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반도체 기술인재 육성, 산업 맞춤형으로 고도화

이준희 2023. 5. 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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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건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직무대리

반도체 인력확보가 국가의 미래 생존 열쇠로 떠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업계가 극심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가운데 미국, 독일, 대만, 일본 등 반도체 산업 주요국은 전략적으로 반도체 인력확보를 위해 힘쓰고 있다.

최근 미국이 내세운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살펴보면, 반도체 인력확보를 위한 미국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으려는 반도체 기업은 반드시 ‘시설인력’ ‘건설인력’ 등 반도체 인력을 키워야 한다. 기업이 지역 훈련기관이나 고등교육기관과 전략적 파트너를 맺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장기적인 고숙련 인력확보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일본과 대만도 외국 인재에게 문을 열어 부족한 인력을 충당하며 사람 구하기에 한마음이다.

반도체 굴기를 기원하는 중국도 일찍이 자본과 기술에 인력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추기 위해 반도체 기술인재 양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정부 주도의 반도체 인력양성 특성화 대학 12곳에서 ‘고급인재’와 ‘실무인재’ 투트랙으로 반도체 전공자를 양성하고 있다. 이를 위해 26년 만에 직업교육법을 개정해 학교-기업 산업수요 맞춤 공통 커리큘럼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들 반도체 학과는 최상위인 1급 중점학과로 선정하고 지원을 대폭 강화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연이은 국내 반도체 업계의 실적 악화로, 기업이 직접 인재 확보와 육성에 돈을 쓸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반도체 분야의 질 높은 인재를 양성하는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에 정부에서도 2021년 5월, ‘K-반도체 전략’ 수립을 필두로, 2022년 7월,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2026년까지 디지털 인재 100만명, 반도체 전문인력 15만명을 양성하는 계획이 포함된다.

지난 3월 정부는 비상경제민생회의를 통해 300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추진을 발표했다. 기존 150개 이상의 국내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판교 팹리스 등과 연계해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세계 최대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반도체 관련 이차전지, 로봇 등 첨단산업의 기업투자와 세제 지원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국가발전의 핵심 성장엔진이자 안보전략자산으로 대우하고 있다.

정부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계획

같은 시기 ‘K-칩스법’도 공포됐다. 국내 이차전지·백신·디스플레이·수소 등 국가전략기술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지원한다. 산업 생태계를 확장해 좋은 일자리를 더 만들겠다는 취지로 이 역시 반도체 분야 지원이 핵심이다.

정책 기반이 날로 두터워지는 데 반해 인력양성 현장의 목소리는 아쉬움이 짙다. 산업 맞춤형 반도체 인력양성을 위해서는 수많은 반도체 공정별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교육시설과 장비가 필수적이다. 반도체는 설계부터 패키징에 이르기까지 300가지 이상 재료와 1000개 이상 공정 단계로 구성된다. 다른 분야와 달리 설계, 제조, 부품, 검사 등 가치사슬에 따라 유기적 기술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전체 통합공정 시설을 기반으로 실무기술과 이론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반도체 교육 현장은 클린룸 등 반도체 교육 통합시설과 장비의 부족으로 실무능력 배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도체 교육 전용 시설과 장비가 글로벌 경쟁 수준에서 대부분 고가이다 보니 시설과 공간을 확보하여 투자하기 어렵다. 가까스로 일부 장비를 구매했다 하더라고 유지·보수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수준별 교육 운영의 한계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최근에는 대학과 전문대학 계약학과 형태로 반도체학과 신설이 확대되고 있으나, 기업 인턴제도를 통한 현장 실습 외에는 이론 중심의 교육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한계다. 결국, 반도체 산업에서 바라는 ‘실무 공정을 이해하고 바로 일할 수 있는’ 인재상과 요구역량 수준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우수한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산업현장에 맞춤화된 가치사슬별 교육과 수준별 교육을 병행할 수 있는 인프라와 교육체계 선행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이유다. 반도체 기술 인력 고도화를 위해 국가 주도의 선도적 교육체계 마련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한국폴리텍대학은 변화하는 산업환경과 정부정책에 맞춰 반도체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폴리텍반도체대학(가칭) 설립을 추진 중이다. 지난 반세기,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뿌리 기간산업과 신기술 분야를 지원하는 정부 정책에 발맞춰 산업현장 전문인력을 양성해온 공공 직업교육기관이 또 한 번 그 책무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폴리텍반도체대학(가칭)은 국내 최대 파운드리 통합실습관을 구축하고 설계, 소재, 전·후공정, 장비 분야를 아우르는 반도체 산업 현장 실무중심 교육을 제공한다. 기존의 폴리텍 강점인 실무경력 교원을 중심으로 기업과 연계한 현장중심형 과정을 운영하고, 2년제 학위과정부터 4년제 학사 이상 수준의 반도체 가치사슬에 따른 수준·직무별 다양한 기술인재를 양성해 기술교육을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취약계층 우선선발 제도 등을 통해 사회 안전망과 계층이동 사다리로서 역할도 수행할 예정이다.

반도체 가치사슬(Value Chain)과 8대 공정

디지털 기술 발전의 슈퍼사이클은 점차 가속화 되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의 파고 속에서도 늘 반도체는 날로 그 위상이 높아가고 있다. 격화되는 국제 정세와 기정학(技政學)적 변동 속에서 반도체는 이제 쌀보다 총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반도체대학 설립이라는 큰 걸음을 앞두고 기대감만큼 조바심도 크다. 한발 먼저 반도체 인력양성에 전력으로 뛰어든 다른 국가들의 약진이 매서운데다, 대내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뿐만 아니라 교육기관의 관심과 노력, 적극적인 실행이 요구된다.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지금은 반도체에 모두가 진심을 보여야 할 때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이심전심을 기대한다.

임춘건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직무대리

<필자>임춘건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직무대리는 경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에 국회의원 보좌관 활동을 시작으로, 20여 년간 국회에서 근무했으며,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안전행정부 장관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이후 두원공과대학교 보건의료행정과 교수로 활동했다.

임 이사장직무대리는 작년 12월 폴리텍 기획훈련이사로 취임해,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신산업 인력 육성을 위해 학과 신설, 개편 등 교육훈련 품질 향상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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