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대 박기영 "전남도 의대 유치, 맹목적 외침에 지쳤다"
"전남도, 의사 부족하다는 말만으로 유치 힘들어…의제와 자료로 설득해야"
"10년 걸리더라도 미래를 보는 중장기 계획도 절실"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전남. 의과대학 유치는 도민의 숙원사업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대한 과제 앞에서 지역 정치권은 여전히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기영 순천대학교 의과대학 추진위원장은 3월 31일자로, 4년 만에 단장직을 내려놓았다. 전남 의대 유치에 관한 자리라면 장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시간을 쪼개 토론회에 참석했고, 밤에는 이를 뒷받침할 자료 분석에 몰두했던 그였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의대 유치조차 힘들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박 교수를 만나 그간의 활동과 지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을 요약한 내용이다.
- 사임하고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일상에 달라진 변화가 있다면.
=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의대 유치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는 좀 벗어났다. 유치해야 하는 이유는 지역의 열악한 의료를 개선하기 위해서, 순천대학교의 지속가능한 경쟁력, 국립대학으로서의 더 높은 위상 확보를 위한 것이었는데 이런 미련에서 많이 편해졌다. 이제 강의 준비하고 논문 쓰고, 연구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 의과대학 추진단,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나.
= 4년간 정말 많은 일을 해왔다. 순천대 의대 유치에 대해 지역 자치단체장, 주민, 정치권에 알리면서 주민 서명 운동도 펼쳤다. 홍보를 위해서 언론, 터미널 등 안내판, 학교 버스 홍보도 전개했다. 여러 차례 팸플릿과 로고를 제작했고 전남도, 동부권 의료 자료들을 연구했다. 해마다 자료가 새로 발표될 때마다 업데이트 했다. 2020년 서울대 보건대학원, 한국생산성 본부, 병원컨설팅 업체 등 3개 기관에 2억 3천만 원 연구 용역을 맡겨 용역 과정에도 참여했다. 순천대 의대 유치를 위해 필요한 자료들은 다 만들어 놨다고 할 수 있다.
- 단장직을 사임했다. 먼저 그만두겠다고 밝힌 이유는 무엇인가.
= 전공이 분자 생물학이다. 기초 과학 연구인데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데이터가 정확하게 분석되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정책을 추진할 때 항상 정확하게 분석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여성 정책보좌관 1호였다. 개인적으로 노 대통령과 굉장히 일이 잘 맞았는데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했더니 노 대통령께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플랫폼을 만들도록 해주셨다. 제가 디자인해서 만든 데이터 플랫폼이 유엔 공공행정상을 받기도 했다.
서두가 길었지만 사임을 결심하게 된 데는, 의과대학 유치는 정확한 데이터로 정책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할 수 있는 문제인데 광역 지자체 중에 이것을 구호로 외치는 곳이 없었다. 단순히 'OECD 국가 중 이 지역이 의사가 부족하다'는 말만 가지고는 의과대학을 유치하기 어렵다. 전남도민들이 의과대학이 없음으로 인해서 어떠한 의료 불평등을 겪고 있다는 것을 수치화해서 데이터로 보여주고 그걸 가지고 중앙 정치권이나 의료계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가끔 동부권이나 순천시에서 세미나, 토론회에서 발표할 기회를 줘서 엄청난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의대 없는 곳에 의대 유치하자'는 말 뿐이었다. 전남도에서는 순천대 출신이기 때문에 순천대와 목포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인물로 평가되기도 했다. 결국 지금은 병원 유치가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그 동안 지역에 정말 필요한 의료 정책으로 의과 대학 유치를 외치고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제 역할을 끝내기로 했다.
- 학교 안팎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 자료를 분석해 놓았지만 막상 학교에서도 순천시, 전남도 내에서도 사용할 곳이 없었다. 동부지역은 어떻게든 합심해서 순천대 의대 유치를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3개 시, 3개 군 모두 관심이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의대 유치에 대해 과열되어 있었지만 병원에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다. 지역마다 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의과대학을 유치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의과대학 의학과에 입학정원을 배정받아 의학과가 설치되면 '국립대학병원 설치법'에 의거해서 대학병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의과대학도 어떤 의과대학을 만드느냐에 따라 다르다. 이러한 논의가 선행되지 않는 점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 전라남도는 의대 유치만 선언할 뿐 사실상 지역 갈등 중재에는 손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부분에 대해 하실 말씀은 없으신가.
= 전남도는 일단 순천대나 목포대나 되도록 합심해서 하자는 얘기를 한 상황이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의대 유치와 병원 문제에 대해 주장하는 목소리가 제각각 내더라도 전남도는 중앙 정부를 좀 더 설득할 수 있도록 왜 의대가 전남지역에 필요한지에 대한 정확한 의제와 자료를 갖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앙에 의료계와 보건복지부를 설득할 수 있는 의과대 설립 방안도 만들어 가서 설득을 해야 하는데, 중앙에서 들리는 말은 동부권 서부권 싸움, 동부권 내에서의 싸움 이런 얘기만 들리지 않나. 전남도는 구호가 아니라 의료계와 보건복지부,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의료 필요성에 대한 실질적 콘텐츠를 가지고 가서 설득해야 한다.
- 여수 모 방송사가 관련 토론회를 열려고 했지만 박기영 위원장 출연을 이유로 주철현 의원이 출연을 거부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출연이 확정된 건 아니었다. 그날 출연을 할 수 있느냐는 전화는 왔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우리가 구상해 놓은 의과대학 설립 방안과 중앙 무대를 설득하기 위한 콘텐츠를 가지고 말을 할 수 있는 자리라면 나가겠다는 말을 전했다. 이러한 기회라면 하겠다는 이야기였는데 주철현 의원님이 저 때문에 안 한다고 하는 말씀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전남대학병원 분원이라도 대학병원이 생기면 순천 사람도 이용하지 않나. 동부권에 하나가 생기는 거고 동부권 사람들 모두 이용하는 건데 순천 사람이면 안하고 여수 사람들끼리만 얘기하자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되지 않나. 그리고 저는 분명히 전남지역 전체에 대해서 의대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연구하고 그것에 대해서 자문하고 콘텐츠를 만들어 왔는데 저를 순천사람이기 때문에 여수에 대해서 언급하지 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참 편협하다.
- 앞서 열린 김회재 의원실 주최 토론회에서도 끝나고 쓴소리를 했다고 들었다.
= 쓴소리라기보다는 같은 지역 정치인끼리 별도로 하지 말고 두 분이 좀 같이 합쳐서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런 걸 가지고 왜 지역을 나누고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얘기했다.
- 주철현 의원은 순천으로 의대를 유치하면 율촌으로 병원을 주겠다는 하는 방안을 아무도 약속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순천대 공식 입장이 있나? 정말 의대 유치만 하면 율촌으로 병원을 세울 가능성도 있긴 한 건가.
= 이제 의대 유치 단장직을 그만뒀기 때문에 공식적 입장을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그렇지만 약속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병원과 의대에 관한 대화 자체가 지금 없지 않나. 이런 얘기도 없는데 누가 병원에 대한 약속을 하겠나. 의과 대학 자체도 없는데. 한 마디로 현재는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는 얘기다. 의대조차도 결정이 안됐기 때문에 결정된 게 없고 만약 병원을 짓는다고 한다고 하면 가장 합리적인 지표 등을 통해서 선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지역 국회의원들의 주장 중 가장 실현 가능한 방안은.
= 의대 유치와 병원 설립에 대한 법안은 복지부에 12개, 교육부에 5개가 올라와 있다. 동부권에서는 김회재 의원의 '국립순천대학교 의과대학 설치 및 대학병원 설립을 위한 특별법안', 소병철 의원의 '전라남도 내 의과대학의 설치 및 공공의료인 양성을 위한 특별법안', 서동용 의원의 '공중보건장학을 위한 특례법 전부개정법률안' 이다. 법안들이 다 나름대로 담고 있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에 그 내용들 중에서 아무래도 동부권을 대변하는 법안으로 통합하는 게 맞다고 본다.
- 전남의대 오랜 시간 풀리지 않은 과제다. 정부와의 협상도 그렇지만 지역 내 갈등부터 풀어야 할 것 같은데 누가 어떻게 해야 된다고 보시나.
= 일단 의과대학과 병원 설립 문제를 둘러싼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그러나 팩트체크를 하려고 하면 이것을 한 사람을 공격해 버리니까 서로 싸움이 돼 버린다. 누구도 이 상황에서 펙트체크를 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문에 전남도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남도에도 의대 관련 추진단이 있지만 추진단이 있든 싱크탱크가 있어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미래를 얘기를 해야지 과거를 갖고 계속 미래를 발목 잡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 단장직 사임 후 후임은 결정됐는가? 앞으로 추진단 누가 어떻게 이끌게 될 것인가.
= 순천대 경제학과 박병희 교수가 맡은 걸로 알고 있다. 후임 결정에는 관여한 바 없다.
- 지역사회에 꼭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지역의 현실을 좀 냉정하게 보고 분석을 해서 이 지역의 열악한 구조를 어떻게 해결할지, 그 다음에 전남 도민들이 고생하는 점에 대해 미래를 보고 해결할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의료 부분에 있어서는 의료가 해결되지 않으면 전남은 앞으로 굉장히 공동화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임시방편으로 해결하지 말고 10년이 걸리더라도 미래를 보고 단기·중기·장기 계획을 세워서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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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CBS 박사라 기자 sarai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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