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韓·日 정상 만찬 ‘경주법주 초특선’ 논란…양조업계 “일본식 술 내놓은 것”
양조업계 "음식은 한국 전통식인데, 술만 일본식" 아쉬움 토로
“‘우리 청주’가 아닌 일본 청주인 ‘세이슈(せいしゅ)’를 대접했다. 한국 대통령이 ‘한국술’ 대신에 일본술인 ‘사케’(さけ)를 자신이 주선한 자리에 올린 것이다.”
대통령실도 이를 의식한 듯 만찬 메뉴를 설명과 함께 공개했다. 만찬 요리로는 대표 궁중음식인 구절판을 비롯해 잡채, 탕평채 등 한국 고유 음식 아홉 가지가 제공됐다. 전통 후식 세 가지, 네 가지의 기본 반찬도 올랐다. 이들은 모두 ‘한식’이다. 예컨대 대통령실은 구절판에 대해 “팔각형의 찬합에 9가지의 요리를 넣은 음식으로, 밀가루 전병에 여러 재료를 넣고 싸먹는 고급스러운 한식 요리”라고 설명하면서 한식을 대접했다고 강조했다.
양국 정상 부부가 마신 술에 대해서도 “쌀 표면을 79%까지 깎아내어 더욱 깨끗하고 부드러우며, 우리 청주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천년고도의 명주”라고 소개했다. 이들이 마신 술은 ‘경주법주 초특선’.
현재 국내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주세법상 청주’는 일본식 청주가 대부분이다. 일제강점기쯤 국내에 들어온 방식으로, 일본 청주에서 사용하는 흩임누룩 형태인 입국을 활용해 술을 빚는다. 이러한 입국을 99% 이상 사용해야 하는 술이 주세법에서 청주로 등록돼 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술은 세이슈다.
이는 1909년 일제가 주세법을 공포하면서 일본식 청주만 ‘청주’라는 말을 쓸 수 있게 했던 탓이다. 밀누룩을 사용한 한국 전통방식 청주는 청주 대신 ‘약주’라는 말을 사용해야 했다. 독립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에도 주세법에 그대로 적용됐다.
그렇기 때문에 경주법주 초특선은 ‘주세법상 청주’에 들어가지만, 엄밀히 따지면 우리 청주가 아닌 일본 청주라는 것이다.
더불어 ‘초특선’이나 ‘쌀 표면을 79%까지 깎아내어 더욱 깨끗하고 부드러우며’ 등은 모두 사케에 해당하는 용어다. 일본은 1991년 사케 등급 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쌀의 도정 정도에 따라 구분했다. 예컨대 50% 이상 도정하면 ‘다이긴죠’(大吟醸)라는 이름을 붙인다. 더불어 ‘초특선’은 일본에서 사용했던 고급 등급 명칭 중 하나다.
한 주류전문가는 “쌀의 도정 정도로 술의 품질을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일본술에 해당하는 방법”이라며 “입국을 사용해 술을 빚고 이름에 일본색이 짙은 것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사케식 표현과 양조법”이라고 지적했다.
국가무형문화재 86-다 호로 지정된 경주교동법주는 경주 최씨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 온 가양주다. 지역 최고의 명주로 이름을 알렸던 이 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쌀로 가양주를 빚는 것을 금지하면서 암흑기를 겪었다.
또 다른 주류 전문가는 “일본 전통 방식의 청주를 추구하는 술을 ‘우리 청주’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으며 우리 고유 방식의 청주로 만찬을 진행해야 했다”며 “특히 경주법주 초특선은 일본 전통주의 방식을 추구하고 따라하는 술”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 면에서 경주의 술로 해야 했다면 우리술인 경주교동법주가 적합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양조장 관계자는 “기시다 일본 총리가 사케를 좋아한다면 사케와 비슷한 맛을 내는 한국 청주도 있으니 그 술을 대접했어야 했다”며 “음식은 한국 전통식인데, 술만 일본 전통식이라서 아쉬움이 많은 자리”라고 밝혔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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