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신냉전'이라는 오해
교역량은 꾸준히 증가
中과 탈동조화 비현실적
공급망 재편 대응하되
경제적 실익도 챙겨야
미국 연수 중이었던 2000년대 중반 흥미로운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중국산 제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살 수 있는지 실험해봤다는 내용이었다. 결과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여전히 대형마트에서 값싼 중국산 제품을 구매한다. 장하준 런던대 교수는 이런 미·중 경제 관계를 "샴쌍둥이 같다"고 했다. 미국에서 중국 소비재를 수입하지 않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양국의 교역 추이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문제를 놓고 말 폭탄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미·중 무역 거래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세관)에 따르면 지난해 미·중 무역 거래는 전년보다 0.6% 증가한 7594억달러에 달했다. 역대 최대치다. 미국 정부가 중국과 탈동조화(디커플링)를 외치며 동맹국 규합에 나서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이 이러니 우리를 포함한 다른 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 외교·안보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유럽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초 에어버스 등 자국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대동하고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중국에 대한 유화적인 발언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경제적 실리를 챙겼다. 한국도 중국과 교역액이 지난해 전년 대비 0.1% 증가한 3622억달러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섰다.
미·중 패권전쟁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냉전은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며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세계화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탈세계화는 주요 의제였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공급망 재편이 맞물려 세계 교역이 달라지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의 대중 수출이 줄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올 1분기 대중 수출 비중은 20% 밑으로 떨어졌다. 2005년 이후 처음이다. 반도체 불황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미·중 갈등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신냉전 또는 탈세계화 주장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세계화는 옛 소련이 해체된 1991년부터 가속도가 붙었지만 시발점은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강국 미국은 소련과 이념적으로 대결하면서도 자유무역을 확대했다. 이는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세계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식량 부족과 질병, 빈곤 등 지구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빈부격차 확대와 기후변화 등 부작용도 있었지만 실익이 더 컸다.
산업혁명 이후 역사를 보면 개방과 자유무역이 중단됐을 때 경제는 큰 침체에 빠졌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1일 밀컨연구소 글로벌콘퍼런스에서 "자국 우선주의에 따른 세계 교역 단절 현상이 심해지면 세계 경제 규모가 장기적으로 2%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앤 크루거 전 세계은행 부총재는 한 발 더 나아가 "보호무역주의가 확대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세계 경제 침체를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은행도 "각국의 보호주의 정책이 자국의 생산과 고용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경학적 분절화에 따른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초래해 세계 경제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금은 신냉전 흐름에 편승해 작은 이익을 구할 때가 아니다. 신냉전을 막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경제와 세계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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