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볼멘소리에 유예·예외 남발 …"회계개혁 수포로 돌아갈판"

김명환 기자(teroo@mk.co.kr) 2023. 5. 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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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더기 新외감법 ◆

"신외부감사법(신외감법) 도입 이후 기업 부담이 어느 정도 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시장 글로벌화가 화두인 마당에 외국인 투자자까지 높이 평가한 기업 투명성 제도를 후퇴시키는 건 득보다 실이 크다."

한 회계업계 고위 관계자가 8일 "유예를 반복하고,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결국 5년 전 도입한 취지가 유야무야될 것"이라며 이같이 우려했다.

회계개혁 개선의 주된 방향이 내부회계관리제도 완화 쪽으로 기울어진 것은 올해 2월 이후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에 섣불리 칼을 댈 수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완화나 유예 쪽으로 불똥이 튄 셈이다.

지난해 오스템임플란트와 우리은행 횡령 사태가 발생한 이후로 내부회계관리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커졌다.

이에 비해 재계에서는 내부회계관리제도가 외부 감사 대상에 포함되면서 비용과 업무 부담이 커진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특히 국내외 자회사까지 모두 연결해 회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연결 재무제표 기준' 내부회계관리제도가 타깃이 돼왔다.

이날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회계개혁 평가·개선 추진단'은 직전 사업연도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상장사를 대상으로 먼저 도입한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 완화를 검토 중이다. 신외감법에 따라 별도 내부회계관리제도는 이미 2019년부터 시행돼왔다.

이를 자회사의 회계관리까지 연결해서 보는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를 2022년 자산 2조원 이상인 상장사부터 차례로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해외 계열사가 많은 대기업은 해외 출장 제한 등으로 제도 구축과 이에 대한 감사 시기를 1년 유예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올해부터 적용돼야 하는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가 '회계개혁 개선'을 명분 삼아 또다시 유예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최근 거론되는 내용은 자산 5000억~2조원인 중견기업급 상장사에 대한 제도 도입을 최장 5년 유예하는 것이다. 금융당국 내부적으로는 1년·3년·5년 단위로 시행을 유예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회계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는데 1년 유예 뒤에 또다시 유예가 이뤄지면 사실상 폐지와 다름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대형 상장사는 해외 종속회사를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대상에서 면제해 달라는 재계의 목소리도 강하다고 한다. 연결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상장사는 자산 규모가 클수록 해외 종속회사 수가 국내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기업이 해외 자회사의 내부회계관리 감사를 별도 재무제표로만 해도 되게 해달라는 뜻인 셈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코로나19에 따른 해외 출장 제한 등으로 당초 기한 내 제도 구축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근거로 제도 시행을 한 차례 연기한 바 있다. 그런데 엔데믹에 접어들자 연결 대상에서 아예 제외해 달라는 요구가 나온 것이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해외 자회사는 회계 인프라가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소규모 인원일 수밖에 없어 자금 관리 등에서 취약하다"며 "내부회계관리제도야말로 한국판 '사베인스-옥슬리법'(SOX법)이라 할 수 있는데, 제도 완화는 글로벌 정합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SOX법은 사베인스-옥슬리법(Sarbanes-Oxley Act)의 약자로, 미국의 회계개혁에 관한 연방법률이다. 20년 전 미국에서도 월드컴, 엔론 같은 거대 기업의 잇단 회계부정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회계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2002년 7월 법안 발의자의 이름을 따서 제정됐다. 내부회계관리제도가 담긴 신외감법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로 도입됐기에 한국판 SOX법이라고 볼 수 있다. 한 회계사는 "일본은 회사 규모와 무관하게 모든 상장사에 연결기준 내부통제보고서 감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역시 J-SOX법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부회계관리제도 전체가 뒷걸음질 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외감법의 핵심 제도 중 하나인 내부회계관리제도는 도입될 때 모든 상장사와 자산 1000억원 이상 비상장사로 대상이 폭넓게 설정됐다. 하지만 지난해 '중소기업 회계부담 합리화 방안'에 따라 올해 내부관리회계제도 외부감사 대상이 됐던 자산 1000억원 미만 소규모 상장사는 아예 대상에서 빠졌다.

이와 함께 상장사 수준의 회계 규제를 받는 대형 비상장사의 범위를 자산 1000억원에서 5000억원 이상으로 대폭 올렸다. 이에 따라 대상기업 수는 3841개에서 807개로 쪼그라들었다.

재계에서는 비용과 인력 부담이 크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한국 기업 전체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 제도를 도입 5년 만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완화하면 잃는 것이 더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예외를 인정한 상황에서 추가로 유예가 이뤄진다면 회계 투명성에 대한 의문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내부회계관리제도

신뢰성 있는 회계 정보의 작성과 공시를 위해 회사가 마련해야 하는 재무보고에 관한 내부통제를 뜻한다. 다른 신외부감사법의 주요 제도와 마찬가지로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회계 작성의 일관성과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마련됐다. 회사 내부가 직접 내부 회계통계 시스템을 구축한 뒤 외부감사를 받게 하는 제도다.

[김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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