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년 전 뼈 목걸이에서 DNA 추출…주인을 밝혀냈다
온도 높이면서 유전물질만 빼내
고유전학 기술의 새 영역 개척
북유라시아계 여성이 착용한듯
지금으로부터 2만년 전 시베리아 남서부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누군가가 사슴 이빨로 만든 목걸이용 장신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오랜 세월이 흘러 2019년에 발견된 이 장신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고유전학 기술이 밝혀냈다.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가 중심이 된 국제연구진은 수년간의 노력 끝에 이 장신구에 보존돼 있는 사람의 땀과 피부 세포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한 결과를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목걸이용 구멍이 나 있는 이 장신구의 주인은 북유라시아계의 여성으로 밝혀졌다.
일반적으로 뼈, 치아 등에서 고대 DNA를 추출할 때는 작은 구멍을 뚫어 얻은 가루를 분석한다. 이 연구소의 스반테 페보 박사는 이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이 유물을 훼손하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돌이나 뼈, 치아로 만든 인공물에 이 방법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고대 인류의 생활과 문화를 말해주는 중요한 유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석기 시대의 유물에는 이런 부장품이 매우 적다. 이는 이 유물을 훼손하지 않고 DNA를 검출할 경우 그만큼 기술의 가치가 높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빨래할 때 옷 삶아 얼룩 빼는 것과 같아
연구진은 뼈와 치아가 미세한 구멍들이 나 있는 다공성 물질이라는 데 주목했다. 미세구멍 속으로 장신구를 착용한 사람의 땀이나 타액, 혈액 등이 스며들어가 DNA가 보존돼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인공물이라도 석기의 표면은 너무 매끈해서 사람의 DNA가 남아 있을 확률이 낮다.
연구진은 5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뼈와 치아에서 고대 DNA를 추출해내는 방법을 알아냈다. 유물을 인산염 용액에 담그고 실온에서 천천히 최고 90도로 가열하면서 유물의 표면 질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뼈에 묻어 있는 고대 DNA를 분리해낼 수 있었다.
연구진은 장신구를 용액에 담근 뒤 30분씩 온도를 4단계(21도, 37도, 60도, 90도)로 올리면서 고대 DNA를 추출했다.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는 표면에 묻어 있는 와피티사슴(엘크)과 주변 퇴적물에서 유래한 DNA가 나왔고, 가장 높은 온도에서는 장신구 깊숙한 곳에 있던 사람의 DNA가 나왔다. X염색체 수로 보아 이 사람은 여성으로 추정됐다.
연구를 이끈 엘레나 에셀 연구원(분자생물학)은 DNA 검출 과정을 “빨래할 때 옷에 묻은 얼룩을 제거하기 위해 옷을 삶는 것”에 비유해 설명했다. 그는 “장신구에서 회수한 인간 DNA의 양은 마치 인간의 치아에서 직접 채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엄청났다”고 말했다.
박물관 유물의 DNA 검출에도 적용 가능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이 여성은 바이칼호수 동쪽으로 2000km 떨어진 곳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말틴스코-부레츠카야 부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시베리아와 아메리카 원주민, 청동기시대 초원 목축민의 조상집단에 해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여성과 사슴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다른 고대 DNA와 비교한 끝에 이 장신구의 연대를 1만9000년 전~2만5000년 전으로 추정했다. 이는 장신구 근처에서 발굴한 나무화석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와도 일치했다.
미국 캔자스대 데이비드 프레이어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에 “이번 연구는 표본이 손상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전 세계 박물관에 보존돼 있는 고대 유물에서 DNA를 분석할 수 있는 문을 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그것이 현실화한다면 고대 DNA 연구에 큰 도약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프랑스 보르도대 솔랑주 리고드 교수(고고학)는 그러나 <사이언스>에 “장신구는 여러 세대에 걸쳐 거래되고 전승되기 때문에 유물 표면의 DNA는 유물을 마지막으로 착용하거나 취급한 사람만 드러낼 뿐 제작자를 알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번처럼 생명체에서 외부로 떨어져 나간 물질에서 찾아낸 유전정보를 환경DNA라고 부른다. 최근 물이나 토양은 물론 공기에서도 환경DNA를 추출해내는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영국 옥스퍼드대가 중심이 된 국제연구진이 그린란드 북부 해안 퇴적층에서 200만년 전의 환경디엔에이를 추출해 당시의 생태계 구성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막스플랑크연구소 과학자들의 이번 연구 역시 고유전학과 환경DNA 기술이 한데 어우러져 또 하나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성과라고 할 만하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86-023-06035-2
Ancient human DNA recovered from a Palaeolithic pendant.
Nature (2023).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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