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전력 수요 몰리자 전력망 투자비 2년 만에 29조→56조원
한국전력이 2036년까지 송·변전 설비에 56조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하기로 했다. 반도체 등 전력수요가 많은 산업 투자가 수도권에 편중되자 대규모 송전선로 투자비가 2년 전보다 2배가량 늘어났다. 전력 생산(지방)과 수요(수도권)의 불균형이 더 심화된 탓이다. 다만, 한전이 막대한 적자난에 허덕이고 있는 만큼 투자가 제때 이뤄질지에 대한 우려도 크다.
한전은 2022~36년 15년간의 전력수급 전망과 송·변전 설비 확충 기준을 마련한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을 8일 발표했다. 이번 계획에는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전력 수급 전망을 바탕으로 국내 장기 송·변전 설비에 대한 세부 청사진이 담겼다.
한전은 15년간 국내 송·변전 설비 투자에 필요한 비용을 56조5000억원으로 전망했다. 2021년 9월 발표한 제9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29조3000억원)보다 약 26조원 늘어난 규모다. 이는 정부가 데이터센터, 전기차 보급 확대 등을 이유로 이전보다 전력수요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데 따른 영향이 크다. 전력수요가 늘어날수록 그에 따른 설비 투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전기 먹는 하마’인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의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투자 비용이 대폭 늘었다. 한전은 삼성 평택캠퍼스·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1조원, 수도권 3기 신도시에는 1조1000억원의 신규 송·변전 투자비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전 관계자는 “전력수요의 수도권 집중으로 2036년까지 수도권에서만 최대전력이 약 8GW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전력 수급 불균형에 따라 대규모 송전선로 건설로 투자비 전망이 많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원자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가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원전은 계속 운전과 신규원전 건설로 2년 전 발표한 계획 대비 약 68%,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약 39% 각각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 이들 발전시설이 주로 지방에 있는 만큼 전력수요가 몰린 수도권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전력망 투자가 늘어나야 한다.
전력망 투자가 늦어지면 블랙아웃(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대정전은 대개 과도한 전력 수요가 몰려서 발생하지만, 반대로 전력 공급이 수요를 큰 폭으로 웃돌아도 불안정성 탓에 일어날 수 있다. 최근 전라도와 경상도에 태양광 설비와 원전이 늘어나 전력 생산은 확대됐지만, 기업 휴무 등으로 수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자 공급과잉으로 정부는 대정전 우려에 올 봄 들어 원전 출력을 강제로 낮추고 있다.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 한전은 ‘전력 고속도로’ 만들기로 했다. 초고압 직류송전(HVDC) 기간망을 건설해 태양과 원전이 모여 있어 전력이 남아도는 서해·호남지역과 전력이 부족한 수도권을 잇겠다는 방안이다.
다만, 막대한 비용이 들어 실제 공사에는 차질도 예상된다. 지난해 3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적자로 한전의 송배전망 투자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한전은 2019년에 송·배전 설비에 6231억원을 투자했지만 지난해에는 6013억원에 그쳤다.
특히, 정부가 올해 3월에 발표한 2042년까지 계획한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관련 송·변전 설비투자비까지 반영할 경우, 투자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한전은 현재 삼성전자와 설비 계획에 대해 논의 중이기 때문에 추후에 관련 설비 투자계획을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근본적인 해법으로 전문가들은 수도권 중심의 전력 공급 계획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막대한 비용이 들고 환경 파괴 문제로 인해 수도권으로 전력을 보내는 것은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며 “수도권에서 벗어나 지역 간 서로 전력을 원활하게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망 구축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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