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프다” 기시다 총리…‘강제동원’ 인정했나?

김지선 2023. 5. 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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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갔습니다. 기시다 총리가 남긴 말 중에 가장 관심을 끄는 건 강제동원 피해자와 관련해 “가슴 아프다”고 한 발언입니다.

나 자신은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가슴이 아프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 5/7)

‘나 자신’이라며 개인적인 입장임을 강조했지만,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 해법 발표 이후 기시다 총리가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기시다 총리의 발언에 대해 윤 대통령은 “진정성 있는 입장을 보여줘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밝혔습니다. 이번 회담에서 과거사 사죄 문제는 양국이 사전에 조율한 의제가 아니었는데도 ‘성의’를 보여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가 한 발언을 진정성 있는, 더 진전된 발언으로 볼 수 있을까요?

■ 기시다 총리 발언, 2015년 나루히토 일왕 표현과 동일

나루히토 일왕은 2015년 왕세자 시절 “앞선 전쟁에서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귀중한 목숨을 잃고 많은 분들이 고통스럽고 매우 슬픈 일을 겪은 것에 대해 매우 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발언을 살펴보면 ▲ 고통스럽고 ▲ 슬픈 일 ▲ 아프게 생각한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발언을 볼까요? ▲ 고통스럽고 ▲ 슬픈 일 ▲ 가슴이 아프다 라는 부분은 2015년 나루히토 일왕이 썼던 표현과 거의 동일합니다.


그러나 표현은 같지만, 발언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많이 다릅니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 발언과 함께 “패전 70년을 맞은 일본은 겸허하게 역사를 돌아보고, 이를 바르게 후세에 전해야 한다”며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을 표하고 ‘평화 헌법’ 수호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당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가려던 아베 신조 정권을 향해 전쟁의 참혹함을 강조하며 강력한 견제 메시지를 던진 겁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의 발언은 나루히토 일왕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혹독한 환경을 만든 주체가 누구인지를 쏙 빼 반성의 의미는 담지 않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 ‘혹독한 환경’을 누가 만들었는지를 명확히 하는 게 왜 중요한지는 한국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 ‘혹독한 환경’은 누가 만들었나?…‘강제성’ 여부도 누락

더 중요한 건 강제노동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이 가장 예민하게 맞서는 부분, ‘강제성’을 인정하는지 여부도 빠져 있다는 점입니다. 2015년 일본이 군함도 등을 유네스코에 등재할 당시 했던 발언과 비교해봐도 오히려 후퇴했다고 보입니다.

2015년 사토 구니 당시 주 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이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이를 제대로 알리겠다고 국제 사회에 공식적으로 약속을 한 건데, 등재 하루 만에 일본 정부는 강제 노동이 아니라고 갑자기 말을 바꿨습니다.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영어 표현(forced to work)을 ‘일하게 됐다’는 수동형으로 번역하며 억지 주장을 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기시다 총리입니다. 당시 외무상이었던 그는 조선인 ‘강제노동’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고, 일본 정부는 지금도 이런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2015.7.7 KBS 뉴스 화면


■ 윤 대통령 “기시다, 부담 갖지 말라”…‘강제 동원 문제’는 진행중

일본과 과거사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 협력, 안보 협력을 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는 굳건해보입니다. 회담에 앞서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에게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전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정상회담에서는 “(한일) 양국이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미래 협력을 위해 한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다는 인식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재차 강조했고, “진정성을 갖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느 일방의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며 일본에 추가 사과 요구 필요성도 일축했습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법적 완결성을 지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했던 정부 해법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은 일본 전범 기업에게 직접 배상을 받기 위해 추가 소송을 진행 중이고, 확정 판결을 받은 15명 외에도 강제 동원 배상 소송 중인 피해자들은 현재 천여 명이 넘습니다.

조선인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일본은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문제, 교과서 왜곡 문제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역사 왜곡 발언을 이어갈 수 있고, 국내 여론이 더 악화되면 두 정상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래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협력을 할 땐 하더라도 역사 문제, 과거사 문제 역시 끈질기게 짚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픽: 김재은, 김서린

김지선 기자 (3rdlin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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