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부영의 브랜드 & 트렌드 <34>] 따뜻한 브랜드 만들기…브랜드 목적 선언에서 시작된다
소비자는 브랜드를 ‘사람’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브랜드를 사람으로, 로고 등 비주얼 아이덴티티(visual identity·시각적 정체성)를 그들의 얼굴로, 기업을 각각의 특징을 가진 집단이나 부족으로 치환해서 생각한다. 사람이 가진 성격적 특징을 브랜드에 적용한 브랜드 개성(personality)은 브랜드 전략에서 여전히 중요시되고 있다. 브랜드 개성을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펼치는 경우, 아예 브랜드를 의인화해서 정의하기도 한다. ‘우리 브랜드는 사람으로 따지면 이러이러한 사람과도 같다’고 규정하는 식이다. 이 모두가 브랜드를 사람처럼 여기는 소비자의 성향에 부응하려는 노력이다. 삼성 사람들은 어떻고, 현대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다는 식의 표현도 기업을 부족 집단처럼 생각하는 성향 때문이다. 브랜딩에서 사람은 이처럼 중요하다.
브랜드 자체를 사람으로 보려는 소비자의 성향을 생각하면 브랜드를 직접적으로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기업의 ‘임직원’은 더더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내부 브랜딩이 중요한 이유다. 브랜드와 사람의 연계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우선 소비자는 무생물인 제품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기업은 그 브랜드의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다. 우리는 제품의 품질, 스타일, 이전 경험, 구전(口傳) 등을 통해 임직원이 어떤 사람들인지 판단하게 된다. 선천성 대사이상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 특수 분유를 만드는 매일유업, 불과 10여 명의 아이를 위해 공장을 멈추고 생산한다는 매일유업의 특수 유아식을 보고 우리는 매일유업이 사람으로 따지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게 되고 임직원은 또 어떤 사람들일지를 짐작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임직원을 통해 브랜드를 판단하는 것이다. 설혹 제품을 써본 적이 없어도 그 기업에 다니는 임직원과 엮인 개인적인 경험으로 그 브랜드를 재단하는 것이다. 학창 시절 내가 싫어하는 친구가 아주 좋은, 많이들 부러워하는 회사에 취직하게 된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럴 경우 내가 싫어하던 사람을 긍정적으로 다시 보게 되던가? 아니면 좋다고 평가받는 회사를 아예 안 좋게 보게 되던가? 사람과 엮인 경험으로 인해 그 사람이 다니는 회사, 브랜드는 이럴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사례는 흔한 편이다.
유능함과 따뜻함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인 수잔 피스크(Susan Fiske)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유능함(competence)’과 ‘따뜻함(warmth)’이라고 주장했다. 유능함은 목적한 바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사람으로 따지면 재능이나 재주, 창의력, 지능 등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 따뜻함은 진실하고 인간적인 친밀감을 뜻한다. 어떤 사람이 다정하고 친절하다면 그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다. 또 진실하고 정직하며 그렇기에 신뢰할 만한 사람이면 그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얼마나 유능하고 또 얼마나 따뜻한가에 따라 예측 가능한 감정과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나, ‘솔직하고 친절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브랜드로 바꿔서 생각하자는 것이 수잔 피스크의 책 ‘어떤 브랜드가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가’의 일관된 주장이다. 브랜드의 유능함은 ‘돈값을 제대로 하는가’이다. 브랜드의 따뜻함은 ‘얼마나 고객 중심적이고 솔직한가’이다. 사람들은 브랜드의 따뜻함과 유능함에 존경과 구매 의향, 충성심으로 보답한다고 한다. 유능함을 보여주는 능력과 따뜻함을 보여주는 좋은 의도를 통해 소비자의 애정과 충성심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돈값을 제대로 못 하는 브랜드, 유능함이 현저히 떨어지는 브랜드는 시장에서 도태된다. 어지간한 브랜드는 유능함에서 크게 문제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남은 것은 따뜻함이다. 유능함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따뜻함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 수잔 피스크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인간에게 가까운 브랜드
룰루레몬은 유능함과 따뜻함으로 성공한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가치 있는 의도 추구 원칙’을 준수해 열광적인 팬을 확보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룰루레몬은 시작부터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고 이를 경영 원칙으로 삼았다. 룰루레몬은 고객과 직접 소통하며 자신의 좋은 의도를 전파하고 있다.
룰루레몬에선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다르다. 고객은 ‘게스트(Guest)’로, 매장 직원은 ‘에듀케이터(Educator)’로 칭한다. 세일즈 직원이 아닌 에듀케이터들은 타 의류 매장 직원보다 교육 수준이 높고 임금도 많이 받는다. 호칭에 어울리게 에듀케이터들은 게스트들에게 제품을 교육하고 가장 적합한 옷을 제안해 준다.
마크 셰퍼(Mark Schaefer)의 책 ‘인간적인 브랜드가 살아남는다’에는 마케팅의 거두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의 인터뷰가 소개돼 있다. “현재와 같은 첨단 기술의 세상에서 소비자들이 갖지 못하는 것이 인간적인 접촉입니다. 소비자들은 진정한 관계에서 오는 만족감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옛날에는 브랜드가 사람들의 니즈에 대해 완벽한 해결책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브랜드가 환상을 팔았던 겁니다. 마케팅이 과한 약속을 내 걸었던 겁니다. 현재 우리 세상은 진정한 친밀감과 경험에 목말라 있습니다. 브랜드는 좀 더 인간적이고 진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완벽해지려는 노력은 그만둬야 합니다. 브랜드가 인간에 더 가까워져야 합니다. 다가가기 쉬워야 하고, 호감이 가야 하고, 때로는 취약한 모습도 보여야 합니다.”
브랜드에 있어 유능함보다 따뜻함이 훨씬 더 중요해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유능함만으로 고객의 충성심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품질만 앞세워서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 수 없고 가치 있는 의도, 즉 따뜻함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따뜻한 선의를 가지고 고객과 관계를 맺고자 할 때, 비로소 소비자는 열린 마음으로 지갑을 열게 될 것이란 말이다.
인간 중심의 브랜드 목적
룰루레몬은 브랜드 목적에서 그들의 의도를 천명했다. 세상을 위해 어떤 존재가 되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거기에 맞게 브랜딩을 펼쳐 온 것이다. 그들의 브랜드 목적은 ‘세상을 평범함에서 위대함으로 끌어 올린다’다. 평범한 사람을 위대한 사람으로 발전시킨다는 각오다. 그래서 사람을 부르는 호칭도 바꾼 것이다. 따뜻함을 중시하는 브랜드는 인간 중심의 브랜드 목적을 세우는 것에서 모든 브랜딩을 수행해야 한다. 원칙과 신념이 공표되고 나면 사람은 거기에 따르려는 무의식적인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태도(좋아한다, 싫어한다)와 행동(산다, 안 산다)이 일치하지 않을 때, 심리적으로 불편해진다. 태도와 행동, 신념과 결과의 불일치로 불편해진 마음 상태를 ‘인지 부조화 상태’라고 한다. 사람들은 태도, 신념과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강력한 경향성이 있다. 안 그러면 마음이 너무 불편해지니까. 태도와 행동이 배치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언하면 된다. 선언하면 실천하게 된다. 태도를 공표했기 때문에 인지 부조화에 빠지지 않으려면 공표한 태도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 브랜드가 어떤 역할을 하고 왜 존재하는가를 밝히는 것이 미션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하기에 존재 이유가 충분하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 미션이다. 거기에 우리 브랜드의 세계관까지 더해지면 미션은 브랜드 목적(purpose)으로 승화된다. 따라서 브랜드 목적이 인간 중심적이어야 그 브랜드는 따뜻함을 일상적으로 추구하고, 마침내 인간적인 브랜드로 각인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서빙로봇 시장을 주도하는 VD컴퍼니의 브랜드 목적이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도 사람을 귀하게 한다’라고 정해진 것은 유능함을 넘어 따뜻함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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