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80> 스테이션 에이전트] 약점이 당신을 만든다
그는 기차를 타지 않는다. 선로를 따라 걷는다. 그의 곁엔 아무도 없다. 핀바 맥브라이드(이하 핀)는 유일했던 친구가 유산으로 남겨준 시골의 낡은 기차역에 둥지를 튼다. 인생은 곧잘 기찻길에 비유되지만, 그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선로, 아무도 찾지 않는 정류장이다. 세상은 그를 신경 쓰지 않는다. 못 본 척하거나 흘낏거린다. 손가락질하거나 킬킬거린다. 존재하지만 폐허가 된 기차역처럼 핀은 왜소증을 앓는 사람, 외로운 난쟁이다.
인생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가 그려낸 관계의 평행선을 달리는 기차다. 핀에겐 맞은편 선로가 없다. 서로 마주 보며 생이 끝날 때까지 함께할 관계, 수많은 침목으로 이어진 선로 위로 아름답고 따뜻한, 또는 얽히고설킨 인생이란 이름의 기차를 달리게 할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와 이웃이 없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았던 건 아니다. 사랑의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과 관계가 남긴 건 분노였다. ‘왜 나는 난쟁이일까. 하지만 나도 똑같은 사람인데’ 하는 슬픔이었다. 수없이 괜찮다고 마음을 다독이고 눌러 놓아도 타인들의 시선이 살갗에 닿을 때면 1000개의 바늘을 삼키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분노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불만과 절망의 폭발이다. 세상 밖으로 내쳐졌다고 느낄 때 인간은 초라해지고 뾰족해진다. 그럴 때면 핀도 술집에 가서 곤드레만드레 취한다. 흘낏거리는 시선들. 꼭 멸시의 눈총만은 아닐 텐데 열등감과 자격지심은 그를 더욱 미치게 한다. 누군가는 말을 걸었지만 사람들의 호의를 조롱이라 단정한다. 그는 비명을 내지른다. “그래. 나 여기 있어. 보라고. 실컷 보라고!”
그래도 살아간다. ‘난 혼자가 좋아, 친구 따위 필요 없어’,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깨져버린 시계처럼 악몽 같은 어제를 보내고 오늘을 또 견뎌낸다. 핀은 기차가 오지 않는 정류장을 지키는 역무원이다. 그는 기차와 관련된 책을 읽고 기차의 역사를 공부하며 밤이 되면 멋진 세상으로 달려가는 기차를 남몰래 꿈꾼다.
살아 있는 한 일상의 기적은 언제나 일어난다. 핀의 낡은 정거장에 작은 기차들이 찾아온다. 병든 아버지를 수발하며 푸드 트럭을 운영하는 조, 2년 전 어린 자식을 잃고 남편과도 헤어진 올리비아, 애인과 삐거덕거리는 책 대여점의 에밀리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실어 온다.
처음 관계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건 낙천적인 조였다. 핀은 입을 꾹 닫고 외면했다. 호기심에 말을 걸겠지만 그다음엔 경멸을 던질 테고 그러면 또 상처 입을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조는 우쭐거리지 않고, 무안해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핀은 매몰차게 거절하는 사람에게 허물없이 말을 건넬 수 있었을까. 아니,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적 있었던가.
한적한 마을이다 보니 짧은 선로를 뱅글뱅글 도는 꼬마 기차처럼, 핀은 그들과 자꾸 마주친다. 만나고 부딪치며 핀의 맞은편에도 평행선들이 생겨난다. 놀림으로만 느꼈던 타인의 관심과 호기심이 관계의 시작이었던 것일까. 악의적인 사람도 있었겠지만 선의를 가진 사람도 있었던 게 아닐까. 친구를 원했으면서도 누군가 다가오면 일시적이고 적대적일 거라 단정하고 겁에 질려 부리나케 도망친 건 아니었을까.
핀은 타고난 장애로 괄시받는다고 생각하며 세상을 미워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진 않아도 큼지막한 상처와 흉터를 안고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도 남들처럼 꼭꼭 숨길 수 있는 장애를 가졌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핀보다 더 약하고 더 허술하고, 너무 아프고 너무 외로운 사람들이 천지인 세상. 그래서 무대 위 배우에겐 비극이지만 관객은 손뼉 치며 웃게 되는 희극처럼, 엎어지고 넘어질 때 누군가 내민 손을 잡는 순간, 관계는 조금 더 즐겁게 시작된다.
핀은 조와 함께 철길을 걷는다. “내가 있어서 싫어?” 조가 묻는다. 열 번 찍으면 핀의 외로운 나무도 가지를 흔든다. “아니.” 핀은 대답한다. 올리비아도 그들의 길동무가 된다. 세상의 기차들이 번잡하게 다니지 않는 철로를 그들은 소풍을 즐기듯 함께 걷는다. 핀이 맨 앞에서 길을 연다. 핀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몰랐다. 세상도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꽃을 주고 싶은데도 돌멩이를 던지는 서툰 아이처럼, 사람은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해 두려움부터 갖는다. 적을 만나면 배를 부풀리는 작은 개구리처럼, 큰 소리로 놀리고 찌르고 괴롭히며 상대를 테스트한다. 인간의 그런 미숙함을 일찍 이해할 수 있었다면, 핀은 그토록 깊이 상처 받지 않았을 것이다.
조와 올리비아도 죽음이란 종착역까지 함께할 친구는 아닐지 모른다. 그래도 지금 그들이 있어 핀은 세상이 조금 덜 두렵고 인생이 조금 덜 외롭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친구가 새로운 발견의 땅, ‘뉴 파운드 랜드’ 정거장을 남겨준 덕에 조와 올리비아를 만난 것처럼, 그들은 핀을 또 다른 세계의 길목으로 데려갈 터였다. 뜻밖에 내린 정거장에서 만난 역무원처럼, 모든 친구가 그런 것처럼 그들도 핀에게 작은 도움과 위안을 얻는다. 인생이란 인연의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행이다.
미국 HBO 방송사의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매력적인 캐릭터, 티리온 라니스터로 출연해 전 세계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으며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년 동안 네 번의 에미상을 수상, 남우조연상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을 세운 피터 딘클리지가 주인공으로 첫 캐스팅 된 2003년 영화다.
세계적인 스타가 된 후 ‘어떻게 신체장애에도 기죽지 않고 특유의 당당한 성격을 가질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피터는 대답했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괜찮아 보이겠지만 난 사실 아직도 그다지 괜찮지 않다. 여전히 괜찮지 않은 날이 꽤 많다. 하지만 이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스테이션 에이전트’에서 왜소증 주인공으로 출연할 수 있었고,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
못난 자신을 이겨내려 울며 발버둥 치는 사이,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결핍은 가혹할지언정 선물일지 모른다. 비록 지울 수 없는 잔혹한 낙인과 무뎌지지 않는 아픔을 평생 감당해야 할지라도. 약점이 당신을 만든다. 작은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작은 거인으로 살 것인가. 꿈과 선택은 늘 인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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