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생각하며…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클래식 음악들
따스한 봄날의 햇살과 만개한 꽃, 그리고 청명한 날씨는 5월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 준다.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며 1년중 가장 아름다운 달로 꼽히는 5월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많은 기념일들로 가득하다.
노동절과 석가탄신일을 비롯해 스승의 날 등 뜻 깊은 기념일도 있지만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함께 있는 5월은 가정의 달로 불릴만하다.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의하면 가족을 뜻하는 ‘family’의 어원은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사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14세기 중세 프랑스어 단어 ‘famil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현대적 발상과 위트를 더해 ‘Family’가 ‘Father+And+Mother+I+Love+you’ 앞 첫 글자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했는데, 참으로 기발하면서도 마음에 와 닿는 풀이가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는 한때 어린아이였고 누군가의 자식이자 어머니와 아버지이기도 하다. 많은 작곡가들 역시 가족은 그들 예술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어준 영감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이번 회에서는 가족을 생각하며 들어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곡들로, 우리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악들을 소개한다.
◆ 드보르작 <Songs My Mother Taught Me>
효자로도 알려진 드보르작(Antonin Dvorak)의 음악적 재능은 아마도 어머니로부터 오지 않았을까.
드보르작의 아버지는 정육업자지만 아마추어 ‘치터(민속악기)’ 연주자였는데, 어머니 또한 교양 있는 집안의 여성으로 두 외삼촌 역시 뛰어난 바이올리스트이자 트럼펫연주자였다고 한다.
드보르작은 종교곡과 교향곡을 비롯한 여러 형식의 작품을 작곡했는데, 그 중 가곡은 그의 중요한 작품목록 중 하나다.
가곡집 <집시의 노래>는 모두 7개의 가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이에 반해 오직 네 번째 곡만이 애수 어린 멜로디를 담고 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지닌 네 번째 곡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노래(Songs My Mother Taught Me)>는 동향인 체코의 시인 아돌프 헤이둑(Adolf Heyduk)의 시를 바탕으로 모라비아지방의 선율을 차용해 작곡했다.
시의 내용은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를 자신의 아이에게도 가르쳐주며 당신의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내용이다. 이 곡을 작곡했을 때 드보르작은 세명의 자식을 모두 잃고 고통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에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슬픔과 연민을 어머니에게 받았던 사랑과 추억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위대한 바이올리스트중 한명인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에 의해 바이올린 소품으로 편곡되어 자주 연주되고 있는 이 작품은 이후 여러 악기들로도 편곡돼 애수 어린 선율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다.
◆ 푸치니 <O mio babbino caro>
한때 광고음악으로도 널리 쓰였던 <O mio babbino caro>는 푸치니(Giacomo Puccini) 오페라 <잔니 스키키(Gianni Schicchi)>에 나오는 아리아로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오페라 <잔니 스키키>는 푸치니가 작곡한 유일한 희극 오페라로 작품 <외투>와 <수녀 안젤리카>와 함께 3부작으로 발표된 오페라 <일 트리코(Il tricco)>의 마지막 제3막극이다.
세 작품 모두 삶의 죽음과 고뇌를 다루는데, 삼부작의 줄거리는 단테의 <신곡 Divina Commedia(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대본은 이탈리아의 극작가 지오바키노 포르차노 (Giovacchino Forzano)가 완성했는데, 줄거리는 피렌체의 부호 부오조의 임종과 유산을 둘러싼 해프닝으로 유산에만 관심 있는 친척들을 결국 통쾌하게 내쫓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아리아 <O mio babbino caro>는 잔니 스키키의 딸인 로레타가 사랑하는 남자인 리누치노와의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노래다.
특히 가사의 애절함과 멜로디의 서정성이 잘 어우러져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연인에 대한 사랑 사이에 갈등하는 여자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애절하고 아름다운 아리아다.
◆ 그리그 <Grandmother's Minuet>
총 10권의 모음집으로 묶은 그리그(Edvard Grieg)의 서정 소품집은 66개의 피아노 소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집은 1867년 24살의 그리그가 1권을 발표한 이후 1901년 58세에 마지막 10권을 완성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작곡한 그의 서정 소품집은 그리그의 작곡기법 발전과 삶의 단면을 느낄 수 있으며 대표적인 국민악파 작곡가답게 민속적인 요소 또한 잘 드러나있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낭만주의 시대 슈만과 쇼팽, 멘델스존 등이 추구하던 시적이며 함축적 느낌을 그리그 자신만의 음악적 어법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이중 작품 <Grandmother's Minuet>은 서정 소품집 제9권의 2번째 곡으로, 66개의 곡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다.
그리그는 9권 Op.68을 1898년에 완성했는데, 이 시기 그의 음악은 노르웨이의 자연과 민속적 요소들을 독자적이며 개성 있는 음악적 어법으로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한편 <Grandmother's Minuet>은 아름다운 4분의 3박자의 미뉴엣 춤곡으로 짧지만 아름답고 소박한 느낌으로, 할머니의 느긋하면서도 온화한 이미지의 선율로 곡을 시작하고 있다.
특히 중간부분에 살짝 무언가를 급하게 찾는 듯한 느낌을 주다가 다시 느긋하고 온화한 할머니로 돌아오는 듯한 편안하고 매력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라벨 <Ma Mere L'Oye>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라벨(Maurice Ravel)은 유독 어린아이들을 좋아했는데, 그의 친구인 고데프스키의 7살 아들 장(Jean)과 6살 딸 미미(Mimi)를 무척 좋아해 이들의 아파트를 자주 방문했다.
고데프스키의 아파트는 라벨이 주도하던 예술 혁신모임인 ‘아파쉬’의 모임장소이기도 했는데, 이 곳에서 라벨은 아이들에게 동화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종이 접기 인형을 만들어주며 즐겁게 지냈다.
작품 <어미거위(Ma Mere L'Oye)> 모음곡은 장과 미미를 위해 1908년 피아노 연탄 모음곡집으로 만들었다. 이후 3년 뒤에는 관현악 개정으로, 1년 뒤 전주곡과 간주가 들어간 발레모음곡으로 편곡했다.
피아노 연탄 모음곡집의 초연은 어린이를 위한 곡답게 여류 피아니스트 마르게리트 롱(Marguerite Long)의 8살과 10살 제자들이 초연했다.
<어미거위>는 <신데렐라>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로 유명한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의 동화 등에서 발췌해 만든 작품으로 동심과 마법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전체 5개의 동화 스토리를 바탕으로, 1곡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파반>, 2곡 <난쟁이>, 3곡 <파고다의 여왕 레드로네트>, 4곡 <미녀와 야수의 대화>, 5곡 <요정의 정원>으로 구성되어있다.
라벨은 <어미거위>라는 상상과 공상의 세계를 섬세한 색채로 그려내고 있으며 단순한 형식 속에서도 실험적인 음악적 어법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라벨의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수함과 천재성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 프로코피에프 <Peter and the Wolf>
해마다 5월이면 어린이 동화 뮤지컬로 많은 공연을 하는 작품이 있다. 바로 우크라이나 태생 작곡가 프로코피에프(Sergei Prokofiev)의 <피터와 늑대(Peter and the Wolf)>다.
소년 피터가 오리를 잡아먹은 늑대를 사냥한다는 내용의 이 곡은 내레이션과 오케스트라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특히 어린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가족 클래식작품’이다.
1936년 당시 프로코피에프는 7살과 10살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어린이 음악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마침 어린이를 위한 음악을 기획해달라는 극장의 의뢰를 받고 2주만에 <피터와 늑대>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음악뿐만이 아니라 전체 스토리와 내레이션까지 모두 프로코피에프가 도맡아 완성했는데 각 악기들을 인물과 동물 캐릭터에 잘 맞춰 구성했다.
가령 주인공인 피터는 바이올린 등 현악기로 표현했고 할아버지는 낮은 음역대인 바순이, 새소리는 플루트, 오리는 오보에, 고양이는 클라리넷, 늑대는 3대의 호른 그리고 사냥꾼은 팀파니, 총소리는 큰북으로 묘사했다.
30분 정도 길이의 이 작품은 악기의 음색과 빠르기, 강약 그리고 선율의 흐름을 통해 이야기의 줄거리를 음악만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전세계 어린이 음악감상교육의 단골 작품인 <피터와 늑대>는 프로코피에프가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디즈니와 계약해 1946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2008년에는 폴란드에서 특수한 재료의 점토로 만든 애니메이션인 클레이메이션 단편영화로 제작되어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미국의 여성 작곡가 에이미 비치(Amy Beach)가 어머니에게 헌정한 가곡 <Empress of the Night>와 드뷔시(Calude Debussy)가 사랑하는 딸을 위해 작곡한 <어린이의 세계(Children's corner)> 등도 가족과 관련된 작품이다.
☞ 음반추천
드보르작의 <Songs My Mother Taught Me>는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Renee Lynn Fleming)의 음성으로,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바이올린 편곡은 올드 음반이어도 크라이슬러 본인의 연주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다.
푸치니 오페라 잔니 스키키의 <O mio babbino caro>는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와 키리테 카나와(kiri te kanawa)의 음성이 감동적이다. 그리그의 서정소품집은 에밀 길렐스(Emil Gilels)의 컬렉션음반을 추천한다.
라벨의 <어미거위(Ma Mere L'Oye)> 모음곡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와 플레트네프(Mikhail Pletnev)의 음반을, 오케스트라는 샤를 뒤트와(Charles Dutoit)의 음반을 권한다.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늑대>는 단편영화 등 영상으로 보시길 권하며, 음반은 아바도(C.Abbado) 지휘의 음반과 조수미의 내레이션과 함께 한 켄트 나가노(Kent Nagano)의 음반을 추천하겠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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