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재일 동포/ (하) 거듭나야 할 동포조직
9월26일 도쿄 주일 한국대사관에 마련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국정감사장. 특별참고인으로 출석한 김재숙(金宰淑) 한국민단 단장에게 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남북관계와 한인사회의 변화로 민단의 역할도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정의용의원)
“한국 정부의 지원(약 80억원)이 2003년을 계기로 감소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박성범 의원)
“2003년 국감에서 정부지원을 매년 10%씩 삭감토록 권고했는데, 민단은 준비가 됐는가.”(김덕룡 의원)
청문회라도 열린 듯 추궁이 계속되자 김 단장을 입술을 깨물었다.
“과거 정부 지원이 없었을 때도 민단을 운영해왔습니다. 지원이 중단된다면 우리는 빚을 지더라도 해나갈 것입니다.”
한국민단은 역사의 흐름과 함께 부침을 거듭했다. 한때는 이국 땅에서 조총련에 맞서 경쟁하는 냉전의 첨병이었다. 얼마 전까지도 민단에 소속된 동포기업인은 한국 정부에 갖가지 명목으로 적잖은 돈을 기부해왔다. 하지만 요즘처럼 고국으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적은 없었다. 김 단장의 표정에 비장함이 서렸다.
“우리는 해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변해서 필요 없어졌으니, 자립해서 가라는 뜻이라면 섭섭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날의 풍경은 내년이면 창단 60주년을 맞는 민단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밖으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민단-조총련의 대결 구도가 급속히 붕괴돼 새로운 존재가치를 찾아야 할 처지다. 안으로는 매년 1만 명이 넘는 동포가 일본에 귀화하고 있고 10명에 8~9명의 동포가 일본인 배우자를 찾고 있는 등 조직 이탈의 경향이 심화하고 있다.
국적의식이 희박한 자유분방한 동포 3, 4세가 주류로 부상하는 것도 민단의 역할 변화를 강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사면초가의 처지인데도 고국 정부와 정치권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때문에 민단은 동포사회의 화합을 강조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8월14일 교토에서 민단과 조총련이 공동으로 광복 60주년 행사를 펼친 것이나, 2월 귀화동포나 조총련도 민단에 가입할 수 있도록 규약을 개정한 것은 상징적이면서도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또 재일동포의 역사를 집대성한 역사사료관을 개설(11월)해 동포들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확립하려는 작업도 준비하고 있다. 최근 뉴커머가 결성한 재일한인연합회(한인회)와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모습 역시 새로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민단은 그러나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민단 관계자들은 “최근 민단에 대한 한국 정부와 정치가들의 미묘한 태도변화는 재일동포의 특수한 역사를 무시하는 측면도 있다”고 반발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귀화자나 조총련 동포를 모두 받아들이라는 것은 시기상조다” “조국에 대한 민단의 헌신적인 기여에 대해 지금 정권과 젊은 정치가들이 평가하지 않는 것 같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귀화동포에 대한 처우에 대해서 민단 내에서 아직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간부는 “‘재일동포는 머지 않아 일본에 동화될 운명’(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이라며 동포들의 귀화 및 동화를 장려했던 예전 한국 정부의 잘못된 입장이 다시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간부는 “재일동포의 참정권을 확보하고, 역사인식과 영토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등 아직도 중요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강조했다.
민단 주변에서도 마치 민단의 정통성이 상실된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나종일 주일 한국대사는 “민단이 조금 어렵다고 해서 무조건 비판해 사기를 저하시켜서는 곤란하다”며 “민단은 한민족의 화해와 교류, 협력과 통일을 이루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소중한 동포 단체”라고 강조했다.
폐쇄적인 일본 사회에서 그나마 동포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정부의 뒷받침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소수민족들의 정치력과 영향력도 그 배후에는 본국의 정부가 작용하고 있다. 일본에 정통한 전문가들일수록 “냉전이 종식됐다고 최대 동포조직을 구시대의 유물 취급하는 것이야 말로 미래를 보지 못하는 정책”이라고 한탄한다.
그러나 문제는 커다란 파도처럼 도도히 밀려오는 변화의 흐름에 민단이 정말로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상당수 재일동포들도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동포는 “젊은 세대들은 지금의 민단을 1세들의 친목단체로 여기고 있다”며 “한국말과 민족교육을 무시했던 민단은 지금 그 대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포는 “민단은 일본에 실존하는 귀화동포를 계속해서 무시하고 배제하고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재일동포의 현실에 맞는 동포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김철훈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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