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권 영등포구청장 “문래동 세종문화회관, 첫 단추부터 잘못 꿰”[‘민선 8기’ 서울 구청장에게 듣다]

김보미 기자 2023. 5. 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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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이 지난 4일 영등포구청사 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영등포구 제공

여의도공원으로 예정 부지를 옮긴 제2세종문화회관 논란과 관련해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문래동 부지 건립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꿴 사업”이라며 “구유지를 서울시에 반영구적으로 무상 대여해 구민 땅이 사라진다는 점을 충분히 살피지 않았던 것”이라고 밝혔다.

최 구청장은 지난 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2세종문화회관 문래동 건립은) 제 공약이기도 해 이행을 검토했으나 5년마다 무상사용을 갱신해야 하는 행정적 낭비가 있고, 부지가 좁아 위상에 맞는 건축도 불가능하다”며 “이에 서울시에서 정치적 이슈가 아닌 법적 요건 등을 종합 판단해 장소를 변경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안은 서울 서남권 지역 문화시설 확충을 위해 2019년 확정됐다. 영등포구가 기부채납받은 문래동 옛 방림방적 부지 1만2947㎡(약 4000평)을 서울시가 무상으로 빌려 건립과 운영을 맡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유재산법상 토지 무상사용은 최대 5년까지 가능해 이후 5년마다 재심의를 받아야 하는 점 등을 들어 서울시는 지난 3월 여의도공원으로 예정 부지를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최 구청장은 “당장 문래동에 짓는다고 해도 법적 논란이 반복될 수 있는, 현 구청장 권한을 넘은 결정”이라며 “서울시가 (영등포구의) 양평2동 공공복합시설을 위한 시유지 무상사용도 거부해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공원 안에 조성될 제2세종문화회관 조감도. 서울시 제공

제2세종문화회관이 추진됐던 문래동 부지는 문래창작촌 등 지역 예술가 공간과 영등포공원 문화원을 이전해 구민 접근성이 좋은 복합문화시설 만들 예정이다.

최 구청장은 “(공간) 기획·설계로 착공까지 2년여가 걸릴텐데 그동안 어린이 놀이터와 건강 시설, 황토 둘레길 등을 만들어 주민 공간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공청회나 토론회 없이 구유지 사용이 결정됐던 점을 반면교사 삼아 이번에는 주민들에게 충분히 활용 방안을 설명하겠다고도 했다.

행시 34회로 영등포구청에 부임해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최 구청장은 이후 서울시와 청와대를 거쳐 인도 총영사, 국립과천과학장 직무대리 등을 지냈다. 30여년 만에 다시 구청을 찾은 소회를 묻자 “정치 과잉으로 지방자치가 여전히 중앙 정치에 예속된 느낌”이라며 “패거리 정치가 30년 동안의 지방자치 발전을 더디게 했다”고 비판했다. “공천권을 볼모”로 “중앙 정치인들이 지방자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0여 년간 행정가 출신 구청장이 많았던 구로구와 정치인 구청장이 많았던 영등포구의 산업 발전 격차를 지적했다. 최첨단 정보통신(IT) 중심으로 변화된 구로공단과 여전히 기계 공장으로 남은 문래동 금속 공단을 비교한 것이다.

지난 2018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철공소에 철근들이 쌓여 있다. 굵기와 강도가 다른 철근을 쉽게 알아보기 위해 각자 다른 색을 칠해져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는 “지방 행정이 정치화되면 선심성·현금 살포 정책으로 지역을 위한 투자가 이뤄질 수 없다”면서 “구청장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전문성을 지지해야 하고 보조금 받는 단체 역시 정치적 중립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생활 자치가 지역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행정은 정치적 표를 의식한 단기적 결정이 아닌 미래를 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 구청장은 최근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다녀왔다며 “순천시가 미래에 1000억원을 투자해 어마어마한 일자리와 가치가 창출했다”고 전했다. 박람회는 지난달 1일 개장 후 한 달여 만에 280만명 이상이 방문했다.

한국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영등포를 다시 4차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과학교육에 투자하겠다는 것이 최 구청장의 구상이다. 영등포구는 지난 2월 서울시교육청과 과학교육특별구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고, 서남권 서울시립과학관 유치 등을 추진할 영등포미래교육재단(가칭) 법인 인가를 지난달 받아 하반기 출범을 준비 중이다.

최 구청장은 “앞으로 일자리와 주거·문화·녹지가 도시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라며 “영등포는 여의도 금융 특구 활성화와 준공업 지역을 4차 산업으로 고도화하는 데서 일자리의 답을 찾겠다”고 말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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