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돋보기] 전세 사기 피해 대책…세입자의 선택은
전세 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한시적 특별법 제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압력이 작용한 결과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법을 놓고 여야 간 이견을 드러내고 있어 최종 결과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어떤 방안이 확정되든 세입자는 보증금을 100% 돌려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세 사기 사건을 계기로 임대차 시장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전세 사기 사고가 많았던 빌라 등 비(非)아파트의 경우 전세에 대한 불신으로 월세화가 급속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세입자의 선택: 경매받을까, 계속 살까
정부와 여당은 전세 사기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서 한시적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깡통전세’ 위기에 몰린 세입자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주는 게 핵심이다. 하나는 세입자가 살던 집이 경매에 부쳐지면 세입자가 우선매수권을 활용, 입찰에 참여해서 낙찰받는 것이다. 아니면 LH에 우선매수권을 넘기고 공공 임대주택에서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최장 20년간 사는 것이다. 세입자는 이를 놓고 적지 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세입자는 자기 처지, 향후 집값 전망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자세히 알아보자. 먼저 살고 있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될 경우 지금 거주 중인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준다. 현재는 민사집행법상 공유 지분은 경매 과정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만약 세입자에게도 경매에서 우선매수권을 주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 이번에 특별법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세입자는 자신이 거주 중인 집값이 오른다는 기대가 있을 경우 경매에 참여, 낙찰받을 것이다. 우선매수권은 제삼자인 입찰자가 경매에서 최고가를 신고하면 임차인이 해당 입찰자보다 우선해서 집을 낙찰받을 수 있도록 하는 권리다. 임차인이 최고 낙찰가를 지불하면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는 피해자에게 장기 저리로 낙찰 대금 대출을 지원하고 취득세도 감면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시장 교란 세력이 몰리면 세입자가 집을 시세보다 더 비싸게 살 우려도 없지 않다.
경매 입찰 참여나 내 집을 갖는 것에 부정적인 세입자가 있을 수 있다. 빌라나 다세대주택을 낙찰받아도 당장 가격이 하락할 수 있고 미래 전망이 밝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아예 LH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하고 살던 집에서 계속 거주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할 것이다. 세입자는 해당 주택에 최대 20년까지 시세의 40~50%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다. LH는 올해 2만6000여 가구를 임대주택으로 매입할 예정인데, 사기 피해자 주택이 몰려 있는 인천 미추홀구, 서울 강서구 쪽이 집중 매입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이 든다. 세입자가 살던 집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 할 사정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이때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혜택을 받고 임대주택에 살 수 있을까. 아직 세부 내용이 명확하게 나온 게 없다. 세입자는 정부의 세부 방안이 발표되면 여러 가지 고민을 해본 뒤 자신에게 유리한 방안으로 결정할 것이다.
야당,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 찾게 해주자
정부·여당은 피해자가 당장 집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주거권을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말하자면 세입자의 주거 안정에 초점을 두고 있는 셈이다. 야당은 이것으로는 전세 사기 피해자를 지원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키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주장은 공공기관이 피해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 반환 채권을 할인 가격으로 매입한 뒤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자는 것이다. 그다음 경매에서 주택을 낙찰받아 LH 등 공공주택 사업자나 민간에 매각해 비용을 회수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피해자들의 임차 보증금을 정부가 보전해주자는 얘기다. 세입자가 전세 사기를 당한 집에서 계속 살기보다는 주거지를 옮기고 싶어할 텐데, 이를 지원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개인 간 거래에서 발생한 사기 피해를 국가가 보상하는 전례를 남길 수 없다는 것, 과거 다른 사기 피해자와 형평성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세입자는 경매에 부쳐지면 대부분 2순위다. 보증금 반환 채권을 할인 가격에 매입하면 세입자에게 돌아갈 몫이 없다. 결국 그 부족분을 국가에서 세금으로 메워줘야 한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물론 야당도 사기 피해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전액 되돌려주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적절한 수준’ 혹은 ‘최소 50%’를 설정하고 있어, 세입자가 100% 만족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여당 안이든, 야당 안이든 세입자 입장에서는 최선보다는 차선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깡통전세 증가 불가피
요즘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은 거래 빙하기를 맞고 있다. 전세 사기 후폭풍으로 매수자든, 전세 세입자든 나타나지 않은 결과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서 1분기 연립·다세대주택 거래량은 월평균 1488건이다. 고금리 태풍으로 거래 절벽이 심했던 지난해 하반기 월평균 거래량(1750건)보다 15% 줄어든 것이다. 아파트는 그나마 거래 절벽에서 탈출하고 있지만 연립·다세대주택은 딴판이다. 게다가 매매 가격 대비 전세 가격 비율(전세가 비율)도 높다. KB국민은행 부동산에 따르면, 3월 전국 연립주택의 전세가 비율은 71.5%, 인천은 73%에 달한다. 전국 아파트 전세가 비율 65.9%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결국 연립·다세대주택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돈을 많이 빌려줬다는 얘기다. 매매 가격이 조금이라도 더 하락하면 깡통전세 사고가 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택 임대차 시장 변화 예상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세 위주의 우리나라 주택임대차 시장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빌라, 연립·다세대주택에서 전세 보증금을 떼이는 사고가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들 주택에서 전세 사기 트라우마가 강하게 생길 것이다. 따라서 세입자가 생존 차원에서 전세보다 월세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비아파트(빌라, 연립·다세대주택, 오피스텔)는 빠른 속도로 월세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파트는 그나마 전세가 유지될 것이다. 최근 들어 아파트 전세 거래량이 다소 늘어나고 있다. 전세 대출 금리가 최저 연 3%대까지 낮아졌기 때문이다. 서울 기준 아파트 전·월세 전환율은 연 4.5% 수준.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세 대출 이자가 싸므로 월세보다 전세를 선택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금리가 전·월세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비아파트에서 생각보다 빠른 월세화는 기존에 살고 있는 집주인과 세입자에게는 골치가 아플 수 있다. 집주인은 새로운 전세 세입자를 구해야 기존 전세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 일종의 보증금 돌려막기다. 하지만 세를 구하려고 오는 사람이 전세가 아닌 월세를 찾는다면,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미스 매칭이 나타날 수 있다. 비아파트 시장에선 역전세난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본격적인 봄 이사철이다. 깡통전세 피해를 안 보려면 세입자는 이제 꼼꼼히 따져야 한다. 전세로 입주하더라도 대출금과 전세 보증금을 합쳐서 80% 이상인 것은 위험하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보증금을 낮추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전세 사기 의심 지역 비아파트는 전세는 피하고 월세를 선택하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전세 매물을 보더라도 보증보험이 가입되지 않는다면 계약을 삼가는 것이 좋다. 비아파트의 경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50~70% 선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파트보다도 더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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