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숙 vs 김사부…TV 드라마 살리는 ‘명의’ 대결
20년 만에 의사 꿈꾸는 주부와
돈보다 환자 외치는 의사의 매력 대결
구산대병원 가정의학과 차정숙과 돌담병원 외과 김사부(본명 부용주). 요즘 가장 ‘핫’한 의사들이다. 진료시간은 각각 토·일 밤 10시30분과 금·토 밤 10시. 두 의사가 동시 진료하는 토요일엔 어느 쪽이 더 붐빌까. 요즘 시들시들한 티브이(TV) 드라마를 살려낸 ‘명의’ <닥터 차정숙>(JTBC)과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3(SBS) 얘기다.
<차정숙>은 지난달 15일 시청률 4.9%(이하 닐슨코리아 집계)로 시작해 2회 만에 7.8%, 가장 최근 8회는 16.2%까지 뛰었다. <김사부> 시즌3은 이전 명성에 힘입어 지난달 28일 12.7%로 돌아왔다. 재미있는 점은 승승장구하던 <차정숙>이 <김사부>와 맞붙은 지난달 29일(5회 10.9%)과 5월6일(7회 12.9%)에만 시청률이 조금 떨어졌다는 것. 다음 회차에서 회복한 걸 보면 <김사부>한테 환자를 조금은 뺏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차정숙>은 20년 만에 다시 의사 꿈을 꾸는 전업주부 성장기이고 <김사부>는 환자만 생각하는 의사 이야기. 서로 다른 재미로 사랑받는데, 함께 찾아오는 토요일은 매력 경쟁이 불가피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김사부가 돈과 권력이 인간과 생명을 소외시키는 ‘낭만 없는 시대’를 채워주는 판타지라면, 차정숙은 노동을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해온 전업주부들의 판타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주제 의식을 모두 병원 내 관계 형성으로 풀었다. <차정숙>은 ‘도전’, <김사부>는 ‘시대정신’으로 초점은 다르다. <차정숙>은 남편 서인호(김병철)와 그의 내연 관계인 최승희(명세빈), 아들 서정민(송지호)과 한 병원에서 일하며 일어나는 상황들로 차정숙을 성장케 한다. <김사부>는 시즌3에서 외상센터 개원을 앞두고 라이벌이었던 흉부외과 전문의 차진만(이경영)을 등장시켰다. 원리원칙주의자에 보수적인 차진만과 돈보다 사람 목숨이 중요하다는 낭만 의사 김사부의 대결 구도다. <차정숙>에서는 서인호와 최승희가 차정숙을 방해한다면, <김사부>는 긴박한 수술 중에 전기가 끊기거나, 수술 순서를 두고 의견이 갈리는 식의 상황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개연성은 차이가 있다. <차정숙>은 20년 만에 전공의 시험에 도전하면서 100여일 공부했는데 50점 만점에 49점을 받고 합격했다. 그런데도 실전에 투입되니 의학 용어도 잘 모르는 등 혼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함께 일하는 아들한테 계속 도움을 청하다가 아들이 보내준 유튜브 영상을 보고 혼자 뚝딱 해내기도 한다. <김사부>는 시즌3 1회부터 탈북자 수술 얘기로 채운다. 선박 총기 사고가 나고 돌담병원 팀이 투입돼 응급조처 뒤 외상센터로 데려와 수술하는 과정을 긴박하게 그린다.
<차정숙>은 서인호와 최승희의 관계가 언제 드러나느냐 등이 불안 요소라면, 환자는 다 똑같다는 <김사부>는 수술 과정 자체가 긴장감을 조성한다. <김사부>가 뛰어난 의사이고 좋은 리더라는 건 수술 장면에서 직접 보여주지만, <차정숙>이 좋은 의사인 건 기업 회장이 ‘유체 이탈’을 경험한 뒤 알게 되는 식이다. <차정숙>에는 의학 용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자막도 없지만, <김사부>에는 2회 5분 동안 이어진 장면에서 자막이 20개 가까이 나올 정도다. <차정숙>이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을 응징하는 ‘명장면’으로 통쾌함을 준다면, <김사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우린 월드 앤 피스로 쭉 갑시다” “가운을 입은 순간 그 어떤 환자도 차별하거나 구별해서는 안 된다” 등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을 위로한다.
시청자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두 드라마를 본다.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를 비난했던 시청자들은 병원에서 가족이 함께 일하고 불륜까지 벌어지는 <차정숙>은 지지한다. 이 드라마에서도 차정숙이 힘들 때마다 젊은 의사 로이킴(민우혁)이 등장해 돕는다. <김사부>도 여느 의학드라마와 달리 시즌제로 자리 잡았고 시즌3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다. 정덕현 평론가는 “<차정숙>은 리얼리티는 떨어지지만 드라마가 쉬운데다 전업주부 판타지에 대한 공감대가 크고 나아가 코미디를 더한 ‘사이다 전개’로 대중성을 띈다”고 말했다. <김사부> 시즌3에 대해서는 “안효섭 등 배우와 유인식 감독 등 제작진이 다른 드라마에서 큰 인기를 얻은 이후 다시 뭉친 것도 시즌3에 관한 대중적 인지도와 주목도를 높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장르와 개연성 등은 달라도 두 드라마가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좋은 의사”에 대한 것이다. 차정숙은 무기수 환자가 입원하자 수갑 때문에 상처 입은 팔목을 몰래 치료해준다. 김사부는 한시가 급한데 한반도 실무협상 때문에 병원에 갈 수 없다는 함장을 이렇게 설득한다. “정치적 상황이야 정치하는 사람이 알아서 하라고 하고, 사람 목숨부터 살립시다.” 정덕현 평론가는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잘못된 시스템에 일갈하는 시원함을 얻고 싶다면 <김사부>를, 판타지이지만 가볍게 웃으며 카타르시스를 맛보고 싶다면 <차정숙>을 추천한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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