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탐·인]전통천연염색작가 한광석 장인(上)

김옥조 2023. 5. 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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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이며’ 살아온 반세기 쪽빛 인생
삶고 찌고 썩혀 시간과 빚은 색감 뽑아내
전통염색 모든 과정 사람 손으로 직접 작업
염료 얻는 쉬운 방법은 직접 만드는 것
토종 모시·삼베·무명·명주 이젠 다 사라져

KBC는 기획시리즈로 [예·탐·인](예술을 탐한 인생)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특집기사는 동시대 예술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간과 삶, 세상의 이야기를 역사와 예술의 관점에서 따라 갑니다. 평생 예술을 탐닉하며 살아온 그들의 눈과 입, 손짓과 발짓으로 표현된 작품세계를 통해 세상과 인생을 들여다보는 창문을 열어드리게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소통을 기대합니다.<편집자 주>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 ‘전통천연염색작업’을 해온 한광석 장인이 우리 땅에서 나온 염료와 천을 사용하여 뽑아낸 이 세상에 하나뿐인 색감의 전통염색작품이 달항아리와 조화를 이뤄 전시되고 있다.

◇전라도 살며 ‘천연색감’ 뽑아낸 장인
▲한광석 전통천연염색장인은 “전통천연염색은 쪽풀을 삶고 찌고 띄우고 썩혀서 긴 시간 속에 담궈 빚어내는 색이다”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색’(色, color)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우리 땅에서 기른 쪽풀을 삶고 찌고 띄우고 썩혀서 긴 시간 속에 담궈 내 사람 손으로 빚어내는 색입니다. ‘아름답다’는 말로 다 표현 수 없는 감탄에 마지않는 색감이 우러나는 것입니다.

그 주인공은 전라도를 지키며 전라도의 색을 뽑아내온 전통천연염색작가 한광석 장인(66)입니다. 한광석 장인은 쪽물 들이는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젊어서 한참 일을 벌인 때는 학고재 등 국내 최고의 화랑에서 전시도 여러 차례 개최하여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유명 패션 디자이너에게 물들인 조선 무명으로 고급 옷을 만들게 하여 신라 호텔, 인터콘티넨탈호텔. 하얏트호텔, 힐튼호텔 등에서 보란 듯이 쇼도 열었습니다.

이 때 양장과 한복이 어우러지는 패션쇼를 열어 전통염색 천을 사용한 옷의 값을 유명 명품 옷값에 버금가도록 만들어 버린 자칭 ‘원흉’이기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광화문 문화 행사 때는 오방색 큰 복주머니를 만들어 선보였습니다. 그 이후 지역 사람들로부터 횡액을 당할 뻔도 했다고 털어놓습니다.

올 봄에는 광주의 이강선생의 초상화를 전통 수묵 초상화의 최고 화가인 김호석화백에게 그리게 하여 광주에서 전시를 열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처럼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일, 가히 엄두도 못내는 일, 나만이 하는 전통과 지역문화를 살리고 이끌어가는 일에 집중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스스로 돈 안되는 일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고도 말합니다.

1993년 전국 처음으로 서울 학고재갤러리에서 ‘천연염색 전시회’를 열어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색에 대한 이해와 자신감이 번져 전국적으로 천연염색 붐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현재 전통천연염색작가이면서 (사)남도전통문화연구소이사장을 맡아 탁월한 안목으로 문화사업 기획도 해오고 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전통천연염색’ 작가관과 전통문화·지역문화에 대한 일문일답을 들어 봅니다.

◇시간 속에서 우려낸 하나 뿐인 ‘색’

▲봄에 쪽씨를 심어 7~8월 여름까지 키워 배어낸 쪽풀을 항아리에 담아 쪽색 염료를 만든다. 사진은 쪽풀을 수확하는 작업 광경.

▲‘천연염색’이란 무엇인가?

=자연에서 얻은 것으로 물을 들이는 것을 가리키는데, 흔히 식물 재료를 말하지만 요즘에는 뜻을 넓게 보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전해왔던 ‘물들이는 법’을 해왔기에 전통염색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전통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애매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하는 것들을 들여와서 하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이름에 대해 애매함을 비껴가려는 생각으로 천연 이라 유행어를 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천연이라는 말을 쓰면서 순수 하다는 뜻과 다른 것을 포함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쉽지 않은 천연염색작업을 하게 되었나?

=20대 중반부터 시작했다. 1982년께 고향 벌교의 논에 쪽 씨앗을 심었습니다.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닙니다. 실패를 반복하다가 1993년에 나만의 ‘쪽색’을 뽑아냈습니다.

염색을 한 계기는 농담처럼 하는 얘기로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어서 선택 했다고 얘기를 합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밥벌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 선택된 것입니다.

◇나만의 색 얻으려 수없이 반복 작업

▲천연염색은 쪽풀을 삶고 찌고 띄우고 썩히면서 길고 반복되는 시간을 통과하여 쪽물을 만들어내는 자연과 사람의 합작이다.

▲‘전통염색’에 대한 부담은 없는가?

=전통이란 말에 묶이면서 특수한 직업으로 보여졌습니다. 또 그것이 싫지 않아서 언론이 말하는 대로 방치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통에 더 충실하기 위해 전통을 깊이 공부했습니다. 여러 가지 분야를 더 넓게 더듬거렸던 것 같습니다.

▲천연염색 방법이 따로 있는가?

=‘물들이는 법’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하고 있는 것이 모두 다 방법입니다.

화학염색 공장처럼 위험하거나 위해하지는 않지만 도시인들이 보기에는 신기할 수도 있고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시골에서 살면서 만들어 내는 것들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도시인들은 시골 생활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단지 신기하게 보일 뿐입니다.
천연염색은 밥 하고 국 끓이듯 삶고 찌고 띄우고 썩히면서 시간을 통과하여 만들어지는 겁니다.

▲작업 과정을 설명해 달라.

=봄에 씨앗을 뿌리면 7~8월경에 쪽풀이 무성하게 자라납니다. 꽃대가 올라오기 직전 베어서 큰 옹기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은 뒤 돌멩이로 눌러 놓으면 썩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두었다가 썩은 잎과 줄기를 걷어내면 푸른색 계통의 물만 남습니다.

여기에 석회를 넣어 한참 놔두면 석회와 색소는 바닥에 가라앉게 됩니다. 이 물에 콩대, 메밀대, 찰볏짚 등을 태워 만든 재로 4~5배 희석해 섞습니다. 이 과정을 거쳐 일주일에서 한 달가량 실온에 보관하면 진한 쪽빛깔이 우러나옵니다.

여기에 흰색 무명베를 염료 속에 담궜다 말리기를 반복합니다. 내가 원하는 색깔을 얻기 위해서는 수없는 반복작업이 필수적입니다.

◇“더딘 과정은 전통염색에 대한 예의”

▲한광석 장인은 쪽풀 작업이 조금 힘이 더 들고 땀을 더 흘리더라도 그렇게 일을 반복해 가는 것이 전통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며 자신만의 작업 공정을 거친다.

▲작업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쪽물을 예로 들자면 요새는 다른 나라에서 중간쯤 만들어진 것을 사와서 현대화되고 계량화되고 화학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는 곳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도 봄에 논을 갈아 씨 뿌리고 키워서 뜨거운 여름에 만들어 물을 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답답하고 미련하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그런 일을 반복해 가는 것이 전통에 대한 나만의 예의라 생각합니다. 조금 힘이 더 들고 땀을 더 흘리더라도 그렇게 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야 이 일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전통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까요. 이러니까 사람들이 저에게 답답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천연염색의 가장 어려운 점은?

=일을 이렇게 답답하게 하고 있다는 건 ‘모든 과정이 사람 손으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문화라는 말의 속뜻이 만드는 사람은 모두 등이 휘고 누리는 사람은 휘황찬란한 것’이지요.

◇전라도 ‘무명’ 전 세계 물건 중 최고

▲천연염색은 모든 과정이 사람 손으로 이뤄지고 수없이 반복되는 작업과정을 거친다. 사진은 천연색감을 찾기 위해 염색한 천을 자연광과 바람에 말리고 있다.

▲재료를 구하고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물들이는 재료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이 직접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야 재료의 성질은 알 수 있고 그래야 어떻게 쓸지 가늠하고 풀어 나가는 것입니다.

재료의 성질을 알 수 없으면 잘못 되기가 쉽고 그러면 매번 잘못 되어서 제대로 해나가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이것도 일의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나 그렇게 하는 것이지 모르는 사람들은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염색천은 어떻게 구하나?

▲염색한 천을 건조대에 내걸어 말리는 풍경 사진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작품이나 다름이 없다.
=제가 물들이는데 쓰는 천들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낸 흔히들 말하는 전통섬유입니다.

우선 모시는 한산 모시를 쓰고, 삼베는 예전에는 보성 복내, 순천 주암, 화순 동복 등 전남지역에도 많이 짜서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요새는 다 없어졌습니다.

경남 남해, 경북 안동에서 사다가 쓰고 있습니다. 또 누에를 키워서 던 명주(실크)는 경상도 상주 함창이 많이 나는 곳이었지만 시방은 거의 짜지 않고 중국에서 짠 명주뿐입니다.

제가 일을 시작하면서 부터 써왔던 무명도 이제는 다 없어져서 볼 수가 없습니다. 전라도 사람들이 말하는 밍베(무명)은 전 세계에서 조선에서 만든 것이 최고의 물건이란 걸 다른 나라 사람들은 다 아는데 우리만 모르고 살았습니다.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베틀 위에서 짜 만들었던 그 고운 무명을 이제는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전통섬유의 지역적 특성은?

=무명을 말하자면 우리는 전라도 사람이라 이쪽에서 만든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 할지 모르겠으나 예부터 경상북도 지역에서 짠 무명을 경목이라 부르며 조선에서 가장 좋은 무명으로 여겼습니다.

또 강원도 지역에서 칡넝쿨 섬유와 삼실을 섞어서 짠 갈포라는 베가 있었지만 시방은 볼 수가 없습니다.
충청도 지역에서 명주실과 모시실을 섞어서 짠 춘포라는 초여름에 옷 해 입는 귀한 베가 있었는데 인자는 아예 볼 수가 없습니다.

제가 춘포 한 필을 오래 동안 가지고 있었는데 작년 시한(겨울)에 돈이 궁해서 팔아먹고 없습니다.

※ 이 기사는 <하>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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