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기들은 억대 연봉 받는데…" 40대 공무원의 한탄 [관가 포커스]
지난달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에서 이모 전 금융위원회 과장은 삼성생명 상무로 취업 승인을 받았다. 이 과장은 삼성생명에서 대관 업무를 담당할 정책지원팀장을 맡을 예정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선모 전 금융위 과장은 메리츠화재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선 전무는 메리츠화재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두 명 모두 금융위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간부로 꼽혔던 인물들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과장급 간부들도 2021년과 지난해 대거 민간기업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는 건 과장급 간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 사무관들이 네이버와 두나무로 옮기자 기재부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고위공무원단 중에서 퇴직 후 민간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고시에 합격한 사무관 중에서도 ‘최고 브레인’들이 모이는 기재부에서 초임 사무관이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는 건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정부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공직사회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자발적으로 퇴직하는 20~30대 젊은 공무원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이직을 원하는 이유는 경직된 조직문화나 세종시 근무 등 다양하다. 다만 이직을 고민하는 공무원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것이 바로 ‘낮은 보수’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은 82%로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민간 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은 민간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공무원 보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산출한 비율이다. 비교 대상 민간임금은 상용 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체의 사무관리직 보수다. 세부 수치는 오는 6월 확정된다.
민간 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은 ‘공무원 보수 현실화 5개년 계획’(2000년~2004년)에 따라 2000년 88.4%에서 2004년 95.9%로 높아졌다. 이후 소폭의 등락을 반복하다가 코로나19 사태 직후인 2021년 고통 분담을 명분으로 87.6%로 하락한 후 지난해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공무원 보수 동결은 정부가 각종 경제위기 때마다 가장 먼저 단행하는 대표적인 구조조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출범 이후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에서 긴축재정 기조로의 전환을 선언하며 공무원 보수 등 공공부문에서도 긴축에 들어갔다. 올해 공무원 임금 인상률은 5급 이하는 1.7%고, 4급 이상 간부들은 동결이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5.1%)을 훨씬 밑돈다. 전년도 임금 인상률은 1.4%였다.
특히 명문대를 졸업한 후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관가에 입성한 고시 출신 공무원들의 박탈감은 상당하다. 통상 행시에 합격한 후 12~15년은 지나야 서기관을 달게 된다. 정부 부처마다 조금씩 상황이 다르지만, 인사 적체가 심한 기재부에선 40대 중반의 공무원이 보직 과장을 맡는 것도 흔치 않다.
대학 동기들이 행시 대신 로스쿨을 선택해 변호사가 되면서 고연봉을 받는 것도 사무관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기재부는 통상 서울대 경제학과 학생들이 행시 재경직에 합격한 후 입직하는 대표적인 ‘정통 코스’였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행시 재경직은 서울대 경제학과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엔 우수 학생들이 로스쿨에 진학하거나 IB 등 금융권에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것이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 사무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40대 후반이면 민간 대기업에선 임원을 다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억대 연봉을 받는 민간 대기업 임원과 비교하면 4급 공무원은 5580만원(15호봉 세전 기준)에 불과하다. 중앙부처 간부들이 국제기구 등 해외 근무를 선호하는 것도 해외 경험을 쌓는 것을 넘어 기타 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에 연봉이 상승하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통상 40대 후반 과장급 간부들의 상당수가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할 시기다. 민간 대기업과 달리 공직사회는 대학 학자금 지원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삼성, 현대차를 비롯한 일부 대기업은 임직원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기도 한다. 공직사회엔 공무원연금공단의 학자금 대여제도가 존재한다.
한 정부 부처 과장급 간부인 A씨는 “자녀의 대학 입학을 앞두고 호봉이 쌓여도 임금 인상률이 낮아 형편이 빠듯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이렇다 보니 요새는 타고난 ‘금수저’ 출신 공무원들만 보수 걱정 없이 일에만 몰두한 덕분에 조기 승진을 거듭하고 있다는 후문까지 들린다.
유일한 보루였던 공무원연금도 과거와는 사정이 다르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1996년 사무관으로 입직해 30년 근무한 경우 매달 280만원의 퇴직연금을 받게 된다. 그러나 2015년 이후 공직에 입문한 사무관은 퇴직 후 월 177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2015년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공무원연금 제도가 개혁됐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적잖은 부담이다. 정부 부처 과장으로 근무 중인 B씨는 “과거 1960~1970년대엔 국민 위에 관이 군림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다”며 “그런데도 국민들이 공무원들을 무작정 욕할 때는 회의감마저 든다”고 털어놨다.
기재부에서 주무과장을 맡은 C씨는 “지금도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세종시에서 하루가 멀다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며 “밤에도 불이 환하게 켜진 세종청사를 한 번이라도 본다면 ‘복지부동’이라는 표현을 꺼낼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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