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부수고 만들고…, 현 NBA는 혁명의 시대?
‘최근 농구는 과거와 다르다’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요즘 흔하게 나오는 얘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농구의 색깔은 각 시대별로 달랐지만 현재는 변화의 폭이 훨씬 큰 편이다. 흐름은 물론 트랜드 자체가 달라졌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뭐가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많은 부분이 거론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이른바 ‘포지션 파괴’다.
과거에는 각 포지션별로 역할이 정해져있었고 거기에 맞는 플레이를 충실히 수행하는 선수가 농구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인트가드는 안정감있는 리딩에 빼어난 패스센스, 슈팅가드는 준수한 득점 능력과 보조리딩이 요구되었고 스몰포워드는 윙맨으로서 볼없는 움직임에 더해 슈팅력이 좋아야했다. 센터는 무조건 포스트 장악력이 1순위였으며 파워포워드는 그러한 센터를 도와 궂은 일에 능한 살림꾼 역할이 주임무였다.
때문에 재능이나 플레이스타일에 관계없이 정해진 틀에 해당 선수를 맞추려는 시도가 잦았다. 이는 얼마 전까지만해도 계속됐다. 전태풍은 개인기에 의한 득점력에 강점이 있는 듀얼가드였지만 퓨어포인트가드처럼 자신의 템포를 죽이더라도 동료들을 두루 살피는 플레이를 강요받았다.
해외에서 가드, 스윙맨으로 뛰었던 이동준과 김민수는 단지 크다는 이유만으로 빅맨으로 전향해야했다. 그들이 당초 기대치만큼 대성하지 못한 배경에는 포스트 인근으로 주영역을 제한당한채 몸싸움을 하는 등 어울리지않는 옷을 입은 이유도 크다는 분석이다. 중앙대시절 기동성과 넓은 활동량이 주무기였던 파워포워드 송영진은 프로에 입단한 이후 파워를 늘린다는 명목하에 증량을 강요당하며 운동능력을 상당부분 상실하고 말았다.
최근에는 많이 달라졌다.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스페이싱 농구’가 대세인 시대인지라 구태여 특정 포지션에 선수를 억지로 끼워넣으려 하지않는다. 2m안팎의 가드, 스윙맨들의 숫자가 부쩍 늘어난 것을 비롯 예전같으면 2~3번에서 뛰었을 선수들이 포인트가드를 보고 있다. 신장보다는 적성을 보고 포지션을 정하고, 정해진 틀보다는 팀 상황에서 맞춰 역할이 부여된다.
이는 한창 치열하게 진행중인 NBA 플레이오프만 봐도 알 수 있다. 전세계 최고의 리그답게 NBA는 트랜드의 변화가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곳 중 하나다. 이는 ‘공간’이라는 측면에서보면 더욱 쉽게 알 수 있다.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겠지만 농구 역시 공간의 싸움이다. 정해진 공간 속에서 누가더 자신의 영역으로 흐름을 끌어오고 준비한바를 잘 펼칠 수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매운맛 커리' 스테판 커리(35‧188cm)가 '혁명가'로 불리는 이유는 공간에 큰 변화를 일으키며 미스매치의 개념을 바꾼 이유가 크다. 지금도 큰 차이는 없겠지만 농구는 골대에서 가까우면 무조건 유리하다. 때문에 3점슛은 훌륭한 공격옵션이기는하지만 확률로 보면 높이농구보다 효율적이라고 볼 수 없다.
커리는 그러한 상식을 깨트렸다. 미친듯한 3점슛을 통해 상대팀의 수비시스템을 깨뜨렸고 자신들 쪽으로 유리하게 공간을 넓혔다. 넓어진 공간은 돌파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됐고 거기에 다시 상대방이 적응한다싶으면 외곽 폭격을 반복했다. 높이에서 우위를 가진 선수가 작은 선수를 미스미치로 공략하던 것을 역으로 이용해 스피드나 외곽슛 등으로 반대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상대가 이에 대응하거나 적응할새도 없이 스위치 등 다양한 팀 전략으로 그러한 흐름을 반복시키며 경기자체를 지배했다. 이는 그동안의 농구상식을 깨트리는 것이었으며 그로인해 찰스 바클리 등 상당수 과거 레전드들은 커리와 골든스테이트 농구를 평가절하하거나 인정하려들지않았다.
커리의 포지션은 포인트가드다. 리딩, 패싱능력 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주주 역할은 득점리더다. 득점 그것도 슈터 위주의 플레이로 게임을 이끌어가는 1번은 그간의 농구 역사에서 찾아보기 쉽지않다. 커리와 함께 골든스테이트 왕조를 만들어낸 파워포워드 '데이데이(Day Day)' 드레이먼드 그린(33‧198cm) 역시 그간 보기힘들었던 유형의 4번이다.
수비 등 궂은일 위주로 움직이며 살림꾼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파워포워드와 크게 다르지않지만 공격 부분에 있어서 차별성이 크다. 그린의 공격력은 타팀 주전급 4번과 비교해서 떨어지는 편이다. 우직하게 포스트업을 치거나 골밑에서 우겨넣기를 잘하는 것도 그렇다고 최근 대세에 맞게 슈팅력이 빼어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린은 패싱센스라는 자신만의 무기로 부족한 공격력을 120%이상 커버한다. 적어도 골든스테이트 시스템하에서는 그렇다. 단순히 4번치고 잘하는 것이 아닌 ‘포인트포워드’라고 불릴만큼 넓은시야와 패싱능력을 자랑한다. 그린이 있기에 커리는 리딩부담을 덜고 공격적으로 에이스롤에 집중할 수 있는 부분도 크다.
현재 골든스테이트와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격돌중인 LA 레이커스 '킹' 르브론 제임스(38‧206cm)의 포지션은 스몰포워드다. 하지만 사실 르브론에게 포지션은 큰 의미가 없다. 포인트가드처럼 팀을 지휘하고 슈팅가드, 스몰포워드처럼 내외곽을 오가며 득점을 올리며 어지간한 파워포워드 이상가는 파워로 상대 수비진을 때려부수기 때문이다.
1~4번중 아무데나 르브론의 이름을 가져다놓아도 납득이 될 정도다. 커리가 공간을 최대치로 넓게쓰는 농구를 하고있다면 르브론은 기존 공간 혹은 새로이 만들어진 공간 등 어떤 것도 상관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가장 잘쓰는 슈퍼플레이어라고보면 맞다. 그에게 공간이란 자신이 늘 다니던 산책로처럼 편안하고 익숙한 곳일 뿐이다.
덴버 너기츠의 주전센터이자 간판스타인 ‘조커’ 니콜라 요키치(28‧211cm)는 커리나 르브론처럼 화려하거나 멋들어진 농구는 펼치지못한다. '아재농구'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인은 열심히 뛰고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왠지 설렁설렁 플레이를 하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효율성높은 색깔농구를 자신에게 입혔고 현재 리그 최고의 센터로 군림하고 있다.
기존 유니크 플레이어들이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했다면 요키치는 아예 새로이 만들어내고있다는 평가를 듣고있는 중이다. 주전급 센터로서 평균치에도 미치지못하는 기동력과 운동능력을 가지고있지만 다른 능력치들이 이를 덮고도 남을 정도다. 특히 게임을 읽고 보는 센스와 시야는 '컨트롤 타워'라는 극찬을 받고있으며 패싱센스 역시 리그 최상위급 퓨어포인트가드 이상으로 평가받는다.
자신은 많이 움직이지않으면서도 동료들을 많이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선수다. 떨어지면 슛, 붙으면 포스트업으로 득점을 만들어내며 더블팀이라도 들어올라치면 기가막히게 빈곳으로 어시스트를 뿌려버린다. 3점슛 포인트가드 커리와 더불어 역대로 이런 스타일의 센터가 존재했나싶을 정도의 플레이어다.
역대급 슈터 유형의 포인트가드, 사실상 포지션 의미가 없는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 수비와 리딩으로 게임의 주역이 되는 파워포워드에 뒷선의 야전사령관까지…, 포지션 파괴는 물론 기존 공간활용의 상식까지 깨트려버리고있는 다양한 플레이어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도 이번 플레이오프를 즐기는 또다른 재미가 될 전망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 사진_AP/연합뉴스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