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 배우라는 '평생 직업'을 꿈꾸며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에 이보다 적합한 배우가 있을까.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 홈런을 날리는 이제훈이 또 한 번 택시기사 김도기로 돌아와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온몸을 불태웠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로 작품에 모든 힘을 쏟았다는 이제훈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그간의 소회를 전했다.
최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2'(극본 오상호·연출 이단) 정의가 실종된 사회, 전화 한 통이면 오케이, 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사적 복수 대행극이다. 이제훈은 시즌1에 이어 주인공 김도기 역을 맡아 작품 전체를 견인하는 활약을 펼쳤다.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21%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제훈은 "시즌1을 준비할 때도 '사적 복수'로 대리만족을 준다는 다소 판타지 적인 콘셉트를 시청자 분들이 좋아해 주실지 의문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들을 좀 더 직설적으로 제대로 응징하는 부분을 보여드리는 것에 호응을 해주실지 걱정이 있었는데 다행히 반응이 뜨거웠고, 응원을 받으며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라며 시즌2의 귀환 역시 그런 응원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쁨을 드러냈다.
그는 "시즌2가 제작된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은 일인데 정말 기뻤다. 김도기라는 캐릭터를 또다시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흥미로웠다"라며 출연 결정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시즌1에 대한 사랑, 시청자분들의 기대감을 또 채워드릴 수 있을지, 잘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있었지만 우상호 작가님이 이어서 이야기를 써주셔서 든든함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제훈은 "시즌1이 다크하고 무거웠다면 시즌2는 조금 더 신명 나게, 재밌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했다"라며 "그래서 포맷을 아예 한 주 안에 모든 이야기를 보여 드리고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채택했고, 시원시원한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는 목표를 잡았다. 시청자 분들이 저희의 의도대로 작품을 봐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다만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를 선보이다 보니 계속해 새로운 부캐릭터, 소위 '부캐'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고. 이제훈은 "쉬운 일이 아님은 알고 있었지만 '한 번 저질러 보자!'라는 마음으로 도전을 했었다. 종영을 하고 보니 제 연기 밑천이 바닥난 느낌이다"라며 "더 많은 것들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러려면 더욱 연구하고 나를 채워 넣어야겠다는 결심을 최근에 하게 됐다"라고 했다.
이제훈은 시즌2를 빚어내며 만들었던 여러 부캐들을 하나하나 손에 꼽으며 촬영 과정을 회상했다. 그는 "'모범택시2'의 본캐 도기는 무채색, 어두운 측면이 있는 인물이라면 부캐들은 다채로운 모습을 폭넓게 보여주려는 시도가 필요했다"라며 "그래서 처음에는 부캐로서의 연기에만 집중했는데, 이제는 캐릭터가 외적으로 갖춰야 하는 모습도 연기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더라. 많은 의견을 내게 됐고 감독님이 잘 수렴해 주셔서 새로운 모습을 많이 선보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표예진과 가짜 신혼부부로 호흡을 맞췄던 에피소드에서는 직접 청재킷, 분홍색 커플 운동화 등 다양한 소품들에 대한 의견을 냈고, 무속인으로 변신한 '법사 도기' 에피소드에서는 실제 굿을 표현해 내기 위해 모든 기를 발산하며 촬영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난생처음 써보는 충청도 사투리로 표현해 낸 순박한 청년 '농부 도기' 등 "모든 캐릭터들이 사랑스러웠다"라며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다만 수많은 캐릭터들을 조율하면서 작품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 주인공으로서의 부담감, 체력적인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이제훈은 "예전보다 더욱 많은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내가 무너지면 작품이 비틀거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더욱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가지고 모든 걸 쏟아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라는 심정, 그런 의무감이 계속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나를 불태우는 작업이다"라고 말했다.
이제훈은 "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범죄들에 대한 뉴스를 보며 마음속으로만 공감하고 지나칠 때가 많았다. 실제로 겪지 못한 일이고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니까"라며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이 그런 뉴스를 더 몰입해서 볼 수 있다면 주변인들, 나아가 사회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더욱 주위에 귀를 기울이고 말도 안되는 사건, 억울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모범택시'를 통해 계몽적인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허구의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대리만족 '사이다'를 드릴 수도 있고, 함께하는 이 사회가 따뜻할 수 있고, 희망이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 같다"라며 "모두가 경각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배우라는 '나를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 때로는 부담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주저하지 않고 필요한 분야에서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려 한다"고도 덧붙였다.
'모범택시2'의 성공적인 마무리 덕에 시즌3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이다. 이제훈은 "시즌3을 하게 된다면 계속해 비슷한 포맷을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동시에 더욱 다채로운 인물들이 나와서 '모범택시'라는 드라마를 활기차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특히 마지막에 특별출연해 주신 김소연 선배님이 1호 기사가 아니었느냐. 그럼 김도기를 17호 기사쯤으로 설정해서, 그간 스쳐 지나간 16명의 선배 기사들이 출연하는 에피소드도 나올 수 있지 않겠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 장성철 대표님(김의성) 역할도 해보고 싶다"라며 '모범택시'를 향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1984년 생인 이제훈은 올해로 40대에 접어들었다. 그는 "나이 앞자리가 바뀌니 더욱 열심히 일하고 싶다"라며 "누군가는 여태 열심히 달렸고 쉬지 않고 일했으니 이제는 천천히 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다. 최소 10년은 더 미친 듯이 달리고 싶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목표를 위해 건강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워낙 드라마, 영화를 좋아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는 것 같다. 그게 싫다면 배우 일을 할 수 없지 않을까. 배우로 출발하기는 했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너무 좋아서 작가, 감독으로도 활동해 왔다"라며 "아직도 가장 즐겁고 행복한 때는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볼 때고, 촬영을 마치고 나서도 후반 작업, 음악, 믹싱을 다 들여다보면서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의견을 내는 일이 즐겁다"라고 말했다. "매 순간을 불태운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모든 걸 다 소진하고 나면 허탈하고 허무한 순간도 오지만 그렇게 작품에 담아낸 것들을 시청자 분들이 많이 알아봐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제훈은 "진심을 담은 작품들을 남겨서 10년, 20년이 지나서도 꺼내볼 수 있게 되는 것이 내 꿈이다. 평생 배우 일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젊었던 배우들이 어느덧 나이를 먹고 6, 70대로 변화하는 변천사를 팬으로서 지켜보면 '저게 내 미래다'라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말했다. "'모범택시'가 계속 이어져서 18호, 19호 기사들이 와서 주연을 맡고 김도기가 그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면 얼마나 재미있겠느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멋지게 잘 늙고 싶다"라며 자신만의 선명한 청사진을 그려 나가는 이제훈의 배우 인생을 응원한다.
[티브이데일리 황서연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제공=컴퍼니온]
모범택시2 | 이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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