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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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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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시인]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단 한 번만 말했다
1
대남방송과 북한군의 사격훈련 총소리가 들리던 곳
지금도 제 보이는 북한 쪽 오성산에서 상시 관측이 가능한 곳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
대마리처럼
북한에서는 최남단
남한에서는 최북단
영해박씨 집성촌으로 김씨와 이씨 등 타성바지가 스무나문 가구 섞였어도
500여 호가 겹사돈 아니면
누구는 왕고모 딸이고 누구는 오촌 당숙
서로 일가붙이였는데
38선 이북이라 광복 후엔 공산 치하
마을이 공산주의자와 반공주의자로 일부 갈렸어도
나머지는 사상이니 이념이니 모르고 농사나 참하게 짓고 살았는데
6·25가 터지자 전세에 따라 이쪽저쪽 엄한 백성들이 전국에서 죽어 나갔듯 후퇴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원산으로 치달을 때
누가 알았으랴 사각지대로 남은 사곡리를 인민군 패잔병과 열성당원과 중공군이 연합하여 기습할 줄을
누가 알았으랴 반공 활동을 펼쳤던 화랑공작대원과 그 가족을 색출하고 얼결에 지목된 무고한 주민까지 70명을 무참히 살해할 줄을
자다 말고 끌려 나온 열댓 명의 아이들에게도 여지없이 총구가 겨눠질 줄을
1950년 11월 20일 그 새벽부터 피난민들의 시간은 더디 흘러
휴전되고 이러구러 수복 이주 마무리된 1955년에야 분묘 조성되었으니
피 흘리며 포개포개 구덩이에 던져진 시신들의 처참함을 어찌 눈감고 상상할 수 있었으랴
1984년이 되어서야 합동순의비가 제막되니
그들의 원혼을 어찌 달랠 수 있었으랴
그리하여 이제 와 전쟁의 참상을 어찌 상상하지 않을 수 있으랴.
2
가해자가 피해자 되고
엎치락뒤치락
피해자가 가해자 되기도 하던 세상
빨갱이가 제일 무서운 말이었는데
김화 화강이 흘러
한탄강 지나 임진강 지나
한강에서 서해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죄에 연루되지 않았으나
이웃과 친인척에 연루되어
원망도 분노도 복수도 삼켜버린 채
나는 그때 옌병을 앓아 아무것도 몰랐어요*
옌병에 걸리지 않았어도
빨갱이라는 아직도 살아있는 그 말이 너무 무서워
화강은 태평양까지 툭 터놓고 흘러가기가 여전히 요원한데
지정학상 수십수백의 민간인학살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를 철원을 통틀어
『철원군지』에 실린 단 한 건의 학살 관련 사료!
단 하나의 김화지구 합동순의비!
밤에 뺏고 아침에 뺏기던 백마고지전투의 이 첨예한 철원에서
정말
인민군과 중공군, 국군과 유엔군에 의한 제2, 제3의 민간인학살이 없었을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2023년 2월 6일 사곡리 원주민 김대식(1936년생, 사곡리 집단학살 당시 14세) 씨와 인터뷰 중 ‘집단학살 당한 이웃 중 기억나는 분이 계세요?’에 대한 답변(‘옌병’은 염병의 방언). 전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유학한 분으로 사곡리 유래와 전쟁 복구 및 이후의 정치 상황에 대한 활달한 기억력에 비해 집단학살과 관련한 전후 사정에 대해서는 기존 사료를 넘어서는 구체적인 답을 듣지 못함. 자료 제공과 만남의 자리를 주선한 철원역사문화연구소 김영규 소장이 동행했다.
[이영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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