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오명’ 日 투수가 사이영상 선수 길을 따라가나… 또 마법이 펼쳐질까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로비 레이(32‧시애틀)는 어린 시절부터 구위 하나는 진짜라는 평가를 받고 자랐다. 시속 90마일 중‧후반대의 강력한 패스트볼이 강력한 무브먼트와 함께 살아 들어왔다. 타자들이 힘껏 방망이를 돌려도, 공이 방망이 위를 스치고 지나가거나 이미 포수 미트 속에서 빨려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타자들로서는 레이가 제풀에 무너지기를 바라는 게 더 좋은 공략법이었을지 모른다. 방망이를 내지 않으면 볼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레이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9이닝당 12개의 삼진을 잡아내는 투수였다. 그러나 5.1개의 볼넷도 같이 내줬다.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고 뛴 마지막 시즌인 2020년에는 9이닝당 볼넷 개수가 무려 9개에 이르렀다. 리그에서 공짜 출루가 가장 많은 선수였다.
하지만 토론토가 레이의 손을 잡았고, 2021년 시즌을 앞두고도 1년 계약을 했다. 많은 이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토론토는 나름의 해법이 있는 듯했다. 피트 워커 투수코치 및 전력 분석 파트에서 레이의 투구 밸런스를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레이는 2021년 9이닝당 볼넷 개수가 2.4개에 불과했다. 강력한 탈삼진 능력을 유지하면서도 볼넷을 획기적으로 줄이니 성적이 따라왔다. 레이는 시즌 32경기에서 193⅓이닝을 던지며 13승7패 평균자책점 2.84를 기록해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248개의 탈삼진, 2.84의 평균자책점 모두 리그 1위였다.
그런 레이가 2021년 시즌 뒤 시애틀과 5년 1억1500만 달러 계약을 하고 팀을 떠나자 토론토는 ‘제2의 레이’를 찾기 위해 시장을 누볐다. 그 과정에서 레이의 옛 시절을 연상케하는 한 선수와 계약은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바로 일본 출신의 좌완 기쿠치 유세이(32)였다. 나이도 같고, 던지는 팔도 같고, 강력한 구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제구가 문제라는 점까지 상당히 흡사했다.
기쿠치는 지난해 9이닝당 11.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강력한 구위는 이견이 없었다. 좌완으로 90마일 중‧후반대의 강속구를 던졌다. 그러나 5.2개의 볼넷을 내주면서 제풀에 무너졌다. 32경기(선발 20경기)에서 6승7패 평균자책점 5.19에 머물렀다. 3년 3600만 달러의 계약이 실패할 위기였다. 그러나 올 시즌을 앞두고 다시 토론토 코칭스태프와 머리를 맞댔고, 투구 밸런스 조정이 이뤄지면서 볼넷 개수가 크게 줄었다. 레이만큼 강력한 성적은 아니지만 코스는 비슷하다.
8일(한국시간) PNC파크에서 열린 피츠버그와 경기에서 6⅓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5승째를 거둔 기쿠치는 올해 9이닝당 볼넷 개수를 1.91개로 줄였다. 보통 이 수치가 2개 이하로 내려오면 리그 최정상급 성적인데, 지난해 볼넷이 문제였던 기쿠치가 이를 해내고 있는 것이다. 3.3개 수준의 감소폭은 올 시즌 선발 5경기 이상을 뛴 선수 중에서는 가장 큰 수치다.
물론 그렉 매덕스급의 제구를 갖춘 건 아니다. 여전히 날리는 공들이 있다. 그러나 불리한 카운트에서 과감하게 패스트볼 승부를 하는 경향이 생겼고 좋은 구위와 더불어 이 작전이 먹히며 더 많은 이닝 소화도 이뤄지고 있다. 커터를 버리고 슬라이더를 보더라인에 투구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도 톡톡히 재미를 본다. 이제 기쿠치는 더 이상 공짜 출루를 자주 허용하는 투수가 아니다.
이날까지 7경기에서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3.35. 피안타율(.257)이 지난해(.243)보다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닝당출루허용수(WHIP)는 오히려 좋아졌다(1.50→1.19). 공격적인 투구 때문에 타구속도가 빨라지고 뜬공 비율이 높아졌다는 문제점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장점이 단점을 상쇄하는 분위기다. 3.35의 평균자책점은 강력하다는 토론토 로테이션의 그 어떤 선수보다 좋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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