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디지털 창세기]〈18〉디지털시대 창작의 과제
남미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를 보자. 1900년대 소설가 피에르 메나르의 저술 중 가장 의미있는 작품은 돈키호테 1부의 9장과 38장, 그리고 22장의 일부로 이뤄져 있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1605년 작품 돈키호테의 해당 부분과 언어, 문장 등 모든 면에서 똑같은 몇 장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물론 펠리페 2세나 종교재판소의 이교도 처형 등 300년이 지난 시대에 맞지 않은 내용을 제외했다.
그러나 1605년 당시 세르반테스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왔기에 고어체처럼 읽기 어색하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그대로 베낀 피에르 메나르의 작품을 창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보르헤스의 평가는 놀랍다. 300년의 시대착오를 이용해 ‘독자마다 새롭고 다양한 감흥을 불러 일으켜 독서를 풍부하게 했다’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다른 명작이라고 치켜세웠다. 보르헤스는 필자가 그의 작품을 베껴 적당한 해석을 붙여 세상에 내놓는다고 해도 똑같은 평가를 내릴까. 돌아가셨으니 알 길이 없다. 디지털시대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창작은 어떻게 평가받아야 할까.
최근 영국 예술가 데미언 허스트는 AI를 활용, 작품(The Beautiful Paintings)을 발표했고 278억원 판매수익을 거뒀다. 구매자가 원하는 색상, 스타일로 조합해 디지털과 아날로그 창작의 경계를 허무는 AI 작품이다. AI가 발명을 하고, 음악을 작곡하고, 시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려 전시회에 출품하는 시대다.
창작에 대한 보상체계를 보자. 특허권, 저작권 등이 그것이다. 발명에 대한 특허권을 인정받으려면 이미 알려진 기술이 아니어야 하고(신규성), 기존의 기술만으로 쉽게 생각해 낼 수 없는 것이어야 하며(진보성), 산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저작권도 그 창작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베껴서는 안되고 독창적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디지털시대에 창작 개념이 유지될 수 있을까. 그렇다. 창작은 기존의 발명, 저작 등 창작물과 비교해 새롭고 독창적이어야 한다.
창작 개념이 유지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전유물로만 남아야 할까. AI 등 제3의 창작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볼 수는 없다. 창작은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산업과 시장을 여는 계기가 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면 AI 등 제3의 창작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아날로그와 다른 디지털시대엔 그에 맞는 창작 주체를 더할 수 있고 사람에 한정해선 안된다.
AI 등 디지털시대 창작 인정요건은 어떠해야 할까. 창작에 고통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AI를 활용하면 너무 쉽게 창작이 이뤄질 수 있다. AI 창작 인정 요건은 자연인 창작보다 기준을 어렵게 할 필요가 있다. AI 창작의 결과로서 주어지는 권리도 보호 수준과 범위를 자연인 창작보다 줄여야 한다. 자연인 창작과 구분해 AI 창작을 별도로 등록 등 관리하는 법·제도가 필요하다. 인간과 AI가 디지털 시공간의 창작에서 균형과 조화, 공존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창작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과 협력을 지원하는 환경도 중요하다. AI를 이용할 수 있는 자본과 기술을 갖춘 기업만 창작 시장을 주도해선 안된다. 자연인도 AI 기술을 이용, 창작할 수 있는 지원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국가가 법·제도를 마련해 국가와 기업이 가진 AI 인프라를 자연인도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엄청난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AI 개발과 활용, 성과는 특정 기업이나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정부, 기업, 국민의 협력으로 이뤄지는 만큼 창작의 과실을 현명하게 나눌 수 있어야 디지털 선진국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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