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권에 이런 사람 없습니다…“과거 탓” 대통령의 말
10개 주제로 분석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⑵
품위 없는 말, 남 탓, 물타기
체리따봉 ‘날리면’…인도는 무슨 죄? 대통령의 말 ④―품위 없는 말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
2022년 7월26일 윤석열 대통령이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여기에 `체리따봉' 이모티콘까지 덧붙였다.
그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준석 당시 당대표에게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6개월’(7월8일)이라는 징계를 내린 데 대한 윤 대통령의 속마음이 여과 없이 드러난 일이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반대 세력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논란이 본격화됐다. 이 일에, ‘5살 입학’ 추진 이슈까지 겹쳐 윤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은 24%(8월 첫째 주 한국갤럽 여론조사)까지 곤두박질 치는 등 여론은 ‘윤 대통령 입’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준석 당시 대표는 같은 해 8월14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겪는 과정 중에서 (윤 대통령 쪽에서)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누차 저를 ‘그 새끼’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입의 격조가 문제가 된 건 수도 없이 많다. 대선 후보 시절엔 2021년 9월13일 안동대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손발로 노동해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인도도 안 하고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적절한 노동관은 물론 인도와 아프리카에 사는 시민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언제건 협력 대상이 될 수 있는 상대 당에 대한 비난도 수위를 넘기는 일이 잦았다. 대표적으로 2022년 2월28일 대선 유세 도중 더불어민주당의 정치개혁안에 대해 “국민을 얼마나 가재·게·붕어, ‘가붕게’로 아느냐. 대선을 열흘 남기고 뭔 놈의 정치개혁이냐”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사과’는 개에게 줬으니 대통령의 말 ⑤—남 탓, 부하 탓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 ―2022년 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의 대응을 강하게 질타하며 ‘격노’했다. 경찰이 정부 기조인 ‘마약과의 전쟁’에 맞춰 경찰력을 질서유지 대신 마약 단속에 집중한 사실, 용산구청 당직 근무자들이 참사 당일 전단 제거에 투입된 사실 등이 밝혀졌지만, 참사 희생자들이 요구한 공식사과는 없었다.
2023년 3월6일 한 주 최대 노동시간을 현행 ‘52시간’에서 ‘69시간’으로 늘리는 등의 방안을 고용노동부가 추진하자 20∼30대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센 데 대한 윤 대통령의 반응도 비슷한 패턴이다. ‘(윤 대통령이) 왜 젊은 사람들 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느냐며 격노했다’(대통령실 관계자)고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제동을 걸면서 혼란이 빚어졌다. 애초 윤 대통령은 “주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2021년 7월19일 인터뷰)고 발언했다.
2022년 7월2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만 5살 입학’을 보고한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이 사퇴한 것도 맥락이 같다. 업무보고 당시 윤 대통령은 ‘빠르게 스타트하라’고 지시했지만, 이후 교육계·학부모 반발이 거세고 국정운영 지지도가 24%(한국갤럽)로 급락하자 ‘장관 경질’ 카드로 논란을 매듭지었다. 윤 대통령은 2022 년 7월5일 ‘출근길 약식회견’에서 박순애 전 장관 검증 부실 지적에 대해 “그럼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고 대답하며 두둔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전 정권에 이런 사람 없습니다 대통령의 말―⑥물타기
“그럼 전(前)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2022년 7월5일 출근길에 장관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 관련 기자 질문에 대한 반문
이게 다 전 정부 탓일까.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을 둘러싼 비판 여론을 두고 “과거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 이제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2023년 3월21일)고 했지만, 정작 자신은 대통령 취임 1년 내내 문재인 정부라는 ‘과거’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전 정부의 과오를 묻거나 정책 방향 차이를 두고 각을 세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이 현 정부에서 불거진 논란에 대해 사실과 설명을 듣고자 할 때 대통령이 전 정부 이야기를 끌어와 방패 삼는 비교화법은 ‘남 탓’이자 책임 회피로 비친다. “과거 정권 비판한다고 현 정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2022년 7월6일 <국민일보> 사설 제목)
그는 정부의 검찰 출신 인사 편중에 대한 지적에도 “과거 민변 출신들이 (인사 때)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며 비판의 본질을 비껴갔다.(2022년 6월8일 출근길 약식회견) 2022년 12월26일 북한 무인기가 영공을 침범했을 때도 윤 대통령은 사실관계를 둘러싼 여러 의문에 대한 답변을 제쳐두고 ‘전 정부 탓’ 카드를 꺼내들었다. “2017년부터 유에이브이(UAV·무인비행기) 드론에 대한 대응 노력과 훈련, 전력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고 훈련이 아주 전무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북한의 선의와 군사합의에만 의존한 대북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 국민들께서 잘 보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