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박옥선 할머니 100세 상수연 [만리재사진첩]

김혜윤 2023. 5. 8. 17:4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갔던 박옥선 할머니의 100세 상수연이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은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어버이날 기념식과 박 할머니의 100세 상수연을 열었다.

192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박옥선 할머니는 18살 때인 1941년 방직공장에 가는 것으로 알고 따라나섰다가 중국 헤이룽장성 위안소로 끌려가 4년 가까이 '아키코'로 불리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어버이날을 맞이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8일 오후 어버이날 기념식과 올해로 100살이 된 박옥선 할머니의 상수연이 열렸다. 박옥선 할머니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일제 강점기에 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갔던 박옥선 할머니의 100세 상수연이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은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어버이날 기념식과 박 할머니의 100세 상수연을 열었다.

192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박옥선 할머니는 18살 때인 1941년 방직공장에 가는 것으로 알고 따라나섰다가 중국 헤이룽장성 위안소로 끌려가 4년 가까이 ‘아키코’로 불리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45년 소련군이 들어오자 일본군 무리에 섞여 산중을 헤매던 박 할머니는 밥을 얻어먹으러 내려간 마을에 정착했고, 15살 연상의 조선족 동포와 결혼해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해방 직후 ‘위안소’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지만 ‘위안부’ 피해를 당했다는 자괴감에 고향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박 할머니는 2001년이 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귀국한 박 할머니는 “휴일이면 문 앞에 서서 재촉하는 병사들을 상대하다 죽을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차마 죽지 못하고 살아남았다”며 “그 모든 이야기가 수치스러워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 늙고 병들어 입을 열게 되었다”고 울먹였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왼쪽부터), 박옥선, 강일출, 이옥선 할머니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윤 기자
박옥선 할머니(왼쪽)와 강일출 할머니가 손을 잡고 있다. 김혜윤 기자
가족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왼쪽부터), 박옥선, 강일출, 이옥선 할머니에게 절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 뒤에는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피해자 국제소송 및 한·일 수교 50년에 대한 피해자 입장’을 발표하면서 “이제는 말보다 행동이 필요한 때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는 현재와 미래의 문제”라며 일본의 공식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이날 어버이날과 상수연 행사에는 나눔의집에 함께 거주하고 있는 강일출, 이옥선 할머니와 대구와 나눔의집을 왕래하는 이용수 할머니가 함께했다. 휠체어를 타고 행사에 참석한 박 할머니는 기력이 약해져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과거 박 할머니가 한국에 입국하고 활발한 외부활동을 했던 모습을 사진으로 모았다.

2001년 귀국한 박옥선 할머니가 60년 만에 남동생 박순철(가명)씨를 만나 부둥켜안고 오열하고 있다. 여성부 제공
박옥선 할머니가 2003년 최근 한국 국적을 회복해 난생처음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기쁨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녀(앞쪽) 박옥선 할머니가 지난 2007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에서 열린 정월 대보름 지신밟기 행사에서 풍물패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2010년 한-일 강제병합 조약 체결 100년을 맞아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사죄의 뜻을 담은 담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언급이나 사죄의 표명은 없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잖아. 가슴에 박힌 못이라도 빼줘야 하는데 그것조차 해주지 않았어.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강일출 할머니는 가슴을 쥐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에 모여 있는 2010년 모습. 강일출·김순옥·박옥선·김화선·배춘희(왼쪽부터).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 2013년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녀 할머니의 영결식이 열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인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박옥선 할머니가 이 할머니의 영정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카사이 아키라 일본 중의원 원내부대표가 지난 2014년 9월 오전 경기 광주 퇴촌면 나눔의집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박옥선 할머니와 악수하고 있다. 그는 이날 “역사는 지우거나 고쳐 쓸 수 없다”며 피해 할머니들이 살아계신 동안 일본 정부가 사죄하고 배상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외한 할머니의 추모비 제막식이 지난 2015년 7월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에서 열려 고인과 함께 이곳에서 노년을 지낸 이옥선(왼쪽부터) 박옥선 할머니가 추모비를 어루만지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고인은 193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만 11세이던 1945년 일본 북해도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고 평생 일본의 사죄를 염원하다 지난 6월 11일 별세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 2016년 1월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최로 열린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 집회에 할머니들이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옥선·박옥선·이용수·강일출·길원옥 할머니. 한겨레 자료사진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가 검토 결과를 발표한 지난 2017년 12월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서 이옥선(91·왼쪽 둘째), 박옥선(94·오른쪽 둘째)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김정숙 나눔의집 사무국장(안경 쓴 이), 원종선 간호사가 함께 방송 중계를 보고 있다. 방송을 본 뒤 이옥선 할머니는 “할머니들의 의견을 아예 무시한 합의는 무효”라고 말했다. 광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어버이날을 이틀 앞둔 지난 2017년 5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효잔치가 열려 박옥선 할머니가 장수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