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아기 판다가 한국경제에 주는 암시

최승진 기자(sjchoi@mk.co.kr) 2023. 5. 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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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푸바오, 성별은 암컷. 2020년 7월 20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태어난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의 엄마 아이바오와 아빠 러바오는 한중 우호의 상징으로 2016년 3월 에버랜드에 둥지를 틀었다. 판다라는 동물은 임신 여부를 육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고, 상상 임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 출산까지 여러 난관을 겪는 것이 보통이지만, 푸바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건강하게 태어났다.

그래서 이름도 '행복을 주는 보물'을 뜻하는 푸바오(福寶)로 지었다. 이름처럼 한국인들에게도 보물 같은 존재였다. 처음 만난 아기 판다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수십만의 사람들이 오직 푸바오를 보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렸을 정도다.

복덩이로만 알았던 푸바오는 앞으로 1~2년 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중국 밖에서 태어난 모든 판다는 만 4세를 전후해 중국에 반환돼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번식을 위해서는 다른 판다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논리다. 이유가 어떻든 한 가지의 결과로 이어진다. 판다의 독점권은 어디까지나 중국에 있다는 것이다.

푸바오처럼 반환돼야 할 보물은 우리 경제에도 여럿 존재한다. 중국인 관광객 '유커'의 홍수 속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면세점 사업은 2016년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했다. 중국 시장이라는 보물을 캐기 위해 막대한 투자에 나섰던 화장품 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며 부침을 겪었다.

2021년 요소수 사태도 마찬가지다. 보물의 정의가 '드물고 귀해 귀한 가치가 있는 물건'인 것처럼, 흔하디 흔했던 요소수는 어느 순간 한국 산업의 보물이 됐다. 공급망을 절대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다 수입이 끊겨버린 탓이다.

방대한 중국 시장에서 보물을 캐왔던 한국 산업계는 국제 정치·경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기로에 섰다. 반도체 산업은 최악의 수요 부진 속에서 중국 시장의 빈자리를 체감하고 있다.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는 배터리 산업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과 시장과 공급망으로 깊이 연결돼 왔다. 그렇다고 국제 질서의 전환이라는 흐름을 바꾸기도 어려운 시점이다. 지금으로서는 정부가 한국 산업계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시장·공급망을 다변화할 최대한의 시간을 버는 수밖에 없다. 푸바오의 반환은 예고라도 있지만, 한국 산업의 다른 보물들은 불시에, 예고 없이 반환을 요구받을 수 있다.

[최승진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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