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석포 산골마을에 아이들 웃음소리 넘치는 까닭은?

이용호 2023. 5. 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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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소멸 고위험지역 버팀목 영풍 석포제련소 
고용인원· 가족 20년 비해 4배 늘어
초등학생 7년째 100명 넘어, 면단위 최고
주민 평균 연령 50.2세로 가장 젊은 동네
봉화군 석포초등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3시간 내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 태백산 청옥산 문수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무수한 산들에 둘러쌓여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는 곳, 바로 경상북도 봉화군이다. 소멸위험지수 0.12로 소멸고위험지자체다. 소멸위험지수는 지자체 20~39세 여성을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수치다. 0.5 미만이면 소멸위험, 0.2 미만이면 소멸고위험 지자체다.

봉화군 중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인 데도 아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지역이 있다. 봉화군 석포면이다. 봉화읍에서도 차를 타고 40~50분은 더 가야하는 곳이다. 강원 태백시와 맞닿은 곳이다.

4월 말 현재 봉화군 인구는 3만39명. 3만 붕괴를 앞두고 봉화군이 고심중인 가운데 석포면은 초등 신입생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50여 년 지역민과 함께 한 향토기업 영풍석포제련소 덕분이다.

8일 석포초등학교에서 만난 이동형 교장은 "바로 옆 동네 학교는 학생 수가 줄어 난리인데, 여기는 오히려 학생이 많아 교육공간이 협소하고 예산이 빠듯할 정도다"고 말했다.

7년째 전교생 100명이 넘어 교실을 늘리는 실정이다. 도시 시각으로는 웃음이 날 정도로 학생 수가 적지만 봉화에서는 면 단위 초등학교 중 유일하게 전교생이 100명이 넘는 학교이다.

석포초의 올해 전교생은 107명으로 봉화읍에 있는 내성초 265명에 이어 두 번째 많은 학생 수이다. 3년 전에는 교실이 부족해 4칸을 확장했다. 이 중 3칸은 방과후 활동 교실, 1칸은 일반 교실로 사용한다.

이동형 교장은 "근처 명호초, 상운초, 소천초 임기분교는 올해 신입생이 0명"이라며 "석포초는 반대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치고 세 자녀, 네 자녀까지 둔 다둥이 가정도 꽤 있다"고 말했다.

석포초 병설유치원도 아이들이 넘쳐(?)난다. 올해 원생 수는 37명으로 봉화군 전체 공립 유치원 중 원생 수가 가장 많다. 봉화에서 학급 수가 3개인 공립 유치원은 석포초 병설유치원이 유일하다.

석포중학교는 올해 신입생이 늘었다. 지난해 12명 보다 8명 많은 20명이 입학해 1학년 교실이 북적이고 있다. 전교생은 44명으로 봉화에서 면 단위로 인구가 가장 많은 춘양의 중학교 29명 보다 많다. 인근 소천중은 8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김종욱 석포중 교감은 "석포초 졸업생이 꾸준히 석포중으로 유입되는 만큼 입학생 및 재학생 수가 큰 변동 없이 계속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봉화군 석포중학교 학생들이 과학시간에 에어로켓을 체험하고 있다.

석포제련소 임직원 가족 20년 전보다 4배 늘어

인구소멸 고위험지역인 봉화군에서 유일하게 석포면이 인구소멸 위기와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는 까닭은 향토기업인 영풍 석포제련소가 수십 년 간 지역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 석포면에 문을 연 영풍 석포제련소는 아연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3위 규모의 비철금속 제련소다. 연간 최대 40만 톤의 순도 99.995% 고품질 아연괴를 비롯해 각종 비철금속을 생산한다. 영풍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 7,936억 원으로 비철금속 제련 부문 매출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제련소는 고용 인원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2000년 230명이던 임직원 수는 2012년 499명, 2023년 576명으로 증가 추세다.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현재 약 1,300여 명을 상시 고용하고 있다.

덩달아 제련소 임직원 가족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0년 504명에서 2012년 1,120명, 2023년 현재 2,316명으로 20년 만에 4배 이상 증가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사원아파트 등 석포면에 살고 있다.

이에 석포제련소는 1989년 10개동, 220세대이던 기숙사 및 사원아파트를 몇 차례 증설을 통해 2013년 16개동, 575세대로 늘렸다.

김대호 석포면장은 “석포면은 사실상 제련소가 있어서 유지되는 마을”이라며 “제련소를 중심으로 젊은 인구가 유입되다 보니 주민 평균 연령이 50.2세로 봉화에서 가장 젊은 동네”라고 설명했다.

석포면과 제련소에 따르면 제련소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직영 및 협력업체 임직원에게 지급하는 비용만 연간 1,000억 원에 이른다. 석포면은 물론 봉화 지역 경제 전반을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련소는 최근 봉화군이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봉화사랑 주소갖기’ 운동에 임직원의 참여를 적극 독려해 힘을 보태기도 했다.

제련소에서는 임직원이 봉화군으로 전입신고를 할 경우 자체적으로 전입 축하금 10만원을 지급하고, 자녀 출산 시 지원금 30만원, 셋째 이상 자녀 출산 시 축하금 100만원의 혜택을 제공한다.

현재까지 약 30여 명의 직원이 전입신고를 한 걸로 파악되며, 봉화군으로 주소를 옮기는 직원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 지역, 주민 합심 인구소멸 대응

주민들은 석포면에서의 생활이 큰 불편함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와 경북도, 봉화군이 정주여건 및 인프라 개선을 통해 제련소 임직원 및 가족의 정착을 돕고 각종 불편사항을 해소하고 있어서다.

2018년에는 봉화군 소천면에서 석포면을 거쳐 태백시 장성동까지 20.21㎞를 잇는 왕복 2차선 국도 31호선이 개통되면서 석포 주민들의 교통 편의가 크게 개선됐다.

주민참여형 사업인 석포면소재지 종합정비사업으로 2016년 지어진 석포행복나눔센터에서는 매일 문화, 교양, 취미 강좌가 열려 주민들이 도시의 아파트 단지 커뮤니티 못지않게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다.

봉화군은 2020년 석포행복나눔센터 뒤편에 탁구장과 요가실, 휴게공간 등을 갖춘 석포건강증진센터를 추가로 지어 주민들의 건강 증진 및 여가 활용의 폭을 더욱 넓혔다.

국제 규격의 수영장과 배구, 배드민턴, 족구 등을 할 수 있는 복합체육관을 갖춘 석포주민종합체육센터 건립도 봉화군에서 추진하고 있다.

보육 및 교육을 위한 시설도 계속 확충되고 있다. 2018년 공립형 지역아동센터인 석포지역아동센터가 들어섰고, 올해 80명 정원 규모의 국공립어린이집이 문을 연다.

네 자녀를 둔 이성희(38) 씨는 “석포에서 생활하는 데 별다른 불편이 없다”며 “아이들이 저녁 늦게까지 밖에서 뛰어놀아도 안전하고, 석포만큼 아이 키우기 좋은 곳이 없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임광길 석포면 정비사업 운영위원장은 “기업이 수십 년 간 지역에 터를 잡고 일자리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지자체는 주민 생활여건 개선에 힘을 쏟는 등 기업과 지역, 주민이 합심해 인구 소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좋은 사례”라며 “석포면은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의 웃음이 넘치는 활력 있는 마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호 기자 ly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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