존재감을 얻었다. ‘자연과 친밀감’을 내세운 라코리나를 유명 관광 시설로 키웠다.
지역을 내세운 독자 전략으로 성공한 다네야도 코로나19 발생 초기 고전했다. 2020년 초부터 백화점은 물론 전국 주요 지역 매장이 문을 닫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사히토는 포기하지 않았다. 편의점과 슈퍼마켓으로 판로를 확대하고,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만들어 판매 회복에 안간힘을 썼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22년 매출은 코로나19 이전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경쟁력 원천, 오미 상인 ‘산포요시’ 정신
오미 상인은 오사카 상인, 이세 상인과 함께 일본 3대 상인으로 꼽힌다. 오미 상인은 500여 년 전부터 활약했다. 오미 상인은 본업에 매우 철저했다. 이들은 긴 막대저울(天秤棒)을 들고 다녔다. 베, 옷감, 약, 칠기 등을 등에 지고, 북으로 홋카이도부터 남으로 규슈까지 수천 킬로미터가 넘는 행상을 했다. 중국은 물론, 동남아 등 해외시장도 개척했다.
약자가 강자에게 먹히는 전국시대에도 이들은 ‘기업가 정신’을 지켰다. 오미 상인은 ‘산포요시(三方良し)’ 정신으로 장사를 했다. 상업(사업)이란 생산자, 소비자는 물론 사회에 이익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윤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배려했고, 사회 공익을 중시했다. 최상철 간사이대 상학부 교수는 “간사이에 뿌리를 둔 종합상사 이토추, 스미토모, 미쓰이를 비롯해 백화점 다카시마야, 세존그룹 등이 오미 상인의 계보를 잇는 대기업”이라고 설명했다.
3대 사장 도쿠지는 ‘다네야의 마음’을 통해 창업 정신을 가족과 임직원에게 항상 강조했다. 사업의 출발점인 과자에 대해선 “과자는 사람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음식이기 때문에 청결하고 맛있고 보기에도 예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제품을 만들기 위해 명심해야 할 5개 마음가짐(근무 자세)을 남겼다. 첫째, 상인은 어떤 일이든 스스로 소중히 돌봐야 한다. 딸이 시집간 곳에 자신이 만든 상품이 갈 수도 있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둘째, 공경하는 마음이야말로 상인이 가져야 할 자세다. 상품은 내 생명과 같고, 고객은 생명의 원천이다. 이런 가르침을 새기면, 감사와 공경하는 마음이 생긴다. 셋째, 고객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인사가 내일의 장사로 이어진다. 넷째, 궁리하고 연구하라. 궁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면 항상 새롭게 나아갈 수 있다. 다섯째, 단장하는 자세다. 정성을 들여 단장하면 상품도, 진열대도, 의상도 더 아름다워진다. 이는 풍요로운 생활로 이어진다.
혁신아 마사히토 사장의 ‘전통과 혁신’
마사히토 사장은 제과·제빵 업계에서 ‘혁신아’로 불린다. 그는 취임 이후 10년간 창업 정신을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다. 꾸준히 화과자 품질을 높였고, 과자 생산에 올리브 오일을 사용하는 혁신적인 제조 방식을 도입했다. 자연과 사람의 공존을 테마로 하는 시설과 메뉴를 계속 선보였다. 2015년에는 다네야그룹의 플래그숍 ‘라코리나 오미하치만’을 오픈했고, 2016년에는 그룹 본사를 라코리나 시설 안으로 이전했다. 본사를 창의적 발상을 키우는 장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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