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포스코 궁지에 넣은 '빛 좋은 자유' [視리즈-취임사 다시보기]

김다린 기자 2023. 5. 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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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사 다시보기➊ 관치의 흔적
“자유 확대가 곧 번영”이라더니
금융권·소유분산기업엔 다른 잣대
대표 이통사 KT CEO 공백 사태
이사회 파워 웃도는 외부 입김의 힘
재계 5위 포스코는 ‘패싱’ 논란
최정우 중요 재계 행사 잇단 불참
취임사 자유 강조한 취지 무색

# 자유, 자유, 자유…. 1년 전인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자유를 유독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에서 정권 교체의 선봉에 섰던 대선 후보 시절부터 어딜 가든 그랬으니 예상대로였다.

# 자유, 참 좋지만 아리송한 말이다.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일 수 있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 다만, 윤 대통령이 생각하는 자유가 보장되려면 몇가지 전제가 필요했다. 자유는 승자독식이 아니어야 했다. 우리 사회는 국민에게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를 보장해야 했다. 그렇게 자유로운 시장이 조성되면 '번영과 풍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 1년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윤석열 정부는 시장에 자유를 넘쳐흐르게 했을까. 승자독식을 막고, 경제적 기초를 보장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을까. 더스쿠프가 '취임사 다시보기'를 통해 확인해 봤다. 결과부터 말하면, 취임사 속 자유는 궤도를 한참이나 이탈해 있었다. 한국 대표 이동통신사 KT는 CEO 공백 위기에 놓여있고, 재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포스코는 대통령실과의 거리감을 드러내고 있다.

KT는 CEO 공백 상태에 놓여있다.[사진=뉴시스]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 1년 전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이런 경제 난제의 해법으로 '자유'를 제시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본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과거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윤 대통령은 '자유의 확대'가 번영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자신들이 그렇게도 강조한 '자유로운 시장'을 되레 통제하려는 장면을 곳곳에서 연출했다. 연 매출 25조원에 달하는 대기업 KT가 지금 초유의 경영 공백 상태에 놓인 건 대표적 사례다.

KT는 한달 넘게 대표이사 없이 회사를 운영 중이다. 기존 구현모 대표의 임기가 정기 주주총회가 열렸던 지난 3월 31일 종료했고, KT의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결정된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도 사의를 표명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구 전 대표나 윤 사장 모두 제도나 절차에 의한 사퇴가 아니었다. 정치권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메시지 몇개가 이들을 끌어내렸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해 하반기 임기를 무리 없이 수행한 구 전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고개를 들자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어른거린다는 뒷말이 나돌았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KT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가 구 전 대표의 연임 적격성을 인정했다. 공정한 절차에 따른 결정이었다. 그런데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선정 과정의 투명성을 문제 삼으면서 어깃장을 놨다. 구 전 대표는 "복수 후보자로 재심사를 해달라"며 승부수를 던졌지만 이마저도 무용지물이었다.

다시 최종후보에 오른 구 전 대표를 두고 국민연금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반대의사를 피력했다. 결국 KT는 구 전 대표를 단독후보로 추천한 기존 선임 절차를 백지화하고,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으로 후보 경선을 시작했다. 그사이 구 전 대표는 경선 레이스에서 빠졌다.

업계 안팎에선 대통령실이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감돌았는데, 실제로 도전장을 낸 이들 중엔 여권 인사가 다수 포함됐다.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권은희 전 새누리당 의원,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런데 이들을 제치고 윤 사장이 최종후보에 오르자 정치권이 다시 들끓었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KT 현직 사내외 이사진들을 '이익 카르텔'이라고 규정하고 윤 사장을 두고는 '구현모의 아바타'라고 깎아내렸다. 결국 윤 사장도 중도 이탈했다. 전임 KT CEO들이 낙하산 꼬리표에 발목 잡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체됐었는데, '자유'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에서도 같은 장면이 재현됐다.

그사이 KT를 둘러싼 경영 환경은 난맥상에 빠졌다. 증권가가 전망하는 KT의 올해 1분기 실적 컨센서스는 매출 6조4389억원, 영업이익 4996억원이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5%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수익성이다. 전년 동기 대비 20.2% 감소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전망이 현실화하면 KT는 2020년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1분기 영업이익 역성장의 늪'에 빠진다. 경쟁사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모두 플러스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뼈아픈 일이다. 주가도 올해 들어 9.91%(4일 종가 기준ㆍ3만3800원→3만450원)나 하락했다.

이런 위기는 당분간 계속될 공산이 크다. KT는 차기 CEO 후보 공모 절차를 다시 처음부터 밟고 있는데, 선임 일정은 오는 8월 말로 예정돼 있다. 자유의 확대를 통해 경제적 성장을 꾀하겠다더니 민간기업이 CEO를 선임할 '자유'는 없었고, 뒤따라와야 할 '성장'도 없었다.

KT와 사정이 비슷한 기업은 또 있다. 포스코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윤 대통령이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이해 지난 4월 24일부터 5박 7일 일정으로 떠난 미국 순방길에 동행하는 경제사절단에 합류하지 못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등 10대 그룹 총수들이 모두 참석했는데 최 회장만 빠졌다.

포스코 측은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세계철강협회 정기총회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는 걸 불참 이유로 들었지만, 재계의 분석은 다르다. 윤 대통령은 방미 일정을 앞두고 '2차전지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이차전지는 반도체와 함께 우리의 안보ㆍ전략 자산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포스코퓨처엠이 2차전지의 핵심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를 생산해 글로벌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 회장의 불참은 뜻밖의 일이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길에 동행하는 경제사절단에 포함되지 않았다.[사진=뉴시스]

공교롭게도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 일정을 수행하는 도중 포스코의 재계 순위는 한단계 올라갔다. 지난 4월 2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했는데, 포스코는 재계 5위로 올라서고 롯데는 6위로 내려앉았다. 포스코 자산 총액이 지난해 96조억원에서 올해 132조원으로 35조원 넘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그만큼 포스코가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한데도 대통령실은 최 회장을 드러내놓고 외면하고 있다. 최 회장은 윤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과 경제계 신년회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정치권의 외압에 시달리던 구 전 KT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경제인 모임에도 최 회장은 불참했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최 회장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이 그만큼 곱지 않다는 방증이다. 업계 안팎에선 내년 3월 임기만료를 앞둔 최 회장이 연임은커녕 완주도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KT와 포스코의 사례는 자유를 연신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민간 기업의 인선 개입은 자칫 관치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관치는 자치自治의 반대말이다. 권력이 기업 인사에 입김을 넣는 건 번영이 약속된 자유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윤 대통령이 1년 전 취임사를 다시 읽어봐야 하는 이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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