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시찰→후쿠시마산 수입 재개 ‘덫’ 걸리나
수산물 위험 이미지 한국 탓하는 일본
시찰 후 오염수 방류 묵인 해석 가능성
한·일 정상이 7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 한국 시찰단을 보내기로 합의한 것과 관련해 자칫하면 일본의 오염수 방출을 정당화하고 그동안 금지해온 농수산물 수입을 재개할 수밖에 없는 ‘덫’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를 피하려면, 시찰을 다녀온 뒤 정부가 그동안 쌓아둔 분석 자료를 토대로 오염수 방출에 대해 ‘반대’ 혹은 ‘연기’와 같은 분명하고 일관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8일 후쿠시마 제1원전 한국 시찰단 파견과 관련해 “가까운 시일 내에 한-일 국장급 협의를 개최해 23~24일 시찰단 파견과 관련한 구체 내용을 협의할 것”이라며 “현장 시찰단은 정부 관련 기관과 산하 기관 전문가로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찰이 급박하게 결정된 탓인지 이날부터 부랴부랴 실무 준비에 나선 모습이다. 대통령실 당국자는 전날 정상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번 시찰이 “단순히 둘러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며 “(오염수에 포함된) 물질이라든지 성분에 대해서 함께 조사할 수 있지 않겠나”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하지만 일본이 그동안 개별 국가에 허용했던 시찰의 전례를 살펴보면, 이는 현실과 거리가 있는 ‘일방적 기대’인 것으로 확인된다. 일본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외에 시찰을 허용한 것은 대만(지난해 3·11월)과 태평양 섬나라 18개국이 모인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사무국(지난 2월) 등 2곳뿐이다.
하루 동안 진행된 당시 시찰은 다섯 단계로 이뤄졌다. 먼저, 도쿄전력 담당자가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로 정화한 오염수 배출 등 전반적인 과정을 설명한 뒤 직접 현장을 간다. 이후 방류 전 오염수 내 방사성 물질의 농도를 측정하는 ‘K4’ 탱크, 탱크와 바다를 잇는 1㎞ 해저터널 현장, 희석된 오염수에서 키우는 광어·전복 사육 시험장을 둘러본다. 마지막으로는 방류 이후 영향을 분석하게 될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JAEA) 오쿠마분석연구센터를 방문한다.
공동 조사라기보다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는 도쿄전력의 홍보 내용을 둘러보는 견학에 가깝다. 도쿄전력은 지역 주민, 일반인, 기업, 언론인,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도 비슷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견학성 시찰을 마치고 돌아와 정부가 지금처럼 입을 꾹 닫고 있으면 한국이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을 사실상 묵인했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나아가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참사 이후 10년 넘게 이어져온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 금지’ 원칙을 제 손으로 허무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한국은 지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유출된 일본의 앞바다를 ‘잠재적 위험’이라고 주장하며 2019년 4월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에서 승소한 바 있다. 서균렬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방류가 한두달 남은 상황에서 우리 쪽이 반박할 수 있는 확실한 자료나 논리가 없이 가면 고개만 끄덕이고 오게 된다”며 “일본이 이후 이를 이용해 후쿠시마산 수산물 등의 수입 제한을 철폐하라고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은 후쿠시마 수산물이 안전하지 않다는 이미지가 생긴 것을 지금껏 수입 금지 조처를 이어가고 있는 한국 등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 자료를 보면, 후쿠시마 원전 참사 이후 55개 국가·지역에서 수출 규제에 나섰지만, 지금껏 수입 자체를 금지하는 나라는 한국·중국 등 5곳뿐이다. 중국은 오염수 방출에 강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고, 오염수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게 되는 태평양 섬나라들은 ‘방류 연기’를 요구한 상태다.
하지만 한국은 ‘국민 건강’을 언급하면서도 방류에 대해선 모호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이날 자료를 내어 “정부는 2년간 일본에서 오염수 자료를 네차례나 받았다. 하지만 지금껏 어떠한 평가나 분석 결과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신형철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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