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챗GPT 등 생성형 AI의 영향력 과장됐다"
챗GPT의 성공적 데뷔 이후 각계각층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AI)가 불러올 경제 및 구조적 변화가 실제보다 과장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역사적으로 신기술 하나만으로 사회가 변혁기를 맞이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적어도 30년간은 생성형 AI 덕 볼 일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7일(현지시간) "오픈AI사가 작년 11월 첫 선을 보인 챗GPT로 인해 생성형 AI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지만, 특정 기업의 기술 독점과 노동시장 붕괴, 생산성 폭증 등 갖가지 예측들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가 향후 10년 동안 전 세계 연간 국내총생산(GDP)을 7%(약 7조달러) 늘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생성형 AI 기술을 도입한 기업들의 연간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평균 3%포인트 가량으로 관측됐다. 기술 관련 자선단체 오픈 필란트로피는 "생성형 AI 덕분에 이번 세기 중에 '폭발적 성장(전 세계 생산량이 연간 30% 이상 증가하는 경우)'이 일어날 가능성이 10% 이상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전 세계 소득이 무한대로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시장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 같은 기대감은 과도하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진단이다. 지난 1년간 AI 관련 기업의 주가 상승세는 전 세계 주요국 주식시장을 추종하는 MSCI 월드지수의 상승률을 한참 밑돌았다. GDP 성장률과 실질금리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추적하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은 "생성형 AI가 모든 사람에게 부의 증대를 가져올 것이란 전망대로면 저축할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금리가 상승했어야 했다"며 "그러나 작년 11월 챗GPT 출시 이후 장기 금리는 오히려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적어도 30~50년은 생성형 AI로 인한 성장 가속화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이와 관련해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신기술 혁신의 사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700년대 후반 산업혁명을 일으킨 주요 요인으로 방적기 발명을 꼽는 일반의 통념과 달리 석탄 사용량 증가, 재산권 강화, 과학적 사고방식의 출현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경제 지형을 변혁시켰다는 주장이다. 로버트 포겔 전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는 철도 개발의 영향력에 관한 연구에서 "철도 시스템은 19세기 미국의 1인당 소득 수준을 단 3개월 앞당겼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60년대 내놓은 해당 연구로 199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어 생성형 AI가 야기할 변화에 대해 과점, 노동시장, 생산성 측면에서 짚었다. 골드만삭스는 연구에서 "생성형 AI가 글로벌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연간 매출에 약 4300억달러를 추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수혜를 오픈AI사만 독점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부 규제, 노조 입김 등으로 대량 해고 없을 것"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모든 생성형 AI 제품이 비슷한 모델을 사용하기 때문에 해당 시장에서 초격차 제품이 등장할 가능성은 없다"며 "항공, 검색 엔진 분야처럼 소수 대기업들의 경쟁 구도로 흘러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10억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생성형 AI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벤처캐피털 안드레센호로위츠도 "현재 생성형 AI 분야에 체계적인 해자는 없는 상황"이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생성형 AI가 노동시장에도 큰 변화를 몰고오진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술혁신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란 우려도 다소 과장됐다는 주장이다. 과거에도 로봇, 자동화 기술 등이 등장할 때마다 대량 인력 해고에 대한 연구들이 잇따랐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0년간 G7(주요 7개국)의 평균 실업률은 오히려 절반 가까이 줄었고, 특히 대한민국나 싱가포르처럼 선진화된 로봇공학 시스템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는 실업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안드레센호로위츠는 '정부 규제'를 이유로 들었다. 교육, 의료 등 국가의 개입이 많은 분야일수록 기술 변화로 인한 체감 속도가 매우 느린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안드레센호로위츠는 "고용 안정 혹은 극대화에 방점을 두는 정부는 신기술로 인한 효율성 향상을 억제하려 하고, 기성 노조의 입김 역시 대규모 해고의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과 미국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생성형 AI 규제 방안을 마련하는 데 착수한 것도 이 같은 흐름에서 비롯됐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관점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생성형 AI가 특정 일자리를 대체하게 되더라도 지금은 상상조차 어려운 완전히 새로운 직종을 창출할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2020년 MIT의 한 연구진에 의하면 네일 아티스트 등 현재 미국 일자리의 60% 가까이가 1940년에는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생성형 AI가 노동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미미한 만큼 생산성 증대에 기여하는 속도도 더딜 것이란 진단도 내놨다. 건설업, 농업 등 주요국 GDP의 약 20%를 차지하는 블루칼라 직군 등은 생성형 AI 같은 신기술 도입이 별다른 생산성 증대화 효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접객업, 의료 등 대면 서비스가 필요한 업종도 마찬가지다. 이코노미스트는 "19세기 미국의 발전에 철도가 그다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진 않았다는 포겔 교수의 연구처럼 생성형 AI도 지금의 경제 지형도를 완전히 뒤집을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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