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정신승리’ 닮은 대통령의 말…“아군과 적군뿐”

김양진 기자 2023. 5. 8. 13:1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표지이야기][윤석열 정부 1년 특집]
10개 주제로 분석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⑶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친미와 친일
주어 상실, 트럼프 뺨치기
2021년 9월11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주자가 대구 중구 서문로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환담을 한 뒤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정신을 새겨” 어디로? 대통령의 말 ⑦—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국민통합이라는 김대중 정신을 새겨 저를 반대하는 분들을 다 포용하고 국민으로 모시는 국가정책을 펼치겠다.” ―2021년 11월11일 전남 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을 방문한 뒤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11월5일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연 기자회견에서 “광주를 1박2일로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선 기간에 있었던 ‘전두환 옹호 발언’에 사과하러 가는 것이었다. 그 말대로 11월10일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았다. 11월11일에는 전남 목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을 방문했고, 같은 날 오후 경남 김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이듬해 4월 당선자 신분으로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 보수정당 출신 대통 령(당선자)으로는 처음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후보 경선을 하던 2021년 9월11일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 “일본의 사과를 반드시 이끌어내 고 할머니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것들을 다 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윤석열 당선자는 ‘개혁 성향이 강한 보수 정치인’으로 분류돼왔다. 지금 보면 상전벽해다.

참여연대 이재근 협동사무처장은 “극우라고 하려면 △북한을 고립시키자고 주장하고 △노동(운동세력)을 적대시하며 △과거사를 부정하는 것 등을 척도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윤 대통령의 정치 성향은 중도보수가 아니라 극우에 가깝다” 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은 어떤 노선인가의 문제가 아닌 ‘권위주의로의 회귀’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행정부가 의회를 통하지 않고 시행령으로 경찰국 설치나 검찰 수사권 원복을 밀어붙이고, 대화와 설득 없이 국회가 통과시킨 양곡관리법 등의 법률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과거 권위주의 시대처럼 통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NBC NEWS \'Nightly News\' 영상 갈무리 2023.04.26 NBC NEWS

“세상엔 아군과 적군뿐” 대통령의 말 ⑧—친미, 친일

“일반적으로 친구끼린 그럴 수는 없지만, 국가 간 관계에서는 서로 (도청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그러나) 이는 양국 사이 신뢰에 어떤 식으로도 영향을 미칠 일이 아니다.”(2023년 4월25일 미국 <엔비시>(NBC)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의 한국 대통령실 도청 의혹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에 각별한 애정과 신뢰를 갖고 있다. 우방국에 대한 적대행위인 도청에 대해서도 미국에 책임을 묻지 않으려 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 방문 직후인 2023년 5월2일 국무회의에서 “세계 최강 국가와 70년 동안 동맹을 맺어왔다. (…) 국가 관계에 있어서 고마운 것이 있으면 고맙다고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오히려 감사를 표시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깊은 신뢰는 일본에도 적용된다. 윤 대통령은 일본 방문 직후인 3월21일 국무회의에서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 독일과 프랑스도 (…) 적으로 맞서다가 전후에 전격적으로 화해하고, 이제는 유럽에서 가장 가깝게 협력하는 이웃이 됐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화해하게 된 바탕에 독일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반성과 사과가 있음을 간과한 발언이었다.

김준형 외교광장 이사장(전 국립외교원장)은 “윤 대통령은 세계를 아군과 적군 두 가지로만 본다. 친구는 나쁜 짓을 해도 감싸고, 적은 나한테 잘해줘도 적대한다. 외교에선 가치가 다른 나라와도 함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데, 그런 ‘회색지대’가 전혀 없다. 태극기부대나 미국의 네오콘, 일본의 극우처럼 극단적인 이념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9월2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난 뒤 나오면서 박진 외교부장관과 김성한 외교안보실장에게 말하고 있다. <문화방송>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 실언에 기름 붓는 대통령실 대통령의 말 ⑨—주어 상실

“(미국)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 ―문화방송(MBC)에서 보도한 2022년 9월22일 미국 뉴욕에서의 윤석열 대통령 발언

“(한국)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돼 있다.” ―같은 날 김은혜 홍보수석의 해명

윤석열 대통령은 준비되지 않은 발언으로 많은 실수를 했다. 더욱이 이런 실언에 대해 대통령실과 행정부가 무리하게 해명하다 다시 망신을 당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23년 4월24일 윤 대통령이 미국 신문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릎 꿇어라라는 것은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이 실언을 덮으려고 ‘저는’이 없었다고 거짓말했다. 그러나 4월25일 이 인터뷰를 한 미셸 리 기자가 직접 발언 원문을 공개함으로써 거짓말이 들통났다.

이 밖에 1월2일 “미국과 핵전력 공동 연습”, 1월16일 “UAE의 적이 이란이고, (…) 우리의 적”, 3월15일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과 관련해 “구상권 행사 안 한다”, 4월19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가능성’ 발언, ‘대만 문제,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발언 등이 모두 이런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대통령이 반드시 사전에 검증된 발언을 해야 하고, 사후엔 문제 발언을 내부에서 바로잡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3월2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신 승리’도 닮았다 대통령의 말 ⑩―트럼프 뺨치기

“이제는 일본을 당당하고 자신 있게 대해야 한다. 한-일 관계도 이제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 ―2023년 3월21일 국무회의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재출마를 저울질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닮은 구석이 많다. 정치 경험 없이 대통령에 출마했고, 한 번 만에 당선됐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두 사람의 당선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도 같다.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2023년 2월16일 쓴 ‘처음 겪어보는 대통령’이란 칼럼에서 “이런 경우 대체로 정치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며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자신의 방식이 옳다는 확신이 더 강해졌을 것이다. 그러니 기존의 ‘대통령다움’ 따위는 무시하고 시끄럽더라도 직접적으로, 거칠더라도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라고 썼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말바꾸기’의 달인이다.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일본이 핵무장 하는 게 미국한테 나쁠 거 없다”(2016년 3월26일)고 말했다가, 신문이 나중에 이를 인용 보도하자 “내가 더 많은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걸 찬성했다는데, 절대 그런 말 한 적 없다”(같은 해 11월13일)고 비난하는 식이다. ‘바이든’ 혹은 ‘날리면’ 논란이 떠오른다.

콘래드 블랙은 2018년 5월 펴낸 <도널드 트럼프: 전혀 다른 대통령>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실패를 인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패배야말로 ‘진정한 승리’이거나 ‘감춰진 승리’, ‘도덕적 승리’이거나 ‘승리의 전조’다. 그에게 있어 과장은 주장의 진실성 여부와 관계없이 습관으로 굳어진 말투”라고 썼다.

윤 대통령은 일본의 사죄와 배상 참여 없는 ‘제3자 변제’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으로 제시해 ‘백기 투항’이란 비판이 들끓는 가운데 이뤄진 한-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주재한 첫 국무회의(3월21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일 관계 정상화는 결국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트럼프식 ‘정신 승리’와 닮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