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계약 갑질 신고 대표적 사례 뜯어봤더니

김예리 기자 2023. 5. 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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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이름만 프리랜서
노동행정기관의 배신, 입증 책임 사용자로 '대전환' 필요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뮤지컬부터 방송사, 골프장, 학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업종의 '위장 프리랜서'들이 빼앗긴 권리 찾기에 나서지만, 노동행정기관들이 행정편의로 '계약서 이름'에 기대면서 외려 피해를 양산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법적 노동자성 입증 책임을 사용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진단이 뒤따랐다.

노동권단체 직장갑질119와 김영진·이수진(비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간담회실에서 최근 3년 동안 '계약갑질' 제보를 전수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인 김유경 노동법률사무소 돌꽃 노무사는 대표 '계약갑질' 사례를 분석했다. 노동자가 실제 일하는 방식(근로실질)을 보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분명하지만, 회사가 이들에게 '프리랜서'나 '도급' '위탁'이란 이름의 계약서를 내민 사례들이다. 이들은 회사에 종속돼 일하면서도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부당한 대우에도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권단체 직장갑질119와 김영진·이수진(비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비례)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간담회실에서 최근 3년 동안

김유경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엔 근로자 정의가 '직업의 종류와 상관 없이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나와 있다”며 “대한민국 절대 다수의 노동자가 그 틀을 벗어나 일하기 어렵다. 그러나 계약서란 종이 한 장에 서명하는 순간에 사회적 신분인 프리랜서, 독립사업자, 위탁사업자 등의 지위를 얻게 된다”고 했다. 그는 “황당하고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한국 사회에 횡행하는 현상”이라고 했다.

김 노무사는 '계약갑질'이 퍼진 대표 사례로 △뮤지컬 배우 △방송작가 △아이돌보미 △언어치료사 △자동차위탁판매원 △학원강사 등 6가지 업종을 들었다. 김 노무사는 “계약서들은 '상기 업무와 관련해 필요한 업무(방송작가)' '제작사의 프로그램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뮤지컬 배우)' 등 실제 업무 내용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포괄적 문구, 자의적 해석 여지가 폭넓은 문구를 포함하고 있었다”며 “사용자 지시에 의해 수행하는 각종 부가 업무는 그 자체로 해당 종사자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임을 증명하는 뚜렷한 징표들”이라고 했다.

계약서 이름과 달리 조항에는 노동자로서 종속을 요구하는 대목도 드러난다. 결과물을 수정하라는 요구를 거부하면 불이익 취급한다는 조항(언어치료사방송작가)이나, '성실근무 위반'을 계약해지 사유로 명시하는 대목 등이다. 김 노무사는 “이들 조항은 그 자체로 계약당사자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문구이지만, 계약서의 이름은 프리랜서 위탁 계약서”라고 했다.

문제는 노동자의 계약 갑질 신고를 받은 고용노동청과 노동위원회도 계약서의 형식만 기준 삼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일례로 광명의 한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일한 A씨는 기본급과 출퇴근 시간부터 근무일과 휴일, 시간표, 교재 선택에 이르기까지 모두 학원이 결정했지만 '위탁 계약서'란 이름의 계약을 맺고 일했다. 그는 이날 “안양 노동청 근로감독관은 국어 강사 경력이 20년인 사람이 어떻게 위탁계약서란 명칭의 뜻을 모를 수 있냐며 언성을 높이며 위압적 태도로 대했다”며 “결국 근로자성이 부정됐다”고 증언했다.

▲갑질 관련 이미지. ⓒGettyimages

이 같은 난관을 뚫고 위장 프리랜서비정규직 당사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 받아도, 회사들은 오히려 복직한 뒤 근로기준법 울타리 밖에 놓으려 안간힘이다. 최태경 경남CBS 아나운서는 “해고된 뒤 노동위에서 거듭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복직했다. 사측에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기존 프리랜서 계약을 연장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현재까지 근로계약서 없이 고용불안에 시달린다”고 했다.

최 아나운서는 “복직 이후 사측은 노동위가 노동자성 징표로 인정한 업무를 없앴다”고 했다. CBS 측은 최 아나운서와 정규직 아나운서 사이 교대근무를 중단시키고, 아나운서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최 아나운서의 원고 결재 절차를 없애고, 업무 지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서류함'을 마련해 업무 자료를 전달하고 있다.

김 노무사는 노동자성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 지우는 '기본값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노무사는 “안타깝게도 사용자의 대응은 악의적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노동자가 일일이 노동자성을 입증하는 과정도 험난하지만 정규직으로 인정받는 과정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행정의 문제를 넘어 입증 책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궁극적으로 사용자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근로계약서 작성'을 기본값으로 정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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