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이 자국 내에서 영업하고 있는 외국계 기업 옥죄기 행보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기업들에 대한 불시 조사와 압수수색에 나서는 한편 대외에 제공해왔던 경제 정보도 비공개하기로 결정하는 등 압박 수위를 점점 높이는 모양새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의 시장조사기관 윈드(Wind)는 최근 계약이 종료된 국제연구기관과 외국계 정보업체와 재계약을 거부했습니다. 중국 내에서 가장 핵심적인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 있는 윈드는 기업 등록 정보, 특허 정보, 조달 시장 정보, 금융시장 정보 등을 회원사에 제공해왔습니다. 윈드의 경제 정보에 기초해 중국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계 기업들과 투자자들은 타격을 받게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 때부터 강화돼 온 대중국 수출 통제 조치로 가뜩이나 위험을 끌어안고 투자를 하고 있는 가운데 제대로 된 정보 마저 얻을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WSJ는 “이미 높아진 중국 투자 관련 지정학적 위험과 씨름하고 있는 외국 기업과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외국계 기업에 대한 노골적인 압박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중국 공안은 미국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의 상하이 사무소에 대한 기습 조사를 단행해 직원들을 심문했습니다. 지난 3월에는 미국의 기업신용조사업체 민츠그룹의 베이징 사무소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중국 국적 직원 5명을 연행해갔습니다. 영국계 회계컨설팅 기업 딜로이트도 중국 국영 자산관리업체의 회계 업무에서 불법행위가 발견됐다는 이유로 3100만 달러의 벌금과 함께 6월 중순까지 베이징 사무소의 운영 중단 처분을 받았습니다.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또한 중국 당국의 안보 심사에 직면해있습니다.
최근 중국의 외국계 기업 탄압을 아우르는 키워드는 ‘정보’입니다. 중국은 외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스파이 활동이 의심되는 수하물이나 전자장치 검사를 허용하는 반(反) 스파이법을 확대 적용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다루거나 수집하는 컨설팅기업이나 기업신용조사 업체가 중국의 조사나 행정 처분을 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대한 심사 돌입의 명분도 “제품에 잠재된 문제가 인터넷 안보 위험을 일으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중국 당국은 밝혔습니다.
탄압의 배경엔 격화되는 미중 경쟁이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첨단 반도체 장비 분야의 대중국 수출 통제 조치에 나섰으며, 일본과 네덜란드가 동참의 뜻을 밝힌 상태입니다. 대중국 포위망이 좁혀오는 상황에서 내부 통제와 결속을 강화할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이를 위해 중국에 대한 국제적인 견해를 주도하는 회계컨설팅, 법률 분야 외국 회사의 정보 수집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중국 지도부 내에 외국 자본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공감대까지 퍼져 있다고 WSJ는 전했습니다.
이는 올해 초 외국의 투자를 환영한다는 중국 정부의 입장과 상충됩니다.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류허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며, 중국으로의 문은 더 열릴 것”이라며 “전면적인 개방을 촉진하고 개방의 수준과 질을 향상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외국계 기업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정보 제공까지 거부하는 최근 중국의 행보와 전혀 맞지 않는 발언입니다. 중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투자 확대는커녕 되레 비중을 축소하는 것을 고민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중국에 30년 이상 투자한 벤처투자가 게리 라이셸은 WSJ에 “중국을 이해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수록 외국 자본은 중국 시장을 덜 매력적으로 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상공회의소도 “중국 당국의 조치는 사업을 둘러싼 불확실성과 위험을 극적으로 증가시킨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정부가 외국 자본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WSJ는 자국 경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기업들이 섣불리 투자를 줄이거나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중국 정부의 자신감이 반영돼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해 말 ‘제로코로나’ 방역 기조 폐지로 중국의 경제의 부흥이 기대되는 국면에서 기업들이 발을 빼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지난 3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고위급포럼’에 애플과 삼성전자, 퀄컴, 화이자, 알리안츠, BMW, 아람코 등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100여 명이 몰려들 정도로 중국 시장에 대한 외국 기업들의 구애는 여전합니다.
중국이 ‘국가 안보 강화’와 ‘외자 유치’에 모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중국이 아직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맡고 있는만큼 예단은 이릅니다. 하지만 전망은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주중미국상공회의소가 같은달 18~20일 회원사 109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기업의 27%는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 대한 투자를 우선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2월 조사보다 무려 21%포인트 늘어난 수치입니다. 3월부터 중국 당국의 탄압이 본격화된 점을 감안하면, 중국 내 미국 기업들이 최근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중국이 점점 정보 공개에 소홀해지고 외국계 기업을 압박하는 일이 늘어난다면, 향후 외자 유치 전망도 더 어두워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