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박옥선 할머니 100세 상수연 [만리재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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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갔던 박옥선 할머니의 100세 상수연이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은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어버이날 기념식과 박 할머니의 100세 상수연을 열었다.
192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박옥선 할머니는 18살 때인 1941년 방직공장에 가는 것으로 알고 따라나섰다가 중국 헤이룽장성 위안소로 끌려가 4년 가까이 '아키코'로 불리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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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일제 강점기에 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갔던 박옥선 할머니의 100세 상수연이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은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어버이날 기념식과 박 할머니의 100세 상수연을 열었다.
192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박옥선 할머니는 18살 때인 1941년 방직공장에 가는 것으로 알고 따라나섰다가 중국 헤이룽장성 위안소로 끌려가 4년 가까이 ‘아키코’로 불리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45년 소련군이 들어오자 일본군 무리에 섞여 산중을 헤매던 박 할머니는 밥을 얻어먹으러 내려간 마을에 정착했고, 15살 연상의 조선족 동포와 결혼해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해방 직후 ‘위안소’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지만 ‘위안부’ 피해를 당했다는 자괴감에 고향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박 할머니는 2001년이 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귀국한 박 할머니는 “휴일이면 문 앞에 서서 재촉하는 병사들을 상대하다 죽을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차마 죽지 못하고 살아남았다”며 “그 모든 이야기가 수치스러워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 늙고 병들어 입을 열게 되었다”고 울먹였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 뒤에는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피해자 국제소송 및 한·일 수교 50년에 대한 피해자 입장’을 발표하면서 “이제는 말보다 행동이 필요한 때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는 현재와 미래의 문제”라며 일본의 공식사과와 배상을 요구했다.
이날 어버이날과 상수연 행사에는 나눔의집에 함께 거주하고 있는 강일출, 이옥선 할머니와 대구와 나눔의집을 왕래하는 이용수 할머니가 함께했다. 휠체어를 타고 행사에 참석한 박 할머니는 기력이 약해져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과거 박 할머니가 한국에 입국하고 활발한 외부활동을 했던 모습을 사진으로 모았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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