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과학용어] ‘두 얼굴’의 동위원소

이병철 기자 2023. 5. 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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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원소지만 중성자 갯수는 다른 동위원소
불안정한 구조로 방사선 뿜으며 붕괴하기도
동위원소서 나오는 방사선, 생명체에 치명적
잘 활용하면 암 치료하고, 영상 촬영 하기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올해 7월 이후 바다에 방류할 예정입니다. 이 계획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는데, 핵심은 오염수 속 방사성 동위원소가 해양 생태계와 주변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의견도 갈립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아무리 낮은 농도로 오염수를 방류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의 건강에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방사성 동위원소가 영화 속 ‘빌런(악당)’처럼 느껴지죠.

그런데 한편에서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부족하다고 난리입니다. 의료용으로 사용되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국산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는 고부가가치를 가진 자원으로, 국민 건강은 물론 경제적인 효과도 크다고 합니다.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두고 한쪽에서는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다른 한쪽에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박울재 한국원자력연구원 동위원소연구부 책임연구원과 함께 알아봤습니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나노입자와 결합해 암세포를 죽이는 과정을 표현한 모식도. /한국원자력연구원

◇같은 이름, 다른 무게 가진 동위원소

원소의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고, 핵 주변에는 양성자와 같은 숫자의 전자가 있습니다. 양성자는 양전하를, 전자는 음전하를 띠는 만큼 모든 원소는 전기적으로 중성입니다. 원소가 전기적으로 중성인 이유는 안정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양전하나 음전하를 띠고 있다면 반대되는 전하를 가진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며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양성자가 모여 있는 핵입니다. 같은 양전하를 띠고 있는 양성자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있으려면 아주 강한 힘으로 묶어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같은 극의 자석들이 서로 밀어내듯 양성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겁니다. 그 역할은 전하를 띠지 않은 입자인 중성자가 맡습니다. 그래서 양성자 1개를 가진 수소를 제외한 모든 원소의 핵에는 중성자가 있습니다.

동위원소는 같은 원소이지만, 중성자의 개수가 다른 원소를 말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최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계획을 발표하며 주목받은 삼중수소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소의 핵에는 양성자 1개만 있지만,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는 각각 중성자 1개와 2개가 더 붙어 있습니다.

수소와 중수소, 삼중수소는 모두 같은 화학적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가령 중수소와 삼중수소 모두 2개의 수소와 1개의 산소 원자로 구성된 물(H₂O)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리적인 성질은 동위원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특히 일부 동위원소는 불안정한 구조를 갖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붕괴합니다. 이 과정에서 방사선 형태로 큰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동위원소를 ‘안정 동위원소’, 방사선을 방출하면서 붕괴하는 동위원소는 ‘방사성 동위원소’라고 부릅니다.

일본 도쿄전력이 보관 중인 후쿠시마 오염수를 올해 7월 이후 바다에 방류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해양 생태계와 사람들의 건강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AP 연합뉴스

◇양날의 검 방사성 동위원소

방사성 동위원소는 두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자연재해 수준으로 환경을 오염시키기도 하지만, 산업 기술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 되기도 합니다.

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나오는 방사선은 생명체에 아주 치명적입니다. 투과력이 높아 피부를 뚫고 지나갈 수 있고, 높은 에너지를 갖고 있어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디옥시리보핵산(DNA)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DNA는 가느다란 실처럼 길게 연결돼 있는데, 방사선은 마치 가위로 실을 자르듯 DNA를 조각냅니다.

조각난 DNA가 복구되지 않거나, 복구되더라도 원래 상태와 다른 순서로 붙는다면 인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옛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나 원자력 폭탄이 떨어진 지역에서는 방사선 피폭으로 혈액암에 걸리거나 기형아의 출산율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방사성 동위원소의 이런 성질을 제어할 수 있다면 오히려 유용한 물질로 탈바꿈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항암 치료입니다. 암 세포는 유전자 이상으로 끊임없이 증식하는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암세포를 죽이는 것이 어렵습니다. 만약 방사성 동위원소를 암세포에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면 암세포 만을 정확히 파괴하는 치료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으로 방사성 동위원소인 요오드(I-131)입니다. 요오드(I)는 원래 자연적으로 갑상선에 쌓이는 성질이 있습니다. 갑상선 암 환자에게 방사성 동위원소 중 하나인 I-131을 주입하면 자연적으로 갑상선에 모이게 되고, 방사선을 방출하면서 암 세포가 파괴됩니다. 이외에도 투과성이 높은 방사선의 특징을 활용해 의료 영상 촬영에 또 다른 방사성 동위원소 I-125를 사용하거나, 큰 구조물의 미세 손상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비파괴 검사에 방사성 동위원소인 이리듐-192가 활용됩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진이 의료·산업용 방사성 동위원소 개발에 쓰이는 입자가속기를 살펴보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국산화도 성공

최근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로는 루테튬-177(Lu-177)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암 세포가 있는 조직에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항체와 결합이 쉽고,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치료 효과도 좋고, 부작용도 좋아 차세대 항암제로 활발히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2018년 처음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항암제로 허가를 받은 이후 최근까지도 다양한 암에 활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도 지난해 8월 루테튬 생산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의 국산화는 단순히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보다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인체에서 쉽게 배출돼야 하고, 짧은 반감기를 가져야 합니다. 문제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반감기가 10일 이내로 매우 짧다는 것입니다. 반감기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하며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합니다. 즉 해외에서 만들어진 방사성 동위원소를 수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 양이 크게 줄어들거나, 아예 사용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동위원소가 우리 건강의 위협이 될지, 건강을 지켜줄 도우미가 될지는 방사선을 얼마나 잘 제어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여전히 과학자들은 방사성 동위원소의 위험성을 줄이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원자력연의 연구로인 ‘하나로’와 원자력의학원의 사이클로트론을 활용해서 동위원소를 더욱 깨끗하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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