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파워 인터뷰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 “경제학은 권력의 언어, 세상 바꾸려면 알아야”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or) 2023. 5. 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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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서울대 경제학,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석·박사, 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성과주의에 짓눌린 자기 착취의 현재를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피로 사회’로 명명했듯, 선진국 경제 발전과 세계화의 위선을 낱낱이 명명한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와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 세계에 경종을 울렸다. 10년 만에 출간한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경제학자와 셰프가 만나 신나게 퓨전 지식 테이블을 차리듯, 마늘과 소고기와 국수와 초콜릿까지 식재료를 에피타이저 삼아 경제학 이슈라는 메인 메뉴를 알차게 풀었다.

장하준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부었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도덕철학의 분과로 시작한 경제학이 그 위대한 윤리적 뿌리를 잊은 채 탐욕의 선을 넘은 것을 개탄하면서.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오만한 전제는 정치학을 경제학의 아류로 만들었고, 지금 우리는 전례 없이 잦은 금융 위기, 인플레이션, 생태계 파괴, 지구 온난화라는 엄청난 청구서를 받아 들고 있다.

선생을 비주류 경제학자로 세상에 알린 ‘사다리 걷어차기’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제 현대의 고전이 됐다. 역동과 융합으로 순혈주의 경제학의 위선을 쪼개버린 일은 통쾌했다. 그런데 이번 책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정말 괴상한 책이더라. 마늘에서 시작해서 멸치, 국수, 코카콜라, 호밀⋯, 식재료로 시작해서 경제학으로 점프하는 스토리텔링에 읽는 내내 침이 고였다. 글 쓰는 작가로서 야심인가? 경제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사명인가?
“내가 요리를 좋아한다. 그걸 미끼로 경제학 문맹자를 끌어들였다. 세상만사 모든 게 돈이라는 기준으로 판단이 된다. 영국은 왕실의 존폐도 지지자와 반대론자가 부딪히면 ‘관광 수입이 엄청나다’로 유지 인정이 된다. 성공회 국교 국가의 수장이 왕이고 사회 기틀인데, 결국은 돈으로 존재가 정당화되는 거다. 그래서 나는 주장한다. 시민이 경제를 아는 게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그러니까 선동을….
“선동하는 거다. 경제학이 권력의 언어가 됐으니 세상 바꾸려면 경제학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국민에게 배우라는 거다. 지식이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면 제동을 걸 방법이 내부에서는 안 나온다. ‘경기 변동 다 풀었다. 금융 위기는 없다’라는 이론으로 노벨상 탄 경제학자는 2008년 금융 위기가 왔을 때, 아무런 비난도 안 받았었다. 노벨 집안에서 상 박탈하거나 노벨 이름 빼버리라고까지 했는데도.”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or)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저자

그런데 노벨 경제학상은 노벨 재단에서 주는 게 아니지 않나.
“스웨덴 중앙은행에서 1970년대에 만들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 주로 자유시장주의자들에게 수여했다. 1997년도 수상자인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즈가 가장 심각했다. 파생 상품 측정 모형으로 상을 받았는데, 자신들이 이사로 있는 파트너 헤지펀드 회사가 러시아를 모라토리엄으로 몰고 갔고, 결국 1998년 금융 위기 때 파산했다. 심지어 숄즈는 2008년에 파생 상품을 잘못 굴려서 망했다. 파생 상품으로 노벨상을 탄 사람이 그 지경이다. 노벨상 권위도 경제학의 권위도 땅에 떨어졌다.”

사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그 주장이 현실의 이해관계와 예민하게 맞닿아 있어 더 주의를 필요로 한다. 경영사상가 사이먼 시넥도 그러더군. 1970년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한 기고문에서 주주 가치가 최우선이라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 이후로, 프리드먼의 논리에 따라 월스트리트의 단기 압박은 정당화되고 기업은 혁신 동력을 잃은 채 수명이 짧아졌다고.
“시카고학파인 루카스라는 자유시장주의자는 경제학이 발전해서 경기 침체가 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오만이다. 팬데믹 때의 주식시장을 보면, 실물은 마이너스 10% 성장인데 주가는 상종가를 쳤다. 보통 사람은 실업과 소득 하락으로 고통받는데 주식은 최고점을 찍었다. 월스트리트와 메인스트리트가 완전히 분리된 거다.

미국, 영국은 심각하다. 기업이 이윤을 내면 90% 이상을 배당, 자사주 매입으로 돌려준다. 유보 이윤이 기업 투자 재원인데, 지금은 투자할 돈이 없다. 경제학자들이 잘못된 주주자본주의의 기반을 마련했다. 앞으로도 장기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기업의 경영자와 이해 관계자에게 운영 책임을 맡겨야 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현대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투자자 혹은 소비자로 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애덤 스미스는 도덕철학자였고 ‘도덕 감정론’에서 인간을 복잡한 존재로 봤다. 인간의 동기는 다양하고 어떻게 사회를 디자인하는가에 따라 정체성이 달라진다. 말이 씨가 된다고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정의하면 말한 대로 행동한다. 남들이 그렇게 행동하면 나만 바보같이 당할 수 없으니까, 그런 의식이 퍼지면 다수의 진리가 되는 거다. 사회는 계속 바뀐다. 지금은 데이터가 수많은 것을 통제하는 빅테크 시대인데, 특정 사회를 18세기 이론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그럼에도 소비를 통한 쾌락 추구는 금융자본주의와 함께 우리 삶의 근본을 뒤흔들고 있는데.
“소비자, 투자자를 우리의 정체성으로 보면 삶이 황폐해진다. 신고전학파에서는 우리 인생은 출근하면 끝난다. 퇴근하면 다시 시작되고. 노동을, 직업을 소비 쾌락을 실현할 도구로만 본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그래서 월급 받는 거잖아?’라고 퉁친다. ‘노동의 의미’를 깊게 안 보니까, 워라밸과 욜로라는 말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거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정책 관료였던 장하성 교수와는 사촌지간이었는데, 그가 주도한 ‘소액주주 운동’ 등 경제 방향과 대립하기도 했다.
“그 정부 때뿐만 아니라 나는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직후부터 재벌 문제는 소액주주 운동으로 풀지 않았다. 장하성은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는 가정하에 재벌의 지배 구조를 바로잡겠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개별 주주에게 주인의식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전문경영인이나 창업자 가족, 지역 사회가 기업의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틀을 다시 짜야 한다. 우리나라는 영미의 영향을 받아 단기간에 거대 재벌이라는 괴물 같은 구조가 나왔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엔 명망 있는 가족 소유 기업이 많다.

스웨덴의 1대 재벌인 발렌버그(Wallenberg) 가문은 스웨덴 주식시장 전체 시가 총액의 50%가량을 소유했다. 그 기업이 평등한 복지 국가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5대에 걸쳐 경영 세습을 했는데, 재단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총수는 개인 자산을 제한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했다. 반면 소액주주 운동은 소액주주들의 권한 강화로 재벌 문제에 접근했지만, 개미들에겐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외국 펀드의 목소리만 커졌다. 사회운동의 이상향만으로 현실을 개선할 순 없다.”

당신이 욕을 먹는 이유는 고도 성장기에 정부 주도의 인프라 성장을 인정하고, 침체기에 보수가 싫어하는 복지 확대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진영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하고 싶은 얘기를 하려고 학자가 됐다.”

자신의 현실감각은 어떻게 평가하나.
“여러 나라, 여러 이론을 비교해서 보는 것도 현실을 입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다. 한 개의 재벌이 국내총생산(GDP)의 40%가량을 채우면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복지를 누리는 스웨덴의 경우처럼, 싱가포르도 단독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택지의 90%를 정부가 소유하고 80%의 주택을 주택 공사가 공급하고, GDP의 20% 이상이 국영기업에서 나온다. 사회주의 정책 같지만 다른 나라도 그렇게 자국에 맞게 정책을 썼다.

한국도 한동안 보호무역으로 자국의 유치산업을 육성했다. 현대자동차를 키우려고 자동차 수입을 전면 금지했었다. 주요 전략 산업으로 경제 주권을 지켜내는 거다. 리더 한 사람을 영웅화하는 게 아니다. 기업가 집단과 국가의 파트너십, 전체의 미덕을 보는 거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도 그 뿌리는 미 국방부의 대규모 투자와 군사 기술이었다. 그걸 기반으로 지금의 실리콘밸리가 나왔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도 국가 위기는 서로 비교하면 답이 나온다고 하더군. 다양한 샘플을 탐구해서 해법을 찾으라고.
“맞다. 스위스를 금융과 서비스 강국으로 알지만, 제조업 비율이 세계 1위다. 정밀 기계, 부품, 장비 제조에 강하다. 일본과 독일도 기계와 장비 부문 제조 비율이 높다. 한국도 1인당 제조업 생산량이 높은 편이다. 탈산업화의 신화와는 달리 한 나라의 생활 수준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요인은 공산품을 경쟁적인 가격과 품질로 생산해 내는 능력이다.

제조업 없이는 서비스업도 없다. 코로나19 이후 해외로 이전됐던 공장이 국내로 들어온다고들 했는데, 영미는 금융과 제조가 분리돼서 재건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거다. 제조업이 이미 너무 많이 황폐해졌다. 그게 신고전학파의 약점이다. 기술 축적을 보지 않고 생산 함수와 가격 변동, 효율성만 봤다가 경제 기반이 전복된다.”

효율성 성장 시대의 종말을 선언한 제러미 리프킨은 ‘회복력 시대’에서 지구 재야생화 사업을 거치게 되면 중소기업 붐이 다시 일어날 거라고 했는데.
“중소기업을 재건하려면 그 또한 엄청난 노력이 들어갈 거다. 독일과 일본의 중소기업이 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독일은 주 정부에서 관료와 민간이 힘을 합쳐서 네트워크를 만들고 기업에 염가로 기술과 컨설팅을 제공한다. 정부 정책이 제도 발전과 기업 협력을 만든 거다. 상속 기업이 9~10년간 감원 안 하면 상속세도 면제해 준다. 기술 교육 제도도 잘 만들어져서 능력 있는 젊은이는 벤츠에 취직한다. 시대가 요청한다고 바로 되는 게 아니라, 장기 플랜과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산업 혁명과 같은 변화를 일으킬 거라는 데 동의하나.
“100% 믿을 순 없지만, 어쨌든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기술이 윤리적으로 중립적일 수 없기에 그렇다. AI 기준이 미국 백인 남자 편향이라는 것도 문제다. 일론 머스크도 멈춤이 필요하다는 문서에 서명한 것으로 아는데, 현재는 제동을 안 걸고 싶어 하는 쪽이 더 힘이 센 듯하다.”

이 세계의 경제 흐름은 앞으로 2~3년간 어떻게 펼쳐질까. 금리와 인플레이션 불안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
“진퇴양난이다. 2008년 금융 위기이후 근본 개혁 없이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 하에 돈을 풀어서 막았다. 자본주의 300년 역사 동안 0% 이자율이 10년째 지속된 적이 없었다. 양적 팽창 프로그램…, 엄청난 사건이다. 이건 프로 야구팀에서 1할 치는 타자나 3할 치는 타자나 똑같은 돈을 주는 격이다. 자본시장의 가격 기능이 마비된 거지.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5%로 금리가 올라가고, 수익이 5% 따라가야 하니 부실 자산이 나오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은행도 파산했고. 이자율을 천천히 올려서 통제해야 한다. 통화정책 전문가들이 더 복잡한 상황을 계산하겠지만, 사실 어디서 뭐가 터질지 알 수 없다. 정책전문가들은 금융기관을 조사 해서 금융 부실 자산을 파악해 꺼트려야 한다.”

개인에게 권하는 선택지는 무엇인가.
“단기적으로 주어진 선택지는 없다. 코인 같은 투기성 높은 자산, 수익을 갖고 왔더라도 위험한 자산에서는 빠져나오는 것이 좋다. 최악을 가정하고 자기 보호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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