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플댄스서 영감” … ‘걷는 사람들’의 작가, 이번엔 ‘춤추는 사람들’

장재선 기자 2023. 5. 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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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 현대미술가 줄리안 오피(65)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이번 전시의 영상과 모자이크 작품들 속 사람들은 걷지 않고 춤을 춘다.

"코로나19 사태로 영국이 봉쇄됐을 때 고립된 사람들이 외로워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팬데믹이 끝날 즈음에 유튜브 등을 통해 우연히 예전에 유행한 셔플댄스를 접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춤추는 행위를 탐구해 작품화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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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현대미술가 줄리안 오피 부산서 개인전
회화·조각·모자이크·VR부터
참여형 러닝머신 퍼포먼스까지
신기술 활용한 43개 작품 선봬
“팬데믹때 온라인서 댄스 접해
댄서인 딸과 춤 탐구해 작품화”
셔플댄스를 추는 모습을 표현한 LED 스크린 영상 작품.

부산 = 글·사진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 현대미술가 줄리안 오피(65)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제갤러리 부산점과 복합문화공간인 F1963 석천홀에서 개인전(‘OP.VR@Kukje/F1963.BUSAN’)을 지난 3일부터 열고 있다. 회화와 조각뿐 아니라 모자이크, 영상, 가상현실(VR), 라이브 퍼포먼스 등을 망라한 4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부산 행인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대형 조각 작품을 국제갤러리 관계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개막일, 전시장에서 만난 오피는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들은 기존의 나를 내려놓고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말대로 새로운 도전의 결실들이다. 우선 ‘춤추는 사람들’ 이미지를 형상화한 다채로운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피는 어디론가 한없이 걷는 사람들 이미지의 회화와 조각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전광판 영상을 통해 사랑받아 왔다. 그런데 이번 전시의 영상과 모자이크 작품들 속 사람들은 걷지 않고 춤을 춘다. “코로나19 사태로 영국이 봉쇄됐을 때 고립된 사람들이 외로워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팬데믹이 끝날 즈음에 유튜브 등을 통해 우연히 예전에 유행한 셔플댄스를 접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춤추는 행위를 탐구해 작품화하게 됐습니다.”

그는 댄서로 활동 중인 딸과 함께 춤을 고안하고 형형색색 이미지로 표현했다. 60개 드로잉을 이어 붙여 영상을 만들고, 사운드를 넣어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LED 스크린 영상은 현대 기술로 만들지요. 그런데 저 옆 벽의 모자이크 작품은 돌이 재료입니다. 돌은 고대 예술작품에서부터 사용된 것이지요. 고대와 현대를 가로지르고 싶었습니다.”

줄리안 오피(맨 왼쪽)가 자신의 딸(뒷줄 왼쪽)을 포함한 퍼포먼서들과 러닝머신을 걸으며 체험형 작품 시범을 보였다.

그는 작품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했다. 4개의 러닝머신을 설치해놓고 관람객이 직접 걸어보게 하는 참여형 퍼포먼스 작품을 선보였다. “한국에서도 인증 샷 문화가 퍼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작품이 아니라 작품 속 내가 중요한 것이지요(웃음). 그래서 러닝머신에서 걸으며 작품에 참여하는 경험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번 전시의 절정은 VR 작품이다. 그는 “꼭 체험해보라”고 권했다. VR 고글을 쓰고 8분여 체험을 해 보면, 그가 왜 절실하게 권했는지 알 수 있다. 조각, 회화, 영상으로 만났던 그의 작품들이 입체적으로 보여 자꾸 손을 뻗어 만지게 된다. 실제론 벽이 만져지지만 VR 속 장면들은 생생하기 그지없어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는 “실제와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VR을 통해 나 스스로 내 작품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그의 고백을 들으니 새로운 기술에 대해 열린 태도로 다양한 매체를 탐구해 온 열정이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평소 사진 촬영을 싫어한다는 그는 이번에도 고글을 쓴 모습만 찍어달라고 부탁했으나 결국 러닝머신 앞에서 얼굴을 드러낸 사진을 허용했다. 자신의 고집과 주변의 요구를 조화시키는 예술가임을 보여줬다고나 할까. 한국식으로 말하면 ‘58년 개띠’인 그는 평범한 외모에 배가 적당히 나온 중년 아저씨이다. 창작을 도와준 딸에 대한 고마움을 연신 표현하는 ‘딸바보’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세계적 예술가로 인정받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술을 자신만의 예술로 끌어들여 사람들의 일상에서 특별함을 끄집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부산 해운대에서 찍은 사진 1000여 장을 바탕으로 제작한 대형 조각 작품 ‘워킹 인 부산(Walking in Busan)’도 선보인다. 오는 7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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