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넘쳐나는 애국 사이 추락하는 벌새들 노동자

한겨레21 2023. 5. 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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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만보]미국 대왕판다 죽음엔 ‘조의’, 농촌 출신 노동자 잇단 자살엔 ‘침묵’
2022년 11월1일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동물원에서 대나무를 먹고 있는 대왕판다 러러의 모습. REUTERS

2023년 2월1일(현지시각) 새벽,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동물원에서 대왕판다 ‘러러’가 사망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향년 25. 러러는 2003년 암컷 판다 ‘야야’와 짝지어 미국에 보내진 중국 ‘판다외교’의 상징이었다. 중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대왕판다 서식지로, 1972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중국 방문 이후 세계 각국에 외교적 우호 상징으로 대왕판다를 꾸준히 ‘대여’했다. 우리나라에도 2014년 중국이 선물한 판다 커플 ‘아이바오’와 ‘러바오’가 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판다 ‘푸바오’가 있다.

러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언론과 여러 소셜미디어에서 ‘시일야방성대곡’이 터져나왔다. 중국 소셜미디어를 주름잡는 인플루언서와 누리꾼은 “러러가 미국 쪽의 돌봄 부족과 부주의로 객사했다”며 “중국 정부는 당장 미국 쪽에 러러 사망의 진상 규명을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러가 죽기 전인 2020년부터 중국 인터넷은 멤피스동물원에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시름시름 앓는 러러와 야야의 모습을 보여주며 미국의 학대 의혹을 제기했다.

중-미 관계가 살얼음판이 되면서 러러와 야야도 덩달아 유명 정치인 못지않은 관심을 받았다. 마침 대여기간 만료 시점인 20년이 다가오자 미국도 연장을 요구하지 않고 2023년 봄에 러러와 야야를 중국에 반환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러러는 고향인 중국에 돌아오기 두 달 전 안타깝게도 (중국 누리꾼의 표현을 빌리면) “타국에서 의문의 객사를 당했다”.

농민공 2세대 청년들의 집단 죽음

4월3일, 짧은 뉴스 하나가 올라왔다. 중국에서 유명한 관광지인 후난성 장자제(장가계) 톈먼산 정상에서 청년 네 명이 집단자살을 했다는 소식이다. 장자제는 한국 사람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네 청년 중 세 명이 남성이고 한 명은 여성이다. 먼저 남성들이 거의 동시에 톈먼산 정상에서 절벽 아래로 투신했고, 여성은 떨어지려는 순간 주변 사람들에게 제지됐으나 그 직전에 독극물을 마신 상태라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에 사망했다. 청년들은 가장 어린 이가 23살이고 가장 나이 많은 이가 33살이었다.

경찰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청년들은 투신하기 전날인 4월2일 유서를 썼고 투신 전에 모두 독극물을 마셨다. 그들은 생전에 전혀 모르는 사이로 인터넷에서 알게 돼 ‘집단자살을 모의’했다고 한다. 유서는 노트를 아무렇게나 찢은 종이 위에 “본인은 ××××로 민사행위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 죽음은 자살로 다른 사람과는 관계없다”는 짧은 메모로 쓰였다. 그들은 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인 장자제까지 와서 스스로 객사를 선택했을까.

청년들의 집단자살과 관련해 중국 언론 중 가장 자세한 취재 기사를 낸 잡지 <삼련생활주간>에 따르면, 네 청년은 공통적으로 농민공(도시로 장단기 일자리를 찾아오는 농촌 출신 노동자) 2세대다. 농민공인 부모와 마찬가지로 중학교를 채 마치기 전인 열서너 살에 고향을 등지고 광저우나 톈진, 청두 등의 대도시로 일찌감치 돈벌이를 떠났다. 그들은 공장과 건설현장, 미용실 등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며 이 도시 저 도시로 옮겨다녔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33살 ‘노총각’ 펑즈쥔도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바로 허난의 한 건설현장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중노동을 하며 살았다. 고향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안이었던 탓에 나이 서른이 넘도록 펑즈쥔에게 중매를 서는 이가 없었다. 중국 농촌에서는 남자가 결혼하려면 상대 여성의 집에 ‘차이리’라는 돈을 주는 게 관행이다. 그 액수가 적게는 몇백만원에서 많으면 몇천만원이기에 펑즈쥔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대부분 이십 대 초중반에 결혼하는 농촌의 특성상 서른 살 넘도록 결혼하지 못한 펑즈쥔은 자신을 실패자로 여겼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다 한 번 고향에 내려가면 그는 늘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사마터 헤어스타일. 위키피디아 갈무리

한 번도 환대받지 못한, 사마터들

23살로 가장 나이가 어린 여성 천팅도 중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16살에 청두, 광저우 등 대도시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다. 그의 부모도 오랫동안 외지에서 일했지만 가난의 대물림은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병까지 얻었다. 아버지가 암에 걸리자 그 치료비와 동생 학비 등은 고스란히 어린 천팅이 감당해야 했다. 온종일 미용실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했지만 한 달 5천위안(약 100만원) 이상 벌지 못했다.

4월1일, 천팅은 고향에 있는 엄마와 마지막 연락을 하면서 월급이 적은 미용실을 그만두고 청두로 가서 공장에 취직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천팅은 공장에 가는 대신 죽음을 준비했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날, 천팅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니하오(안녕) 세계여! 짜이젠!(굿바이)”이다. 천팅은 태어나 이 세계에서 거의 한 번도 다정한 환대를 받지 못했다.

펑즈쥔의 고향 마을 친구에 따르면, 펑즈쥔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는 머리를 파란색으로 염색하고 일본 만화에 나오는 기괴한 헤어스타일로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펑즈쥔은 건설현장 일을 그만두고 이른바 ‘사마터’(殺馬特)가 됐다.

사마터는 2000년대 초반 이후 광둥 지역 공장 밀집 지대 노동자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중국판 펑크족과 비슷한 무리다. 영어 ‘smart'(스마트)를 중국식 발음으로 변형해서 만들었다고 알려졌다. 사마터는 대도시 주변 공장에서 일하는 농촌 출신의 저학력 노동자가 대다수고, 부모 역시 농민공 출신이다. 이들은 펑크족과 비슷하게 머리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이고 기괴한 헤어스타일과 복장을 한 채 거리를 활보했다. 그들의 등장이 눈길을 끌자 2019년 리이판 감독이 제작한 <사마터,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도 개봉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수많은 사마터는 자신들이 사마터가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대부분 열서너 살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도시로 돈벌이를 나와야 했어요. 일하기에는 너무 어려서 위조 신분증을 만들기도 했고 공장에서도 알면서 다 속아줬어요. 일부 악질 사장은 우리가 어리고 세상 물정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임금을 떼먹는 일이 다반사였죠. 농촌 밖으로 나온 것도 처음이었고, 도시에 와서도 공장에서 온종일 일하느라 밤에 퇴근해 집으로 가는 길을 못 찾기도 했어요. 그렇게 순진했기에 자주 사기당하거나 쉽게 속았어요. 일하는 게 너무 힘들고 외로울 때 고향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도 해봤지만 그때마다 부모님은 이렇게 말했어요.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어? 우리도 다 그렇게 살아왔단다’라고요.”

끊임없이 날갯 짓 해야 하는 벌새처럼

“공장에서는 조금만 한눈팔아도 손가락이 수시로 잘려나갔어요. 일하다가 선 채로 잠이 든 적도 있었고요. 하루 14시간 이상 일해도 돈을 모을 수 없었어요. 월급날이면 은행에 달려가 고향에 돈을 보내기 바빴죠. 우리가 번 돈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가족이 있거든요. 우리가 일하는 광저우나 선전 등에는 하루가 다르게 고급 아파트와 고급 차가 늘어났지만, 그건 우리가 죽었다 깨어나도 살 수 있는 게 아님을 알았지요. 도시 사람들은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했고 무시했어요. 우리는 존재해도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죠. 우리도 세상의 관심을 받고 싶었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느 날부터인가 머리를 펑크족처럼 하고 옷도 파격적으로 입고 다니며 거리를 활보했어요. 나쁜 사람처럼 하고 다니면 우리를 속이거나 무시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또 그렇게 하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리도 주목받고 관심받는 존재가 됐죠. ‘차이리’ 줄 돈이 없어서 결혼도 못하고 좋아해주는 여자도 없는데 사마터가 되니까 멋있다며 좋아해주는 여자친구도 생기지 뭐예요. 그리고 사실 이 세계에서 우리가 머리를 물들이고 과장되게 치장하고 다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중국 사회는 이들 노동자의 사마터 문화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2012년을 전후해 언론과 인터넷 등에서 사마터에 대한 온갖 부정적 여론을 퍼뜨리며 사실상 대대적인 탄압과 절멸 작전을 펼쳤다. 사회 풍기를 해치는 질 낮은 무리의 저급 문화로 취급하며 사마터의 모임 공간을 폐쇄하고 공장 등에 취업도 금지했다. 이들은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져서 부유하다가 펑즈쥔처럼 끝내 스스로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이자 독일 막스플랑크사회인류학연구소 소장인 샹뱌오가 정의한 개념에 따르면, 그들은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끊임없는 날갯짓을 해야지만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작은 벌새 같은 존재다. 샹뱌오는 1994년 중국 광저우 둥관의 공장 밀집 지대 노동자들을 연구하면서 그들을 일컬어 벌새처럼 부유하는(懸浮) 주변계층이라고 했다. 중국 사회의 갖가지 구조적 모순과 사회 진입장벽이 이들을 안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공중에서 위태롭게 매달려 있거나 부유하듯 여기저기로 떠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장자제의 산꼭대기에서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 청년들은 중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벌새처럼 파닥거리며 위태로운 공중 부양을 하다가 결국엔 스스로 날개를 접고 추락사를 선택했다.

4월22일 또 다른 청년들의 주검이

대왕판다 러러의 죽음에 분노하던 중국 사회는 이 부유하던 인간 벌새들의 죽음에는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한다는 목소리가 없다. 그들도 모두 타지에서 의문의 객사를 했지만 세상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2023년 4월22일 쓰촨성의 한 산길에서 또 다른 청년들의 주검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두 남성과 한 여성의 주검이었다. 그들도 장자제에서 몸을 던진 청년들처럼 어린 나이에 농촌에서 도시로 돈벌이를 나와서 고단하게 공중을 부유하며 살아가던 작은 벌새들이었다고 한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박현숙의 북경만보: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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