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록] 재건축 28년째… 잠실주공5단지 무슨 일이

정영희 기자 입력 2023. 5. 8. 16:02 수정 2023. 5. 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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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공모 리스크로 중단된 사업에 부정선거 논란까지

[편집자주][정비록]은 '도시정비사업 기록'의 줄임말입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해당 조합과 지역 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도시정비계획은 신규 분양을 위한 사업 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정문의 모습./사진=정영희 기자
강남구 대치동 '은마',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와 함께 서울 강남권 재건축 대장주로 꼽히는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가 조합 운영의 문제로 인해 사업 진행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잠실주공5단지는 1978년 준공돼 올해로 46년된 3930가구의 대단지다. 지난 1일 찾은 해당 단지는 한눈에 봐도 연식이 드러났다. 모든 동의 콘크리트 외벽엔 작은 실금이 가 있고 복도 섀시는 수십 년 전에 설치한 옛날 제품이었다. 군데군데 실금을 메우기 위한 수리로 벽색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뒤로 높게 솟은 롯데월드타워와 롯데백화점이 대조된 모습을 보였다.

다수의 주민들이 내부 인테리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풍이 심해 겨울에 보온이 잘되지 않는 건 물론 화장실이나 주방 사용조차 어려울 정도로 낡은 탓이다. 이날 만난 주민들에게 재건축의 필요성에 대해 묻자 "녹물이 너무 심하고 수압이 낮아 힘들다. 집값을 떠나서 아파트 자체가 너무 오래돼 재건축이 필요하다"는 공통된 의견이 나왔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 전경. 아파트에서 맞은편 롯데타워가 보인다./사진=정영희 기자


재건축 28년째에도 제자리만 9년… 내홍 반복 탓?


연식이 있다 보니 잠실주공5단지는 28년 전인 1996년부터 재건축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03년 추진위원회가 승인된 데 이어 2005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후 2010년 안전진단, 2013년 조합 설립까지 마쳤으나 9년4개월째 사업시행계획을 인가받지 못하고 있다. 재개발과 함께 재건축 역시 조합설립부터 사업시행인가까지의 소요 기간이 결코 짧지 않지만 잠실주공5단지의 경우 지나치게 오래 걸린 수준이다.

지난해 재건축 정비계획안 수립 7년 만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조건부로 통과했다. 현재 3930가구를 최고 50층, 총 6815가구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통상 정비업계에서 용적률이 180% 미만인 곳의 사업성을 높게 평가하는데 이 단지 용적률은 138%다. 지하철 2호선 잠실역이 걸어서 5분 거리로 쇼핑몰, 백화점, 석촌호수 등이 주변에 위치해 있다. 시공사는 삼성물산 건설부문, GS건설, HDC현대산업개발로 정해져 재건축 시 브랜드 파워가 탄탄할 것으로 부동산 업계는 분석했다.

이처럼 재건축이 성공하기만 하면 명실상부 '잠실 랜드마크'로의 부상이 명백함에도 잠실주공5단지는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연이어 발목을 잡히고 있다. 지난해 8월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은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조합에 '단지 내 약 1만4400㎡ 규모의 신천초 부지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내에 위치한 신천초등학교 전경. 1959년 개교했다./사진=정영희 기자
조합은 당초 신천초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단지 내 초등학교 2곳과 중학교 1곳을 새로 지어 기부채납하기로 시와 합의했다. 이를 담은 정비계획은 심의를 통과했다. 신축한 학교 부지와 건물을 교육청에 양도함으로써 부지를 맞교환하기로 한 셈이다.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토지에 지방 교육청 소유의 학교가 자리하는 경우 이 같은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신천초 부지가 교육부 소유 국유지라는 사실에서 불거졌다. 1959년 설립된 신천초를 비롯한 국내 초고령 학교들의 건물 소유권은 1991년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며 지방 교육청의 몫이 됐지만 부지는 교육부 소유 국유지로 남아 있다. 현행 '국유재산법 시행령'에 따르면 교환 상대방에 건물을 신축하게 하고 해당 건물을 교환으로 취득하려고 할 때는 일반·사유재산과 국유재산을 교환할 수 없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이유로 들어 조합 측에 학교 부지 교환과 신축이 불가하다는 회신을 보냈다.

학교 이전이 불가능하다면 사업시행계획서상 토지이용계획을 손봐야 하기에 사업이 더욱 미뤄질 수 있다. 조합 관계자는 "학교 이전에 관한 조합원 간 논의는 아직 진행 중"이라며 "조합원들이 원하는 곳으로 학교 위치를 최대한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 멈추라'는 법원 결정에 길 잃은 조합


올해 초에 설계안을 둘러싼 소송전이 벌어지면서 또 한 번 곤욕을 치렀다. 해당 단지는 2018년 국제설계공모를 거쳐 채택된 설계안을 승인받았다. 공모에서 1위를 차지한 당선작은 조성룡도시건축 컨소시엄이 제시한 '잠실대첩'이었다.

공모 이후 물 흐르듯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 재건축은 지연된 인·허가와 조합원들의 설계 반대라는 암초를 만났다. 앞선 신천초 이전 문제가 2018년부터 시작됐기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당선작 선정 이후에도 교육환경영향평가 진행을 이유로 심의를 빠르게 진행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수의 조합원은 당선작이 '닭장아파트' 같다는 이유로 2위 당선작에 힘을 실어 조합원간 대립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사무실의 모습./사진=정영희 기자
조합은 '서울시 심의가 통과되지 않았다'며 조성룡도시건축 컨소시엄과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로 3년을 보냈다. 컨소시엄은 '당선자 지위를 확인해 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서울시의 설계안 지침에는 '공모 1등 당선자가 우선협상권을 포기하거나 우선협상이 결렬되면 발주처(조합)는 차순위자에게 협상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조합 측은 컨소시엄의 소 제기를 협의 불발로 해석, 2위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이에 컨소시엄은 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2월1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 또한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인정 가처분 항고심에서 인용 결정했다. 법원 판결에 따라 컨소시엄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견고해지면서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사업은 전면중단됐다. 지난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 당시 '현상공모 당선인에 관해 명확하게 하라'는 조건이 붙었기 때문이다.

조합으로선 어떤 방향을 선택하든 사업 지연과 비용 증가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법원 결정대로 조성룡도시건축 컨소시엄 설계안을 받아들여 재건축을 추진하면 기계약된 2위 회사에 계약 파기에 대한 위약금을 지급할 가능성이 큰 데다 해당 설계안 자체를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의견이 아직 견고해서다.

계약대로 2위 회사의 설계안을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하긴 더 어렵다. 판결 이후 2위 설계안을 제출한 회사와의 계약은 힘을 못 쓰게 됐다. 현재 조합은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 승소 판결을 내려줘야만 해당 계약이 다시 효력을 가진다.

조합 측도 이 문제에 대해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조합 임원은 "조성룡도시건축 컨소시엄심에 도면 수정 요청을 비롯한 협의를 진행하고자 노력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던 건 사실"이라며 "조합원들이 해당 설계에 불만족한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으니 조합이 이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비상대책위원회가 조합원을 상대로 조합 임원 해임에 관한 총회 소집발의 동의를 받고 있다./사진=정영희 기자


"부정선거 인정하라" vs "근거 없다"


잠실주공5단지는 최근 조합 내홍까지 불거지며 홍역을 치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2016년 1월 치러진 조합장·대의원·이사 등 조합 내부 선거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 혐의(업무방해)로 재건축조합 자문단장 A씨와 용역업체 대표 B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A씨와 B씨는 사전에 당선시킬 대의원과 이사를 지정한 다음 투표용지 전달을 위해 조합 사무실에 방문한 일부 조합원의 투표용지와 우편으로 도착한 투표용지를 이미 기표가 완료된 투표용지로 바꿔치기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우편봉투 조작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봉투 겉면에 비밀점을 찍어둔 것으로도 알려졌다.

재건축 사업의 경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조합원 10분이 1 이상의 요구로 소집된 총회에서 조합임원을 해임할 수 있다. 검찰은 지난달 정복문 현 조합장은 기소하지 않았다. 정 조합장은 당시 선거에서 연임이 확정됐는데 그 과정에서 부정선거에 공모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비상대책위원회가 조합원에게 나눠준 '잠오소식' 소식지와 조합총회 소집발의 동의서./사진=독자 제공
비대위는 부정선거 사실 자체가 명확하기 때문에 2016년 선거의 결과로 연임된 임원들은 자격 박탈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비대위 관계자는 "학교 이전과 설계 문제 외에도 현행 국토교통부의 기부채납 법정 한도가 8.0%임에도 지금의 조합 임원은 19.1%를 기부채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재건축이 흐지부지되거나 조합원의 피해가 증가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최대한 빨리 조합 임원을 새로 뽑으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계획대로 총회가 소집돼 조합 임원을 신규 선출하면 현 조합 임원들에게 사업 지연과 부정선거 개입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배상금을 사업비로 충당해 분담금을 줄이겠단 의도다. 조합 측은 이 같은 비대위의 발언에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부정선거에 대한 A씨와 B씨의 유·무죄 여부를 확정하는 1심 공판은 오는 6월8일로 예정됐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공판 결과에 따라 현 조합 임원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새 집행부 구성 후 이를 토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다"며 "그러나 임원 개개인이 내는 배상금이 분담금을 줄일 만큼 거액일 가능성은 작다"고 설명했다.


착공 지연에도 규제 완화에 시세 상승


잠실주공5단지는 당초 2024년 착공을 목표로 했으나 지금으로선 재건축을 두고 엮인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보니 사업이 언제 정상 재개될지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지금처럼 고금리와 원자잿값 인상 등 외부적 요인도 긍정적이지 않을 때는 조합과 비대위 간 협의가 더욱 쉽지 않아 타협점을 찾는 데에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다만 사업성이 높아 일반분양 시 분양가를 인근 단지보다 높게 설정하더라도 입지가 워낙 좋아 수요가 몰려들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2200가구 이상인 76.49㎡(이하 전용면적)의 매매 시세는 21억~23억원대다. 81.75㎡의 경우 24억~26억원대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들어 매매 거래가격이 2억~3억원씩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지 주변 한 공인중개사는 "지난해 말 시장 침체기와 재건축 지연이 겹치며 20억원선 아래로 떨어진 적도 있으나 올들어 규제가 풀리고 공시가격도 낮아져 세부담이 줄면서 매수 문의가 늘었다"고 전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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