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재일동포/ (상) 우리는 '더블'이다

2023. 5. 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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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후쿠테이 긴페이(37ㆍ笑福亭銀甁ㆍ한국이름 심종일)씨의 조국을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는 일본의 전통 1인 만담인 라쿠고(落語)를 한국말로 공연한다. 도저히 접목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일본인 관객이 꽤 몰린다. 9월에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공연도 가졌다. 굳이 따져 물었더니 “지금 조국은 일본이지만, 한국도 조국”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고베(神戶)에서 태어난 동포 3세. 재일동포 최양일(崔洋一) 감독의 영화 ‘피와 뼈’를 보고 자신의 몸에 한국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뜨겁게 느꼈다. 비로소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으로 승부하는 프로 예인(藝人)이 됐다. 그는 “아버지 세대까지 무엇이든 감출 수 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대로의 내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100년 역사의 재일동포 사회에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역사의 어두운 짐을 짊어진 채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온 게 지금까지 동포의 삶이다.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를 따진 뒤에는 다시 남인지 북인지를 물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새 세대는 “우리는 우리”라고 외치고 있다. 강한 민족의식을 가졌던 재일동포 1세, 방황하고, 반항했던 2세와는 달리 3세, 4세들은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싸움에 적극적이다.

이들은 자신을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지만, 한국인이기도 하고 일본인이기도 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자칭 ‘더블’(Doubleㆍダプル)이다. 대부분이 한국 본명과 일본식 통명(通名)을 모두 쓰고 일본인 배우자를 맞아 결혼하고 있다.

현재 일본에는 130만명에 이르는 우리 동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민단동포는 40만명, 조총련 6만명, 장단기체류 한국인은 15만명 정도다. 일본국적의 귀화동포와 무국적동포도 60만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1세 동포의 수가 전체의 5% 정도로 감소하고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포들이 주류로 부상하면서 숨거나 물러서지 않고 과감히 돌파하는 의식의 변화가 뚜렷해졌다.

기쿠치 미라이(菊地未來ㆍ29)씨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동포 3세다. 자연스럽게 일본인으로서 성장했다. 하지만 대학시절 동아리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을 공부한 후 동포의식이 싹텄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갈등이 시작됐다.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나도 모르게 상처가 됐다”는 그는 다니던 대학원도 그만두고 교토(京都)에 있는 동포 1세 양노원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뿌리 찾기에 나섰다. 김미래(金未來)란 이름으로 봉사한 2년 반은 마음의 평화를 주었다.

“나는 뭐든지 한가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고민했는데 할머니들과의 생활에서 그런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재일동포 사회의 새로운 주류들은 더 이상 국적을 고민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는 재일동포, 다시 말해 한국에 뿌리를 두고 일본에 살며 양쪽의 문화를 모두 이해하는 국제인의 집단이라는 의식이 부상하고 있다. ‘더블’은 결코 자조적인 말이 아니라, 도리어 자랑에 가까운 강력한 자기주장인 셈이다.

그러나 이들의 핏줄에 대한 애착은 어느 세대보다 강하다. 당당하게 한국이라는 뿌리를 밝히고 내세운다. 김미래씨도 한국에서 말과 문화를 배운 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들이 당당하진 것은 일본사회의 변화도 하나의 원인이다. 무엇보다 한류(韓流)의 유행과 월드컵공동개최로 재일동포에 대한 이미지가 변했다. 3세 동포 스스로도 조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졌다.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형성된 한인 부락인 교토 미나미(南)구 히가시구조에는 ‘더블’들의 안식처로 사랑 받고 있는 ‘히가시구조 한마당’이라는 모임이 있다.

1986년 2세 귀화동포인 박실(朴實ㆍ61)씨가 중심이 돼 만든 이 모임에는 2~3세 동포 18명이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자식 대에겐 더 이상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한마당을 만들었다”는 그는 “일본사회에서 더블이 더블답게 살아갈 수 있는 문화를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마당은 매년 11월 3일 마을축제 ‘히가시구조 마당’을 개최하고 있다. 벌써 13년째가 되는 축제를 통해 동포들은 연대감을 다지면서 일본 사회에 그들만의 무늬를 새기고 있다.

한편에선 새로운 동포들의 삶이 너무나 개인화, 파편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을 아우를 만한 단체나 조직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매년 1만 명의 동포가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의식에 걸 맞는 동포들의 구심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13년간의 민족 이름 복구 소송 끝에 아라이 미노루(新井實)라는 일본이름에서 한국 이름으로 되돌아 온 박실씨는 “이제는 기성 동포사회도 더블들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젊은이들 사이에는 오사카 등을 중심으로 이 같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김철훈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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