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폭피해자들 “한일 정상 참배 뜻깊어…배상도 논의를”

김가윤 2023. 5. 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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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히로시마에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 참배하기로 하자, 국내 원폭피해자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원정부 협회 전 서울지부장은 "한국 동포 10만명이 죽거나 다쳤다. 왜 협정에서 (원폭피해자 문제가) 빠졌느냐고 일본하고 싸워왔는데도 아직 해결된 건 없다"며 "비석(위령비)이 돌 하나에 불과할지라도 양국 정상이 참배하는 것엔 깊은 의미가 있다. 우리가 싸워왔던 문제에 관해 관심을 끌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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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모습. 히로시마/김소연 특파원

일본 히로시마 탄광에 강제노역을 갔던 박종태(64)씨의 아버지는 1945년 8월6일 원폭 피해를 당했다. 집은 원폭 투하 지점에서 4㎞ 떨어져 있었지만 섬광이 눈을 찌르고 창문이 깨졌다. 아버지는 평생을 피부 발진에 시달렸다. 박씨의 누나는 아버지가 고국에 돌아온 뒤 태어났는데도 후유증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뇌로 향하는 동맥 하나가 없었다. 병원에선 원폭 피해 후유증이라고 진단했다. 

원폭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에 피해 보상을 요구했지만 “65년 한일협정으로 보상은 끝났다”는 대답만 들었다. 1998년 10월에서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원폭피해자에게 지급하는 원호 수당을 일본 밖에 거주한다고 해서 못 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오사카지법에 소송을 내 승소했다. 이 과정에 한국 정부는 없었다. 원폭피해자 후손들은 여전히 지원대상에서 제외돼있다. 박씨는 “후손들도 원폭피해 증상이 심각하다”며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 정부도 무관심하다”고 토로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히로시마에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 참배하기로 하자, 국내 원폭피해자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들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나 구체적인 배상안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부의 관심도 촉구했다. 국내 원폭피해자들은 윤 대통령의 참배 일정에 맞춰 히로시마에 방문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8일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협회장은 <한겨레>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일본 총리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참배한다는 것 자체로 참 고맙고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오는 19∼21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에 평화기념공원 내에 있는 위령비를 찾아 헌화·참배하면서 고개를 숙일 예정이다. 한국 대통령이 위령비를 찾는 것도, 한일 정상이 함께 참배하는 것도 역사상 처음이다. 

국내 원폭피해자들은 이번 참배가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존재를 되새겨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나 구체적인 배상안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폭피해자 피해배상·보상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1965년 맺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제외돼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와 관련 원폭피해자들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패소했다.  협회에 등록된 원폭피해자들은 지난해 말 기준 1877명만 남았다. 대부분 80대 이상의 고령이다. 협회는 한국인 10만여명이 원폭피해를 당했고, 이 가운데 4만3000여명이 한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추산한다. 그러나 실제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피해자로 등록한 사람은 4700여명으로, 피해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원정부 협회 전 서울지부장은 “한국 동포 10만명이 죽거나 다쳤다. 왜 협정에서 (원폭피해자 문제가) 빠졌느냐고 일본하고 싸워왔는데도 아직 해결된 건 없다”며 “비석(위령비)이 돌 하나에 불과할지라도 양국 정상이 참배하는 것엔 깊은 의미가 있다. 우리가 싸워왔던 문제에 관해 관심을 끌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성득찬 협회 경남지부장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게 (과거사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참배 후 배상·보상에 대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차무남 협회 대경지부 사무국장은 “원폭피해자는 지금까지 버려졌다 싶을 정도로 소외돼있었다. 일본의 원폭피해 보상금도 개인이 소송해서 받고 있었다”면서 “한국 정부 차원에서도 관심을 갖고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폭피해가 2·3세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하는 후손들도 있었다. 이태재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 회장은 “대를 이어 고통 속에 사는 2·3세들에 대해 한국 정부는 실태조사만 하고 있다”며 “한일 정상이 위령비에 방문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2·3세를 포함해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분명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보건사회연구>에 실린 ‘원폭피해자 2세의 건강 수준에 대한 연구’(이나경) 논문을 보면, 원폭피해자 2세들은 남녀 모두 방사선에 민감하다고 알려진 갑상선 질환 유병률이 상당히 높았고 아토피 피부염, 천식과 같은 알러지 질환자의 비율도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크게 높았다. 

국내 원폭피해자들은 윤 대통령의 참배 일정에 맞춰 히로시마에 방문할 의사를 밝혔다. 정원술 회장은 “일본에 있는 교포들과 면담을 한다는데 한국 원폭피해자 대표들도 참여시켜준다면 더없이 고마운 일“이라며 “갈 의향이 있다고 전달한 상태지만 (정부가) 일정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별도로 가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일”이라고 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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