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 Now] 금리發 '시스템 리스크' 마주한 한국

이상덕 특파원(asiris27@mk.co.kr) 2023. 5. 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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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은행파산 잇따라 발생
금융 시스템이 제기능 못하며
실물경제 침체 가능성 높아져
위기땐 2008년보다 피해 큰데
美中갈등에 끼어선 대응 못해
눈치 보기보단 대비책 마련을

댄 퀘일 전 미국 부통령은 재임 시절(1989~1993년)보다 사모펀드 서버러스 대표로 활동하며 명성을 쌓은 인물이다. 그는 은행 파산에 대해 "대다수 은행의 실패는 잘못된 관리로 인해 손실을 감당할 만큼 충분한 돈을 예치하지 않은 것 때문에 발생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오늘날 수많은 은행의 실패를 예견한 것 같은 발언이다.

3월 이후 실리콘밸리은행(16위) 시그니처은행(29위) 퍼스트리퍼블릭은행(14위)이 잇따라 파산했다. 이어 팩웨스트뱅코프(53위) 웨스턴얼라이언스(40위) 퍼스트호라이즌(38위) 자이언스뱅코프(36위) 등 지역 은행 주가가 폭락했다. 금융 시스템 오작동으로 실물 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 이른바 '시스템적 리스크(systemic risk)'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염려가 쏟아지고 있다.

앤드루 메트릭 예일대 경영대 교수와 폴 슈멜징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교수는 더 큰 사건의 징조라고 우려했다. 이들이 발표한 '장기적 차원에서의 은행 개입: 실리콘밸리은행과 그 이후'라는 논문에 따르면, 1299년 스페인 '베렌게르 데 피네스트레'의 파산 이래 인류는 724년간 138개국에 걸쳐 약 2000개에 달하는 은행이 도산하는 것을 목격했다. 시스템적 리스크는 총 57회 발생했는데, 정부 개입 강도에 비례했다. 각국 정부는 245회에 달하는 광범위한 긴급 대출, 109회에 달하는 전면 예금 보장을 실시했다. 오늘날 미국 정부의 개입 강도는 시스템적 리스크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메트릭 교수는 "금융 산업 일부가 채무 불이행을 경험하는 데서 출발하고, 결국 부실 채권이 급격히 증가해 은행 시스템이 갖고 있는 자본의 상당수가 소진되면서 끝난다"고 설명했다. 또 슈멜징 교수는 "시스템적 리스크는 최소 몇 달에서 최대 몇 년씩 지속되기 때문에, 현재 은행 리스크는 서막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물론 시스템적 리스크가 닥칠지 아닐지 알 순 없다. 급격한 금리 인상, 성장률 둔화, 은행의 조달 비용 증가 등 다양한 요인이 겹쳐 발생해 그 징조를 사전에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위기가 닥칠 경우 대한민국은 2008년보다 더 혹독한 겨울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2008년 이후 전 세계에 보호무역주의가 만연했고, 선진국은 유동성 부족을 극복하고자 아시아에서 자금을 회수했다. 한국의 성장률은 2007년 5.8%에서 2009년 0.8%로 급락했다. 아시아는 곧바로 선을 그었다. 동남아 10개국과 한·중·일이 2010년 발족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가 그 산물이다. 1200억달러 규모의 공동 기금을 마련하고 방파제를 쌓았다. 하지만 오늘날 고조되는 미·중 갈등은 한국을 딜레마에 빠지게 할 것이다. 헨리 포드는 "문제점을 찾지 말고 해결책을 찾으라"고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이상덕 실리콘밸리 특파원 asiris27@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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